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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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國家主義 / Statism }}}

목차

정의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 권력에 사회 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사상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우파적 사회정책(동성결혼 반대, 징병제 찬성 등)은 물론, 중도 좌파적 경제정책(부의 재분배, 케인즈주의)을 지지하는 사람도 국가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그들을 국가주의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후자를 지향하는 경우는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주의자와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상술된 중도 좌파적 경제정책 역시 복지를 위해 국가의 존재를 전제하고, 제도의 역할을 개인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은 국가주의와 통할 수 있다.[* 애초에 [복지국가]나, [사회민주주의] 등의 이념이 왜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지 생각해보자. 이 사상들은 기존 국가 체제 및 소유와 지배의 관계를 인정하는 선에서 진보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자는 사상이기 때문에 국가체제의 존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카를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사민주의적 방법론을 비판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물론, 경제 정책의 방향성과 정치적 성향은 얼마든지 따로 놀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실재한 공산국가들만 봐도.(...)~~좌파파시즘~~ ~~국가를 중시한다는 면에서 진정한 좌우합작이 이루어진다.~~ 다만 이런 점을 들어 이론적으로 공산주의를 국가주의라고 이해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해]이다. 자세한건 후술된 하단 항목 참조.

좁은 의미에서(그리고 일반적으로 통하는 의미에서)의 국가주의는 국가를 가장 우월한 것으로 여기며 개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말은 국가주의적 사고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다만, 인용된 케네디 발언의 의도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편이나, 한국에선 유독 이 쪽으로 왜곡되어 인용된다.[* 케네디는 재임시절 세계시민적인 의식을 여러번 비췄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국내언론 사설에서 어릴적 케네디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세계시민주의적인 사고를 회고했을 정도. 케네디의 해당 발언은 시민 개개인이 국가나 세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권리와 자유를 가졌다는 데에 강조점을 둔다. 즉 국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라는 게 아니라 국가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적극 개입하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어도 상관없는 정책주의로 가기 쉬우며 까딱 잘못하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나는 싫은데~~ 전쟁까지 터뜨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국가를 가장 우월한 조직체로 여긴다는 점에서 전체주의, 파시즘과 매우 잘 통하며 권위주의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편이다. 반대되는 개념은 자유의지주의, 아나키즘이 있다. 개인주의와도 잘 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일단 그렇게 인기가 있는 이념은 아니지만 군사정권 시절을 거치며 알게모르게 국가주의적인 관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이전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구를 생각해보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현재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 정도는 덜하지만 여전히 국가주의적인 인식이 반영됐다.] 이 문장에서도 국가과 민족을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은연 중에 강조되는 [비뚤어진 애국심|지나친 애국심]도 국가주의적 경향을 가지게 하는 원인이다. 애초에 상술되었듯, 우리에게 익숙한 [성리학]적 윤리관 그 자체가 국가주의적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민이라는 단어의 경우 국가에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라서 국가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국민을 뜻하는 원어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번역하면서 생겨난 의미. 여담이지만 반대의 사례로 "[인민]"이라는 표현은 원래 "People"이라는, "인간"그 자체로서의 민중을 뜻하는 표현에 대한 번역어였지만, [wiki:"북한" 윗동네]에서 워낙 [wiki:"주체사상" 해괴하게 쓰는 바람]에(...), 대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표현이 되었다.

철학적 입지

사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사상 그 자체로 국가주의를 정의하자면, 20세기 이후의 파시즘이나 경찰국가주의 등 뿐만이 아니라, [사회계약론] 중 홉스의 입장이나, [왕권신수설] 등 전근대적 [전제군주제]를 옹호하는 사상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동양의 [유가]적, [노자][* 흔히 도가의 신비주의적 이미지 때문에 잊혀지기도 하지만, 도가 중 노자의 사상은 상당히 교묘한 통치술에 기반한 정치철학을 포함한다. 다만 도가 중에서도 장자의 노선은 노자와는 전혀 다른,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쪽이다. 애초에 도가라는 분류 자체가 제자백가를 연구하는 후세인들이 멋대로 묶은 기준에 가깝다. 다만 노자를 전형적인 국가주의자라고 보기는 애매한게 국가나 통치자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걸 백성들이 느끼지않는 즉 개인의 권리침해를 하지않는 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자유의지주의자와 닮은 점도 많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노자식의 통치술로 인해 피통치자가 통치자의 존재를 못 느낀다고 해서 피통치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다고 단정짓기도 힘들며, 오히려 피통치자가 자발적으로 통치자에게 복종하고 착취당하는 체제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노자식 통치는 [포퓰리즘]적 국가권력을 논한다고도 할 수 있다.] 또는 [법가]적 통치 이념 역시 국가에 상당한 비중을 두기 때문에, 이 쪽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즉 넓게 잡으면 한도 끝도 없다. 애초에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경우는 인류 역사상 멀디먼 구석기 시대에서나 가능했기 때문에 집단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면서부턴 국가라는 존재 자첼 부정한다는 생각 자체도 못 하는 경우[* 이러한 인식을 지적한 문장을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인용하자면, "어떤 인간이 왕이라는 것은 다만 다른 인간들이 신하로서 그를 상대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신하가 아니면 안 된다고까지 믿고 있다".]가 많아지게 되었다. 현재만 봐도 이 지구상에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차지되어지지 않은 땅은 남극북극이 유이하다. 심지어는 그것조차 영유권 다툼의 조짐이 보이는 실정. 애초에 땅이 어느 국가의 소속이라는 것부터가 지구 입장에선 심히 웃긴 일.

국가주의에 대해 좀더 철학적으로 깊게 들어가자면 사실상 [아나키즘]적 정치관, 그리고 [실존주의]적 인간관의 대척점에 있는 모든 관념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개별체의 존재와 특성보다 보편화된 공동체의 규범을 중시하는 관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물론, 국가주의의 협의, 그리고 이 사상의 이름 자체가 "국가"주의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보편화된 공동체의 가장 일반적인 표상이 국가에 의한 지배 체제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뿐만이 아닌 [작은 공동체], 종교 교단, 군벌, 심지어는 구체적인 조직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이상이나 규범까지도 개체의 존재보다 우선시되는 보편적 존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 그 자체를 국가주의적인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철학사를 살펴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일체의 형이상학적 담론 그 자체가 결국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국가주의와 연결되기 쉬운 편이다. 예컨대,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결국 철인에 의한 "통치"와, 그 통치의 구조를 정당화하며, [성리학]적 관념론도 결국은 형이상학적인 만물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이 깨우치치 못한 사람을 통치해야 한다~~[wiki:"세종대왕(문명 5)" 나는 나의 백성들을 굽어살피는 깨우친 임금, 세종이오]~~는 담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자연주의적", ~~또는 산 속에 들어가서 약초 먹고 도 닦는 사상이라고~~으로 오독되는 [노자]의 사상 역시 결국은 자연계와 천지 만물을 관통하는 "도(道)"에 따르는 통치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세상에 유익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또한, 전 시대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때문에 흔히 실존주의로 해석되기도 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 역시 결국 "존재자(das Seinde)"보다 조금 더 초월적인 "존재(das Sein)"를 중요시하는 형이상학적 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보면 그가 왜 게르만 민족주의와 나치즘을 옹호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초월적, 보편적 규범의 선천성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사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기독교적 사유 내에서도 보편성보다 개별성과 실존을 더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늘 존재해왔으나, ~~교단의 눈 밖에 난 관계로~~ 이단으로 몰려 배척받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오컴 등이 주장한 "유명론"이나, 흔히 범신론으로 이해되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실존주의적 사상 중에도 유신론적 전제를 통해 실존의 중요성과 자유를 논하는 사상들이 존재한다. 즉, 기독교와 국가주의의 연관성에 의문을 품으려면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늘 국가주의적,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통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공산주의]를 실존했던 공산국가나 경제적 관점만을 들어 이론적으로 국가주의라고 이해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물론 [현실사회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공산주의 정책을 시행한 국가들이 국가주의적 면모를 보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 [마르크스]가 지향했던 공산주의는 경제가 아닌 사회적으론 아나키즘 사회와 유사하다.~~국가와 군대조차 해체된다고 했으니~~ 다만 그 사이에 폭력적 방법을 수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망했다~~그것을 못뛰어넘었을 뿐.(...) 즉, 사실상 마르크스가 최종적으로 지향한 공산주의를 이룩한 국가는 전무한 셈. 다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와 연결해 경제적으로만 계급, 평등을 해석하니 나오는 오류 중 하나. 사실 톡깨놓고 말해서 공산국가 권력자들 중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애초부터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드물지도 모른다. 지들 권력 기반으로 이용하거나 아님 경제적으로 평등을 추구한다니 다른 거 다 제끼고 난 공산주의자요!라고 선언했을지도. 공산주의라면서 흡사 하는 짓은 파시즘 뺨치는 민족주의자들도 넘쳐났던 걸 감안하면.(...)~~주체사상?~~ 또 경제적으로 봐도 사실 이러한 국가들의 경제정책은 엄격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John Molyneux, Anarchism: a Marxist criticism, 2011. 영국의 국제사회주의 계통에 몸담은 양반이다. 참고로 위 책은 국내의 다함께에서 한역본을 냈다.] 거대 자본가의 "사유"가 정부와 당의 "국유"로 전환되었을 뿐, 민중은 여전히 공산주의적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게 포인트.

하위 항목

*경찰국가주의
*초국가주의

관련 항목

*전체주의
*파시즘
*스탈린주의
*쇼비니즘
*애국심
 *비뚤어진 애국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