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군단 반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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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북한에서 발생해 대한민국에도 알려진 몇 안 되는 반란 시도로 알려져 있는 사건. 1995년에 함경북도에 주둔해 있던 북한의 제6군단이 정권 전복을 기도했던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알려져 있다'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사건의 정황이 불분명하기 때문.
정황
사건 당시 북한 6군단은 청진에 사령부를 둔 중국 접경지대의 수비군으로 휘하에 보병 3개 사단, 포병 1개 사단, 방사포 4개 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민군 내에서의 대접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편으로 일단 수도 평양과 멀리 떨어진 격오지인 데다 위치도 척박하고 휴전선 부근과 달리 전략적 중요성도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계가 흐려지면 반란이 싹트기에 더할 나위 없는 위치였다.[* 북한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후방 부대는 전방 국경지대에 주둔한 부대에 비해 대우가 허접하다. 당장 대한민국의 경우도 향토나 동원부대의 경우 소위가 중대장이며 편제인원도 실제 편제의 인원보다 전시편제의 인원이 더 많다.]
그러던 차에 1994년 여름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한 권력이 공백을 보이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한 중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체제를 뒤엎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하나 골 때리는 점이 있다면 공산국가에는 정치장교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는 소련 성립 당시 능력은 있으나 사상 검증이 안 된 지휘관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상 검증이 된 인물에게 지휘관과 동급의 권위를 부여해서 지휘관을 통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북한의 조선인민군의 지휘 체계는 정치장교를 감시하는 보위부 장교까지 만들어 넣은 병맛스러운 구조였는데 정작 정치장교와 보위부 장교가 손을 잡고 반란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여하튼 주도자인 이 중장의 계획대로 1994년 말까지 반란 계획은 착착 이뤄졌으며 6군단 대부분의 통솔권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군단장만 설득하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군단장은 반란 가담을 거부하였고 반란 가담 세력은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95년 1월 1일 세배를 빙자하여 군단장을 독살해버렸다.
하지만 이미 반란 기도는 평양에 감지된 상태였고 군단장의 급사로 모든 정황이 확실해지면서 김정일의 측근 김영춘이 신임 군단장으로 전격 부임하게 되었다. 김영춘은 착임을 위해 도착한 리원 비행장 현장에서 바로 반란 주도자들을 일망타진해버렸고 그 자리에 없던 인물들도 야음을 틈탄 보위부가 전원 체포했다. 그 규모는 불명확하나 연루자들은 물론이고 일가친척 및 6군단 군관, 심지어 전역을 앞둔 애먼 고참병들까지 대부분 숙청되어 사형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그 삶을 마쳤다고 한다.
이후 북한 6군단은 함경남도의 제7군단과 교체되어 전역 조치되었고 현재 북한에서는 이 사건을 거론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로 통하고 있다.
정말 반란이었나?
다만 최근에는 사실 별 거 없었고 그냥 군단장과 정치장교의 알력싸움이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우선 쿠데타 시도라기에는 동기와 실제 계획이 어땠는지 너무 불분명하고 비현실적이다. 추정되는 설로는 6군단이 반란을 일으킨 후 함경북도를 기반으로 평양에 대한 내전을 일으키거나 한국군이나 미군을 청진항에 끌어들인 다음 특수부대가 평양에 잠입하여 정권을 탈취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6군단의 전력은 인민군 내에서도 열악한 수준인 데다 함경북도의 생산력을 감안하면 전쟁을 벌여도 당연히 평양의 중앙 정권과는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쿠데타에서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장악과 선전을 통한 지지의 확보인데 북한의 모든 매스미디어는 평양이 장악하고 있으며 설령 국지적인 지지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내전을 일으킬 만한 명분이 없다. 한국군이나 미군이 북한에 진입한다는 것은 더더욱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수 년간 탈북자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대규모 반란 사건에 대한 처분 치고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이기는 하지만 일단 북한 기준으로) 허술한 측면이 있다. 당시 전역자들이 탄광으로 끌려갔다는 것은 원래 인민군 전역자를 아무 데나 복불복으로 끌고 가는 인민군 기준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게다가 당시 6군단에 있었고 숙청되어 싹 쓸려야 했던 좌관급 장교들마저도 생존했다는 증언까지 확보되고 있기 때문. 처형당한 경우도 가족들은 함경북도 국경지대로 추방당하는 선에서 끝났다.
역시 자세한 정황은 통일이 된 이후에야 밝혀질 것이다. 현재로서 확실한 것은 '1995년에 모종의 이유로 군단장 살해 사건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김영춘 주도 하에 6군단이 전격적으로 해체되었다' 라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