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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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桂元 1923 ~

개요

한국의 전직 군인, 정치인이자 외교관. 1923년 경상북도 영주군(現 영주시) 출신이다.

1942년 서울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 상학과에 입학했다가 학병제가 실시되면서 강제징병 되는 바람에 일본 육군에서 복무했다. 해방 후[* 일본이 희한한 게 해방 직후에 소위 임관을 시켜줬다. 그 전엔 견습사관 상태로 냅둔 채로.] 서울로 돌아왔다. [국군준비대]의 [이혁기][* 후에 월북하여 전쟁 전에 사망.]와는 교회 친구였다. 당시 [서북청년회]와 건군준비대의 갈등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이혁기는 그가 기독교인이라 공산당 계열이 많은 건군준비대보다는 [미군정]이 [장교단] 인원을 만드는 쪽에 가담하 것을 추천했다. 당시 일본군 출신들은 [이응준]이 주로 이끌었고 김계원은 이응준의 아들과 아는 사이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wiki:"대한민국 육군"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1960년에 육군대학 총장이 되었다가 육군wiki: "대장(계급)"대장이 되었고 이후 1966년 부터 육군참모총장을 맡았다. 1969년 대장 예편 이후 김형욱의 뒤를 이어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다. 그러나 제7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대비에 미흡하다는 이유로 1971년 12월 중앙정보부장직에서 경질되었다. 후임 중앙정보부장에는 이후락이 임명되었다.

1971년 중화민국주재 한국대사를 지냈다. 1979년에는 2월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그만 두고 주일 대사로 가게 된 김정렴의 후임으로 박정희 정권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이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천거에 의한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10.26 사태가 발생하고 김재규와 연루되었다는 이유(그도 궁정동 만찬에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과 함께 참석했는데, 만찬 전에 김재규로부터 대통령 시해를 암시하는 말을 듣고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대통령 시해를 방조했다는 이유[* 김계원은 박정희가 아닌 [차지철]을 의미하는 걸로 이해했다고 항변했다. 김재규가 김계원에게 형님 그 놈 없애 버립시다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로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았고 1980년 재판에서 김재규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고 1988년 특별사면복권되면서 정치계에서 은퇴하였다.

이야기 거리

여담으로 육군참모총장 시절에는 육군의 병력 처우 개선 및 예비군 무기 도입과 관련해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주임원사[* 당시에는 주임상사라 불렸다.] 제도를 도입하며 부사관 및 병들의 권익을 개선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최근 TV자서전에 출연하면서 자신이 군인으로 있으면서 이룬 업적들 중의 주임원사 제도 도입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비군의 창설로 갑작스레 늘어난 개인화기 수요를 대처해야 했는데, 개인화기를 신모델로 교체를 계획하던 미군으로부터 구형 M1 카빈 소총 100만정을 인수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이를 예비군으로 편성해서 오늘날까지도 예비군의 주력화기로 있을 정도다.[* 예비군들 입장에선 이런 낡은 총을 아직도 쓰게 하느냐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6~70년대라면 카빈도 2선급 화기로는 나쁘지 않은 총이었다. 카빈을 채택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이걸 쓴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여담으로 [연세대] 출신의 유일한 [대장(계급)]이다. [고려대]에는 [박세환] 대장과 [김진호] 대장이 있다.

창작물에서

드라마 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는 배우 오승명씨가 연기하였다. wiki: "제4공화국(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배우 김상순씨가 연기하였다. 제5공화국에선 배우 나성균씨가 연기하였다. 10.26 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배우 권병길씨가 연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