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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沃沮

* 상위항목 : 원삼국시대

[include(틀:한국의 역사)] https://www.gnedu.net/php-bin/swebdata/%C1%DF%C7%D0%B1%B3/2%C7%D0%B3%E2/%BB%E7%C8%B8/1%C7%D0%B1%E2/ms20030108175452/img_new/image/p6_01.jpg

옥저는 기원전 2세기부터 함경도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퍼저 있던 부족국가 집단이다. 고조선 멸망 후 한나라에 의해 세워진 한사군 중 임둔군의 일부가 현도군과 합쳐졌고 이 중 7현을 낙랑군이 담당하였으나, 후에 한사군이 폐지된 뒤 7현이 독립하면서 부조현은 옥저로, 나머지 6현은 동예로 귀속되었다.

두만강 유역과 함흥평야가 이들의 영역이였기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을 생산‘했고 영역이 딱 동해바다 연안이라 해산물이 풍부하여 이를 고구려에 조공했다. 남옥저, 북옥저, 동옥저 등이 존재했는데 각각 위만조선, 주몽, 태조왕에 의해 멸망했다. 옥저에 대하여 학계의 의견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3옥저설(남옥저, 북옥저, 동옥저)과 나머지 하나는 2옥저설(남옥저, 북옥저)이 있다. 이후 동예처럼 고구려의 간접지배를 받아 형식적으로나마 존속했으나 대외적으론 고구려의 내지로 파악되고 사라진 세력이 되었다. (어차피 중세시대까지도 조선왕조 이전에는 지방 수령이 그 고을 토호를 쓰는 게 일반적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미 고구려에 편입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중국 정사후한서삼국지에는 동옥저(東沃沮)로 기록되어 있다.

별다른 영향력이나 역사적 업적은 없는 세력이지만 한국사 교과의 고대사 파트에서 신랑과 신부가 어릴 때 약혼을 한 뒤, 신부가 신랑집에서 일을 하다가 신랑이 신부집에 예물을 하고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는민며느리제도[* 현대의 연구에서는 견해가 좀 다르다. 항목 참고]와 시신을 산에 안치해두었다가 뼈를 추스려가는 골장제[* 세골장이라고도 부른다.] 등 풍습과 관련하여 빠지지 않고 등장하긴 한다. 다만 언제 고구려에 완전히 흡수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마종기 시인의 시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도 주제로 등장한다. 분류:원삼국시대 분류:국가(제1천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