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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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원유철(元裕哲, 1962년 10월 25일 ~ )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원균이 나라를 지켰다고 역사 왜곡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원균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원균의 모든 악행을 숨기고 나라를 지킨 위인으로 역사를 날조하려고 하였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박정희 역사 왜곡을 위한 국정 역사 교과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여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을 빼앗고 선조가 이순신을 의심하여 고문하고 모든 직위를 빼앗아 감옥에 집어넣고 백의종군하게 하였다. 원균은 왜군이 무서워 숨어다니다가 조정의 명령에 의해 결국 마지못해 나가서 싸우게 되었는데 백병전에 약하고 원거리 함포전에 강한 조선 수군의 특징을 살리지 못 하고 일본 수군에게 닥돌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수백척 규모의 조선 수군이 전멸하고 12척의 만 남게 되었다. 이 전투로 원균도 전사하였다. 만약 전사하지 않았다면 분노한 선조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12척의 배에 한 척의 배를 더하여 13척의 배로 333척의 일본 수군에게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 “조선 바다를 지켰다굽쇼?” 평택 서정리역 원균 홍보라니… 페북지기 초이스 2016-04-27

네티즌들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두 차례 바다를 열어준 원균을 어떻게 이렇게 영웅시할 수 있느냐며 아우성입니다.

논란은 최근 SNS에 한 장의 고발 사진이 오르면서 시작됐습니다. 한 네티즌은 ‘코레일 미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서정리역 홍보물을 촬영해 올렸는데요.

사진을 보면 ‘임진왜란 때 조선의 바다를 지켰던 원균장군묘’라는 설명과 함께 서정리역에서 버스로 묘역까지 30분 정도 걸린다고 소개돼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목숨 바쳐 지켰던 조선의 바다를 왜군에게 내준 인물인데 어떻게 정 반대로 소개됐느냐는 것입니다.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567782&code=61121111&sid1=soc


  • “원균 직계후손인 원유철 의원 지역구라 그런건가요?”… 페북지기 초이스 2016-04-28

평택 서정리역 논란 불똥… 원 원내대표 “원균 장군은 임난 때 전공 세운 분”

원 원내대표는 원균과 마찬가지로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의원에 당선됐고 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평택 갑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지난 13일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모두 5번이나 당선된 정치인입니다.

인터넷 만물 사전 나무위키에 따르면 원 원내대표는 원균 명장설을 펼쳐왔습니다. 원균의 후손인 점을 문제 삼을 수 없지만 원균을 떠받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원 원내대표의 소망이 통한 덕분인지 평택문화원은 2010년 평택문화달력을 발행하면서 1월의 인물로 원균을 내세우며 ‘한마음으로 순국한 임난의 영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569511&code=61121111&sid1=soc


원흉 원균

"원흉" 원균은 명장인가? 재평가?

"원흉(元兇)"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원균"을 일러 "원흉"이라 일컬은 부분이 적지 않다. 과연 원균이 명장이라면 그를 "원흉"이라고 까지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듣기로 원균은 뚱뚱하고 술을 좋아했으며 성격은 포악하고 또한 그 공은 없으되, 허물은 많은 장수였다. 과연 그의 전공이 무엇이 있는가.

원균이라는 장수는, 지위에 대한 욕심만 가득할 뿐 아무런 지략이나 전술도 없으며 그저 왜장 몇놈 베었으면 우리 아군의 피해가 얼마나 되었어도 그것으로 만족하고 말 위인이다. 과연 왜장 몇놈이나 베었을까? 내 보기엔 12척 배를 가지고 도망간 배설이란 위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훗날 배설은 탈영한 죄로 목벰을 당했다.

그러니 후세사람들이 원균을 일러 명장이니, 재평가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듣기 거북하고 역겨울 수 밖에 없다

이순신장군에 대한 선조의 의심과 맞물려 무능하고 포악한 성격을 가진 장수 원균이 그 덕을 보아 맹장이니 용장이니 이런 말을 듣는지는 모른다. 허나 분명한 것은 원균이 내세울 만한 전공도 없고 삼도수군을 전멸시켰거나 흩어지게 하였고 배설이 가지고 도망간 12척을 제외한 전함은 모조리 분멸당했고 조선수군을 한번 전투(칠천량 해전)로 시한부로 만들어놨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원흉"이라 여러차레 일컬어지는 바, 원균은 명장도 용장도 맹장도 아닌 허접한 난봉꾼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원균이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고 그의 무능과 지략전술없슴이 갑자기 생기겠는가? 혹은 포악한 성격이 바뀌겠는가?

전공이 전무했음에도 원균이 1등공신에 오른 것은 이순신 장군을 견제하려던 선조의 덕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킨 장수를 역모로 몰아 죽이고(예를 들자면 김덕령 장군같은) 전공없는 장수(바로 원균같은)를 1등공신에 책봉하니 이것이 정의란 말인가? 하물며 "원흉" 원균같은 이를 재평가하자는 것이 이 얼마나 가치없고 쓸데없는 일인가.

https://blog.hani.co.kr/jarl/26136

"여진과 잤다"... 이순신, 그도 인간이었다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원균이 '명나라 고관 송응창이 보낸 불화살 1530개를 나누지 않고 혼자 독차지하려 하고' 남해 부사 기효근 또한 '배 안에 어린 색시를 싣고 다니며 남이 알까 두려워한다'고 탄식한다.

'나라가 위급한 때를 당해서도 예쁜 여인을 태우고 놀기까지 하니 그 사람됨은 말할 수 없다. 참으로 통분하고 한심스런 지경이다.'

'원 수사의 음흉하고 간흉함이 대단했다.' (1593년 7월 28일)

'선홍수가 와서 원균의 점을 쳤는데, 첫 괘가 수뢰(水雷) 둔(屯)인데 천풍(天風) 구(女后)로 변했으니 본체를 이기는 것이라 크게 흉하다고 했다.' (1597년 5월 12일)

이순신은 경상우수사 원균과 부하 군관들에 대한 증오를 자주 토로하기도 하고 첩의 부정을 꿈에 보기도 했다. 이순신에게는 정실부인 상주 방씨 외에도 해주 오씨부안댁 두 사람의 이 더 있었다.

'초 1일 한 밤 중에 꿈을 꾸었는데, 나의 첩(부안 사람)이 아들을 낳았다. 달수로 따져 보니 낳을 달이 아니었다. 꿈이지만 내쫓아 버렸다.'

현실의 불안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순신 또한 사랑을 잃을까 노심초사 하고 질투심에 몸을 떠는 외로운 사내였다. '나라가 위급함에 처해 있는데 남해 부사 기효근이 어린 색시를 싣고 다니며 논다'고 분노하던 이순신 또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수시로 여인들을 품었다.

'이날 밤, 으스름 달빛이 다락을 비치는데 잠을 들지 못하고 시를 읊으며 밤을 지새웠다.' (1595년 8월 15일)

'이날 달빛은 대낮 같고 바람 한 점 없는데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심란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신홍수를 불러 퉁소를 듣다가 밤 10시경에 잠들었다.' (1596년 1월 3일)

'(介)와 함께 잤다.'(1596년 3월 9일)

'국화 떨기 속에 들어가서 술 두어 잔을 마셨다. 여진(女眞)과 잤다.' (1596년 8월 8일)

'광주 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술에 취했다. 최철견의 딸 귀지(貴之)가 와서 잤다.' (1596년 8월 19일)

송사가 진행 중인데 술과 , 심지어 자신의 까지 상납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관리도 있었다. 그에 대해 이순신은 단호했다.

'이른 아침 조계종(趙繼宗)이 현풍 수군 손풍련에게 소송을 당한 결과 마주 대면하고 공술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가 갔다.' (1596년 2월 20일)

'날이 어두워질 무렵 영등 조계종소실을 데리고 술을 들고 와서 마시기를 권했다.' (1596년 2월 20일)

'밤 9시가 지나서 영등 조계종이 그의 을 데리고 술병을 들고 왔다고 하는데 만나지 않았다. 11시가 넘어서 돌아갔다.' (1596년 3월 23일)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24777

학력

비학위 수료

경력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6·20 지방 선거 경기도의원 (송탄시 제2선거구) 3대 민주자유당 Template:막대 39.7% 17,484표 1위 25px|경기도의원 당선
제15대 총선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15대 무소속<ref name="당선인명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 당선인명부 - 제15대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무소속 원유철 (元裕哲)</ref><ref name="연합1996-04-18">무소속 원유철(경기 평택갑) Template:뉴스 인용</ref> Template:막대 42.47% 26,365표 1위 25px|평택시 국회의원 당선
제16대 총선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16대 새천년민주당 Template:막대 32.73% 20,884표 1위 25px|평택시 국회의원 당선
제17대 총선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17대 한나라당 Template:막대 40.74% 27,644표 2위 낙선
제18대 총선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18대 한나라당 Template:막대 50.76% 32,051표 1위 25px|평택시 국회의원 당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19대 새누리당 Template:막대 60.25% 42,031표 1위 25px|평택시 국회의원 당선
제20대 총선 국회의원 (경기 평택시 갑) 20대 새누리당 Template:막대 55.48% 42,503표 1위 25px|평택시 국회의원 당선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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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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