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원리
* 상위 항목 : 우주 천문 관련 정보
Human Principle 人間原理
> "...생명체 탄생을 위한 지구의 변수들은 정확히 맞아 있고, 다른 행성들에서는 이런 조건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경우를 거의 찾기 어려웠다. 이런 발견은 지구가 평범하다는 나[* G.Gonzalez의 언급을 저자 래리 위덤이 인용한 부분. 곤잘레스는 세계적인 네임드급 지적설계론자이다.(…) 아이오와 주립대의 前 천문학 조교수였다. 곤잘레스는 지적설계 홍보영화에 출연해서, 진화론자들의 음모 때문에 자기 이력에 저렇게 "前" 자가 붙은 거라고 음모론을 펴며 징징거린 인물이기도 하다.(…)]의 오랜 관념을 깨뜨렸다..." > > L.Witham, 《과학과 종교 논쟁 최근 50년》,[* 과학vs종교 떡밥의 각 주제들에 대해 개론적이고도 자세한 뒷이야기를 알 수 있는 책. 저자가 과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에 약간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기계적 중립" 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질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게 된 것.(…)] p.226
소개
인본원리라고도 한다.[* 그 외의 표현으로서, 영국의 수리물리학자이자 유신론적 진화론자인 존 폴킹혼 경은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원리를 언급하면서, 어쩌면 이것을 탄소원리로 바꾸어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인본주의와는 거의 관계가 없으니 구분할 것.
정말정말 거칠고 과격하게 압축해서 표현하자면 "우주는 우리 인류만을 위해 존재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중심 사상.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며 요리보고 조리봐도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의 조건이 너무나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지구는 그 존재만으로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인간원리가 출발한다. 이 때문에 하술되듯이 다중우주 떡밥, 외계인 떡밥과도 맞닿아 있으며 종교계에서도 은근히 환영받는 우주론이다.
무개념 근본주의 종교인들이나 창조설자들이 흔히 들고 나올 만한 떡밥으로 보이지만 ~~여기까지 머리를 굴릴 지적 지구력은 부족해서인지~~ 의외로 그런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좀 배웠다는 비과학 분야의 식자들이 지적설계에 경도되었을 때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떡밥이다. 종종 유신론적 진화론자들도 이런 드립을 쳐서 비판을 받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랜시스 콜린스. 이 양반은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까지 지내고 있고 과학자로서 평판도 나름 괜찮은 사람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파스칼의 내기나 인간원리 떡밥을 꺼내서 스스로 까임거리를 창조한다.(…)]
네임드 무신론자였던 앤서니 플루가 유신론자 커밍아웃(?)을 할 때 후끈 달아올랐던 떡밥이기도 하다. 그가 결정적으로 유신론으로의 전향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인간원리, 그리고 간극의 신 논증이었기 때문.
천동설과의 관련성
의외로 천동설과는 접점이 그다지 많지 않다. 천동설 자체가 애초에 고대인의 관점에서 눈에 보이는 우주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나왔던 물건이고, 인간의 위상을 우주의 중심에 두거나 우주의 존재의미를 인간에게 귀속시켜서 근자감을 얻는다거나 하는 것은 천동설의 본질적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 오히려 전근대 시대의 사람들, 특히 중세인들은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을 가장 범속한 것으로 보았으며,[* 하물며 땅 아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쩌면 신이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드넓고 높은 창공을 오히려 더욱 우월하고 고결하다고 여겼다.[* 이와 상통하는 구약성경의 구절에 대해서는 시편 8장 3~7절을 참고할 것. 별도로 모세스 마이모니데스(1135~1204) 역시 같은 맥락의 언급을 남겼다.] 더군다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에서는 지구가 다른 모든 물질들보다 무겁기 때문에[* 마치 흙이 다른 세 원소인 물, 불, 공기보다 무거운 것처럼.] 무거운 것은 우주의 중심점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모아지는 이치를 따른다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건 우월감을 느낄 게 아니라 오히려 당연했다.
어쨌건, 베르주라크(Bergerac)나 퐁트넬(Fontenelle)과 같은 훗날의 급진적 계몽주의자들은 갑작스럽게 천동설에다 "자연이 단순히 인간의 시중을 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상상한 인간의 오만방자함" 을 연결시켰다. 이것은 분명히 천동설이 마치 인간원리를 옹호하는 듯이 보이게 했으며, 오늘날의 인간원리의 몇몇 핵심적인 떡밥들조차 여전히 천동설을 연상시키게 했다.[* 이상 R.Numbers,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 Chapter 6., pp.83~93 참조.]
그리고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과거 막연히 "우주는 인류를 잉태하고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공간" 식으로만 여겨졌던 인간원리는, 과학의 진보와 함께 갑작스럽게 다음의 두 가지의 논증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중심 내용
미세 조정된 우주(Fine-tuned[*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fine이라는 단어에는 "미세한", "고운" 이라는 뜻도 있다. 좋게 조정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universe)
우주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종적으로 관찰해 봐도 역시 지구는 특별하다는 논증.
이것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출현하는 논증이다. 미세 조정된 우주에서는 지구가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 특히 인간을 포함하는 수많은 생명을 품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우주의 최초 조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도 한다. 주로 다루는 테마는 다음과 같다.
* 최초의 우주에서 네 가지 힘이 아주아주 적절하고 조화롭게 맞추어질 가능성 * 최초의 우주에서 아주아주 안정적이고 균일한[* 그러면서도 은하나 별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아주아주 약간의 밀도상의 불균일함을 품은 균일함이어야 한다.] 대폭발이 발생할 가능성 * 수소와 헬륨 외에는 상당히 척박한 환경이었던 최초의 우주에서 탄소가 만들어질 가능성 * 우주에서 기막히게 조건들이 들어맞아서 여러 별과 행성들이 형성되고 그곳에서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물질들이나 중원소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 * ...... *--PROFIT!--
아무튼 이와 같은 숱하게 많은 "희박한 가능성" 들을 전부 곱해 보면 우리 우주의 현주소가 될 텐데, 이거야말로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것이 바로 미세 조정된 우주의 논리이다. 저 모든 것들을 전부 우리 우주의 역사에 맞도록 조정하려면 어지간한 조정으로는 어림도 없고 아주아주아주 미세하게 조정해야만 가능하다는 것.
눈치 빠른 위키러들은 직감하겠지만 당연히 신 존재증명 떡밥,[* 그러나 미세 조정된 우주 논증으로 신 존재증명을 하려는 순간 당연히 간극의 신 논증으로 빠져버린다. 그나마 그 간극도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와중이고.] 지적설계, 다중우주설을 한꺼번에 건드리는 대형 폭탄급의 떡밥이다.(…) 특히나 지적인 설계자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인지 종교계에서도 굉장히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는 논증. 현실적으로 보면 그만큼 까이기도 많이 까였던 논증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논증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판자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은 아마 물리학자인 V.J.스탠저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물리학의 세계에 신의 공간은 없다》에서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미세 조정된 우주 논증을 비판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대다수의 물리학 법칙들은 적절하게 제시된 모형 내에서는 저절로 출현하게 되며, 어떤 특정한 방향성을 지정해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도 무난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상술된 모든 "가능성들" 은 전부 상호 독립된 변수가 아니며, 그들이 어떤 조건에 놓이느냐와는 무관하게 어떤 우주론에서든 웬만한 생명의 조건들은 어렵지 않게 주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무모 관련링크 하여간 이를 요약하면 "당신들 생각보다 의외로 훨씬 쉽다" 는 것.
보다 범용적이고 어쩌면 아래의 희귀한 지구 가설에서도 적용 가능한 반론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면 논리적 차원의 것이다. 인류가 나타날 수 없을 만큼 적절하지 않은 조건의 우주에서는 당연히 금세 물리학적 재앙을 맞이했을 것이고, 우주의 경이로움에 찬탄해 마지않던 한 고등 생명체가 자기네 무슨무슨 원리라는 떡밥을 푸는 일도 없었으리라는 것. 쉽게 말해서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이미 다 벌어진 일이니만큼 그 희박한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주가 "조정되었다" 고 말하는 것은 오버라는 것이다.
희귀한 지구 가설(Rare-Earth hypothesis)
우주 각 행성들의 물리적 조건들을 횡적으로 관찰해 봐도 역시 지구는 특별하다는 논증.
지난 2000년에 《Rare Earth: Why Complex Life Is Uncommon in the Universe?》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지명도를 얻게 된 가설. 영문 위키피디아의 해당 항목에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희귀한 지구 가설의 특징으로 들고 있다.
* 지구는 적절한 은하계의 적절한 위치에 있다. * 지구는 적절한 종류의 항성 주위를 적절한 거리에서 돌고 있다. * 지구와 함께 태양계를 구성하는 다른 행성들이 너무나 적절하다. * 지구의 궤도는 ~~역시나 적절하게~~ 안정적이다. * 지구는 적절한 사이즈의 적절한 유형의 행성이다.[* 예를 들면 목성형 행성에서는 그것이 가스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생명체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 지구의 판 변동이 복잡한 생물들을 만들어 내기에 ~~역시나 적절하게~~ 기여하였다. * 지구의 위성인 달의 크기가 너무나도 적절하다.[* 큰 위성은 큰 조석간만의 차를 초래하며, 이것은 다시 생명 탄생의 후보지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원시 지구의 바닷가 거품 웅덩이들을 많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 지구의 역사 속에서 진화가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 가설을 김대기가 좋아합니다~~
이와 더불어 또 언급되는 것이 바로 드레이크 방정식이다. 희귀한 지구 가설의 지지자들은 이것을 조금 더 바꾸어서 희귀한 지구 방정식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포함되는 변수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은하 속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에 존재하는 항성의 비율 * 그 항성들 중에서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는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가스형 행성이 아닌 행성의 비율 * 지구형 행성들 중에서 미생물 수준 이상의 생명이 탄생한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복잡한 생명이 탄생한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의 수명 중 다세포 생물이 살아갈 만한 기간이 차지하는 비율 *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행성들 중에서 거대한 위성을 갖고 있는 행성의 비율 * 그 행성들 중에서 행성계 속에 거대한 가스 행성을 지니고 있는 행성의 비율[* 주지하듯이 지구의 안전에는 목성이 매우 큰 기여를 한다.] * 그 행성들 중에서 생물의 대량 절멸을 겪지 않은 행성의 비율
...을 모두 만족하는 행성이 과연 우주에 얼마나 많겠느냐는 것이다.(…)
딱 보기에도 알겠지만 희귀한 지구 가설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그러니까 외계인은 없을거야 아마"(…)라는 결론도 나온다. 실제로 희귀한 지구 가설은 외계인 떡밥을 다룰 때 종종 등장하며, 종종 미세 조정된 우주 논증을 거꾸로 뒤집는 듯한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즉, 미세 조정된 우주는 (또 다른 외계인이라 할 수 있는) 인류에게 너무나도 호의적인 우주를 그린다면, 희귀한 지구 가설은 고등 생명체를 잉태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고 적대적인 우주를 그리고 있는 셈.
한편 물리학자 S.웹은 자신의 저서 《모두 어디 있지?》에서 페르미 역설을 소개함과 함께 외계인 존재 떡밥을 다루면서 50가지의 예상 응답을 제시했는데,[* 어지간한 위키러들의 "외계인은 존재할까?" 에 대한 예상 응답도 대부분 다 들어있다.(…)] 희귀한 지구 가설의 주축을 이루는 주장들을 무려 19가지로 세밀하게 분류하여 하나하나 자세하게 논의했다. 그는 여기에서 1) "우주는 무한히 넓다. 우주 어딘가에 충분한 기술력을 지닌 지적 생명체가 없을 리는 없다." 와 2) "그러나 우주는 소위 '거대한 침묵' 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존재한다면, 우주는 왜 조용한가? 그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의 상반되는 현실 사이에서 결과적으로는 희귀한 지구 가설을 잠정적으로 선택하였다. 그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Sieve of Eratosthenes)의 형식을 빌어서 자신의 19가지의 제약조건들을 일일이 검사한 후 "역시 인류는 외톨이였다" 고 결론내렸다. 한편 그는 더 나아가서 "지구 같은 행성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는 주장에 대해서 심지어 "그런 기대 자체가 교묘히 포장된 거만함, 내지는 잘난체와 겸손함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라고 도발하기까지 하였다.
그 외에, 생물학계에서는 유일하게,[* 사실 오늘날의 외계인 떡밥에 대해서는 점차 생물학의 지분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즉, 생물학계의 의견은 갈수록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이자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권위자인 S.C.모리스가 희귀한 지구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해당 가설을 소개하면서 긍정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느낌에 가깝지만, 종종 희귀한 지구 가설의 지지자로서 소개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은 거꾸로 외계 행성들의 "평범성의 원리" 에 초점을 맞춘다. 연구에 따르면 이미 수학적으로는 수십억 개는 되는 지구가 존재할 수 있으며 문명의 수도 천 단위에는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비판의 핵심이 되는 논지는 "당신들 생각보다는 흔하다" 인 셈.
또한 외계인 관련 떡밥에 얽혀 있는 보다 전통적인 반박으로, 우주의 무한히 넓은 성질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인류의 존재 자체가 이미 외계 생명에 대한 하나의 긍정적인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은 별도로 "동물원 가설" 과도 묘하게 연결되는데, 인류의 존재 자체는 외계 생명의 존재를 의미하긴 하는데, 외계 생명이 인류 몰래 지구를 하나의 동물원 비슷하게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발전해 올 수 있었다는 식의 가설이다.
더불어, 앞서 본 바와 같이 논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구에게 무슨 특별하다거나 기적적이라거나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적절하지 않은 조건에 위치한 다른 행성[* 이를테면 해왕성이라거나 아니면 먼 외계의 가혹한 환경 속에 있는 듣보잡 행성이라거나.(…)]들에는 당연히 지성을 갖춘 생명체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행성들이 뭐 특별하네 기적 같네 하는 표현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므로.
반응
과학자들의 냉소
인간원리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은 상당히 싸늘한 편이다. 그나마 희귀한 지구 가설은 좀 마이너하긴 할지언정 나름대로 가설 대접은 받고 있는데, 만약 어떤 과학자가 미세 조정된 우주 드립을 쳤다가는 "저 사람 좀 이상해졌나 보다"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 게다가 하도 자주 지적설계와 함께 일종의 연합학습(?)을 받다 보니, 과학자들 중에서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신합리주의 계통의 과학 대중운동가들이나 무신론자들은 아주 학을 떼는 경우가 많다.
특이하게도 다중우주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원리에 약간 더 우호적인 경우가 있다. 이 입장에서는 다중우주설이 인간원리를 피해가거나 내지는 분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안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다중우주설은 그냥 우주 복권에 불과하다" 라는 드립도 나오기도 했다.] 이런 비판은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 물론 어떤 과학자들은 진심으로 인간원리를 과학의 이름으로 효과적으로 분쇄하기 위해 다중우주설을 지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여기서 그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 잘 알려진 네임드 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역시 "다중우주설은 인간원리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의외로 진지한 사람들
인간원리는 곧 과학계 외부로 퍼져나갔고, 뜻밖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인간원리 자체를 옹호하려 하거나 지구가 특별하다는 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인간원리와 같은 것이 나타나는지, 어째서 인간원리를 옹호하게 되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특히 철학 등의 인문학에서도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현주소를 느끼는 데에는 남의 일이 아니었으므로, 이들 역시 인간원리 논쟁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여기서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비유를 소개하기로 한다. 출처는 L.Witham. pp.95~97.
- 사형수의 비유 : J.레슬리[* 구엘프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불가지론자. 그는 신학자들이 인간원리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 어떤 사형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말뚝에 묶이고 50여 명의 1등 사격수들이 그를 처형한다. 그런데 모두 제대로 총을 쏘았는데 그 사형수는 살아남았다. 단 한 명도 그를 맞히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적같이 살아난 사형수는 "이들 모두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나는 현 상황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것에 깜짝 놀라게 된다. > > 이 경우 이 사형수는 50 여명의 사격수들이 모두 자신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자신은 무한히 많은 소총수들 중 한 부대에 의해 사형집행을 당했다가 살아남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두 가지로 추론하게 될 것이다. > > 즉, 인간 또한 우주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깜짝 놀라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특별히 설계된 결과인가 아니면 단지 우연한 결과인가를 따지게 될 것이다. 인간이 우주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인간원리라는 개념을 이끌어오게 되며, 여기에 대고 "그것이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라고 반응하는 것은 사려 깊은 사람이 취할 만한 언행이 아니다.
여기서 레슬리의 결론은 분명하다. 인간원리라는 떡밥이 던져졌을 때 그것에 대해 섣불리 냉소로 일관하지 말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이해해 주라는 것. 그는 더 나아가, 인간원리가 자연스러운 반응이긴 하지만 어쨌든 설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며, 여기에 가장 적절한 대답은 아마도 다중우주설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 옷가게의 비유 : M.리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천문학 교수이자 과학vs종교 떡밥에 종종 참여하기도 한다. 그는 레슬리의 의견 중에 냉소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은 수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발전시켰다. 그는 2011년에 템플턴상을 수상하면서 리처드 도킨스와 대립한 바 있다.]
> 어떤 옷가게가 있다. 이 옷가게는 매우 크며 진열장에 옷이 가득 걸려 있다. 그 사이로 고객이 걸어 들어가서 옷을 고르다가, 만일 그가 자신에게 꼭 맞는 사이즈의 옷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 이 옷은 누군가가 그 고객을 위해 특별히 설계해 둔 것이거나 아니면 무수히 많은 옷 중 운 좋게 고객에게 맞는 옷일 것이다. > >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우리의 우주도 수많은 우주 중에서 선택된 하나라면 우리의 우주에서 설계나 미세 조정된 구조를 발견해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즉, 우리 우주의 여러 조건들은 우리 우주를 생명이 존재 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전제가 된다.
리스의 비유에서도 역시 인간원리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부분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지만, 그보다 강조되는 것은 인본원리는 그 본질적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레슬리보다 더 다중우주설에 깊이 의존하면서 인간원리의 이해를 시도한다.
손님에게 있어서 옷은 매우 특별하고 놀랍게 여겨질지 몰라도, 옷가게 주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옷가게 주인이 그 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느끼는 기쁨은 비난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가 수많은 다중우주 중 하나라고 할지언정 우리 인간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우주는 매우 특별하고 놀랍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손님이 느끼는 기쁨을 예측할 수 있듯이, 인류가 우주를 둘러보며 느끼는 기쁨 또한 역시 예측할 수 있다.
단, 리스의 비유는 우리가 마치 옷가게에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듯이 다중우주를 확실히 관찰 가능하고, 그것이 명백한 과학적 이론으로서 위상을 굳게 다졌다는 전제 하에서[* 적어도 2014년 현재로서는 호기심 반 회의 반 정도의 반응 속에서 지지자들이 점차 지분을 넓혀 가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설득력을 가진다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관련 항목
* 다중우주 * 유신론적 진화론 * 외계 행성 * 외계인 * 페르미 역설 * 종교 * 과학vs종교 * 지적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