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핵무기 개발
일본의 핵무기 개발(Japanese nuclear weapon program)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동안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였으나,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개발에 필요한 여러가지 제반 사항이 매우 부족하여 핵무기 설계도 못하여 개발을 하지 못하였다. 현재 일본엔 1960년대 지어진 도카이 재처리 공장과 도카이 우라늄 농축 공장이 존재하지만 미·일 원자력 협약에 의하여 일본은 핵폭발 장치의 제조&연구를 못하게 되어 있으며<ref name="규정사항"/>, 일본 내의 모든 핵물질은 IAEA보장조치의 엄수와 미국, 영국, 프랑스와 맺은 조약에 따라 감시가 되고 있다.<ref name="규정사항">Template:웹 인용</ref><ref name="협정">Template:웹 인용</ref><ref>Template:웹 인용</ref>
독일에 제안
일본은 1960년대 서독 정부에 핵무기 개발을 함께 추진하자고 제의를 했었다가, 서독 정부로 부터 거절을 당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4&aid=0002343357</ref> 당시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국제적으로 감시해도 핵분열 물질의 5% 정도의 추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핵탄두 생산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794867</ref> 보통 원전 연료용 저농축 우라늄의 수출입 과정에서 많은 오차가 생기곤 한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057517</ref>
2010년 일본이 한 해 동안 사용한 원전 연료용 농도 5%의 저농축우라늄(SEU)은 1600톤이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391963</ref> 1969년 일본 외교관의 "5% 발언"을 적용하면, 1600톤의 SEU 수입량에 5%(80톤) 정도는 빼돌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농도 5% 저농축우라늄(SEU) 80톤은 농도 100% 고농축우라늄(HEU) 4톤이다. 농도 100% HEU 5 kg이면 TNT 20 kt급 핵폭탄을 제작할 수 있으므로, 800발의 핵탄두 분량이다.<ref>The Amount of Plutonium and Highly Enriched Uranium Needed for Pure Fission Nuclear Weapons Natural Resources Defence Council(NRDC)의 수석과학자 Thomas Cochran의 보고서</ref> 요컨대, 1969년 일본 외교관의 "5% 발언"을 2010년에 적용하면, 2010년 한 해에만 일본은 TNT 20 kt급 핵폭탄 800발을 확보할 수 있었다.
플루토늄 문제
플루토늄은 핵무기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물질로서, 북한은 플루토늄 40 kg을 보유한 것 같다고 전 세계가 크게 우려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일본은 40톤의 플루토늄을 유럽으로부터 수입하여 보유하고 있다.<ref>일본이 누리고 있는 '핵 기득권'은 타당한가 :: 네이버 뉴스</ref>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IAEA과 맺은 원자력 협정에 의하여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ref name="규정사항" /><ref name="협정" />
핵연료 재처리시설 보유국
북한 영변에는 PUREX를 이용한 핵연료 재처리 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핵연료 재처리는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여 다시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해낼수 있다.
1977년 일본핵연료변환회사(JCO)는 미·일 원자력 협정에 의거 이바라키 현 도카이 촌에 재처리 공장을 지었다. 대한민국은 1980년 핵연료 재처리공장을 준공할 예정이었는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모든 게 중단되었으며, 2010년 미국과 파이로프로세싱기술에 대해서 논의중에 있다(한국측에선 파이로프로세싱기술이 재처리가 아니라 재활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은 원래 건식재처리 기술<ref>Template:웹 인용</ref> 에 포함된다)
1992년 12월 롯카쇼 촌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완공하였으며, 2006년 3월에는 재처리 공장을 완공하였다. 2006년 현재 상업용 재처리 공장은 전 세계 5개국(일본, 러시아, 인도, 영국, 프랑스)에서 가동중에 있다.<ref>Reprocessing plants, world-wide</ref>
우라늄 농축 시설
핵폭탄은 우라늄을 무기급의 고농도로 농축해서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우라늄 농축 시설도 국제적인 규제대상이다. 2011년 현재 대한민국에는 공식적으로 우라늄 농축 시설이 없으며,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일본에는 우라늄 농축 공장이 있으나, 미·일 원자력 협정에 의하여 20%이상 우라늄을 농축할시 미국과 사전 동의를 거쳐야만 한다.<ref>원자력 지식 정보 관문국</ref>
탄도 미사일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에 따라 지대지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지 않는다. 해군 구축함에도 함대지 미사일의 보유가 금지되며, 공군 전투기에도 공대지 미사일의 장착이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통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는 2005년 관방장관 당시 지대지 핵탄도 미사일의 보유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공식적으로 군대는 없지만,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군대가 있다.)
일본은 1966년부터 시험 발사를 하고, 1970년에 일본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고체연료 로켓의 람다 4S로 최초의 인공위성 오수미를 발사했다. 1975년에는 일부의 핵심정보가 도입할 수 없다 조건으로 미국에서 기술을 도입한 액체연료 로켓의 N-I에 인공 위성을 탑재해서 발사했다. 그리고, 당시로서 세계 최초로, 탄도 미사일은 우주발사체와 다르다고 주장하였고, 현재에도 미사일은 없는데 우주발사체만 보유한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의 상업용 로켓이 탄도미사일과 기술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ref>https://realtime.wsj.com/korea/2011/10/31/%EC%9D%BC%EB%B3%B8-%EC%9B%90%EC%9E%90%EB%A0%A5%EA%B8%B0%EC%88%A0-%EB%B3%B4%EC%9C%A0%EB%8A%94-%EB%8F%84%EB%B0%9C%EC%A0%81%EC%9D%B8-%EB%AC%B8%EC%A0%9C/</ref>
반면에, 2006년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 외무부에 "한국이 우주발사체를 보유하면 핵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내서 한국의 우주발사체 KSLV-I의 개발을 저지하려고 하였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1442710</ref> 한국은 1978년 사거리 165 km의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였으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으며, 1980년 준공예정이던 핵재처리공장 건설이 중단되었다. 당시 미국은 사거리 100 km 이상의 탄도 미사일은 명중률과 비용 대 효과의 문제로 핵미사일로 간주했으며, 따라서 한국의 탄도 미사일 개발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것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적극적 핵개발 반대는 1974년 인도가 핵실험을 성공한 것에 충격을 받아, 전 세계의 핵개발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미국의 정책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체로켓
일본은 우주발사체 또는 관측 로켓이라는 명목으로 계속적으로 고체로켓을 개발, 발사해 왔다. 일본은 초기에 연필만한 펜슬로켓에서, 아기 크기만한 베이비 로켓부터 개발을 시작해왔다.
일반적으로는 민간용 우주발사체는 액체 연료를 사용하려 하고, 군사용 탄도 미사일은 가급적 고체 연료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고체로켓은 장시간의 액체연료 주입과정이 없어서 정찰위성 등에 사전 포착이 안 된다. 고체연료 핵미사일은 미사일 제작시 미리 연료를 주입하여 수십 년간 지하 사일로에 보관하다가 유사시에 바로 발사만 하면 된다. 이렇듯 고체연료로켓은 신속성이 있어 전장에 쉽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대형 고체연료로켓 제조를 제한하고 있다.
- M-V 로켓 - 2000년 최초발사, 3단 고체로켓, 무게 140톤, 화물 1,800 kg
- 엡실론 로켓 - 2013년 최초발사, 3단 고체로켓, 무게 90톤, 화물 1,200 kg
아베 신조
아베 신조 총리는 관방 부장관이던 2002년 5월 13일, 와세다 대학교 공개강연에서 "일본이 원자탄을 갖는 건 헌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결심하면 1주일 이내에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5&aid=0000256605</ref> 보통, 한 두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핵무기를 가졌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핵탄두의 설계, 생산, 배치, 실험을 모두 완료한 상태에서, 몇 일만에 수백기의 미사일에 간단하게 핵탄두만 조립하면, 바로 목표지점을 향해 발사할 수 있게끔 핵보유를 하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액체연료 주입과정도 없다.
영국의 제인스 그룹 군사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영국과 비슷한 수준인 3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조립하지 않은 채 며칠 만에 조립할 수있는 상태로 보관 중이라고 본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216575</ref>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 참조.
후쿠시마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은 미국의 지원을 거부하였는데, 이는 원전에 핵무기를 은닉한 것이 발각될까봐 그런 것일 수 있다는 중국의 의혹 제기가 있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2&aid=0002255220</ref> 일본 정부는 부인했다.
연표
- 1957년 -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국회 답변. 자위를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은 합헌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인데 사형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에 “방위상 핵무장 필요에 쫓기게 되면 일본은 핵무장을 한다”는 비공식 방침을 전달했고, 놀란 미국은 미일동맹 강화를 서둘렀다.
- 1961년 11월 -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방일한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에게 “내각 안에 핵무장론자가 있다”고 말했다.
- 1964년 10월 16일 - 도쿄올림픽 기간 중에 중국 핵실험 성공. 일본 강력 반발
- 1964년 12월 -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에드윈 라이샤워 주일 미 대사에게 “타인이 핵을 가지면 자신도 가져야 한다는 건 상식”이라고 말했다.
- 1964년 12월 - 사토 내각 내각조사실 보고서 '중공 핵실험과 일본의 안전보장'를 정책 브레인 와카이즈미 게이가 작성. 일본이 비핵화는 유지하되, 중국보다 뛰어난 핵무장 기술으르 갖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대규모 원자력 연구와 우주로켓 연구가 필요하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3&aid=0002493088</ref>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동생이다.
- 1965년 6월 - 미국 군비관리군축국에서 '일본의 핵무기 분야에 관한 전망'이라는 45쪽 비밀보고서 작성. 2004년 5월 10일 비밀해제<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645120</ref>
- 1971년까지 연간 30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이 있다.
- 1975년까지 핵무기 탑재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연간 100기 개발할 수 있다.
- 1971년이면 핵실험이 가능하다.
- 1967년 - 사토 총리는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발표. 197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 1968년 - 사토 내각 내각조사실 보고서, 소량의 핵무기 제조는 쉬우며, 1972년 핵재처리장이 준공되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2207893</ref>
- 1969년 - 일본 외무성 비밀보고서, '외교정책의 대강' 작성. 잠재적 핵보유 능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 1970년 - 사토 내각 내각조사실 보고서, 일본은 세가지 이유로 핵무장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 좁은 국토에서의 지하 핵실험 어려움
- 산업 집중에 따른 핵공격 취약성
- 핵무장에 따른 외교적 고립
- 1970년 - 중국 우주로켓 발사 성공
- 1970년 - 일본 우주로켓 발사 성공
- 1975년 - 일본 과학기술청 원자력담당 과장이 도쿄의 영국대사관에 “일본은 3개월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 28일 영국 외무부 기밀문서 공개
- 1999년 - 방위청 정무차관 니시무라 신고가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유리하다”고 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 2001년 - 일본 정부 고위 관료가 잡지 인터뷰에서 “3년이면 핵무장 가능하다”고 말했다.
- 2002년 5월 13일 - 아베 신조 관방 부장관의 와세다 대학 강연.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도를 넘지 않는다면, 핵무기든 재래무기든 상관없이 보유하는 걸 헌법이 금하고 있진 않다.”
- 2005년 2월 25일 - 유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일본은 마음먹으면 90일 안에 핵폭탄을 제조하고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고 있다."
- 2006년 - 북한 핵실험 성공
- 2006년 - 아베 신조 관방잔관, "일본이 원자탄을 갖는 건 헌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결심하면 1주일 이내에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는 외조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총리를 이상형이라고 말한다.
주석
<references/>
같이 보기
- 일본의 핵무장론(ja:日本の核武装論)
- 미일 핵반입 문제(ja:日米核持ち込み問題)
- 비핵3원칙(ja:非核三原則)
-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
- 대한민국의 핵무기 개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량살상무기
- 핵전쟁
- 제3차 세계대전
바깥 고리
- FAS: Nuclear Weapons Program: Japan -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 Japan's A-Bomb - site claiming that Japan detonated an atomic bomb
- Japan's atomic bomb History Channel International documentary
- Military Magazine https://www.grunt.com/scuttlebutt/corps-stories/ww2/atomicbomb.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