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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أسامة بن لادن

||<tablealign=right>||attachment:/빈라덴123.jpg?width=250|| || 탄생 || 1957년 3월 10일 || || 사망 || 2011년 5월 2일 ||

목차

개요

테러단체 알 카에다의 전 지도자이자 범죄자. 죽기 전까지 현상금 랭킹 1위였다.

본명우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딘[* 번역하면 라딘 가의 아와드의 아들 무함마드의 아들 우사마. '오사마'는 사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을 가진 사람도 꽤 많다.#](أسامة بن محمد بن عود بن لادن). 대부분의 아랍인 인명, 단체명과 마찬가지로 영어식 철자로 적은 '오사마 빈 라덴'으로 잘 알려져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오사마가 아니라 우사마라고 부르며[* 우습게 들리겠지만 'オ様 ビン ラディン'이라서 오사마라고 알려져 있다!] 터키에서는 'Usame bin Ladin' 으로 불린다. 미합중국 해병대에는 "빈 라덴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만, 둘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우리 일이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출생 배경과 어린 시절

https://resources2.news.com.au/images/2007/09/10/va1237266399732/Bin-Laden-5649894.jpg 어린 시절의 빈 라덴

attachment:Example.jpg 1971년도 당시 가족들과 스웨덴에서 촬영한 사진속 빈 라덴(오른쪽 2번째 초록색 상의)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알 카에다의 수장. 원래 사우디의 갑부 집안 라덴 가문의 아들들 중 하나(52명의 자식 중 17번째)로 집에서도 내놓은 자식 취급받는 망나니였다. 이 때문에 방탕한 10대 시절을 보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경전 공부에 심취했다고 한다. 이쪽 동네 분위기를 감안하면 '모범생'이었다는 것이다. 경전 공부를 과외선생(?) 불러다 시킬 정도니...

흥미로운 것은 청소년기 선생님이었던 서방인 교사는 빈 라덴을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년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특히 빈 라덴 가문은 미국과도 사이가 좋은데다 미국 석유기업의 주주이기도 해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에서도 이 부분이 음모론의 일부로 등장한다. 그럴 만한 것이 부시 가문과 엄청 친하다고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보면 타워크레인과 대형 카 크레인에 영어로 크게 빈 라덴이라고 적혀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하여간 잘하는 건 별로 없었지만 광신적인 이슬람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다 돈도 좀 있어서 이슬람권의 상징과도 같은 메카와 이슬람교 성지에 이교도인 [미군]이 주둔중이라는 이유로 알 카에다를 이용해 미국에 테러를 감행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의 미 대사관을 공격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하는데 결국 성공하여 공식 사망자만 500명이 넘는 희생자(부상자도 5,000명에 육박한다!)를 발생시켜 당시 대테러리즘에 관심있던 사람들에게 '중동의 깡패'라는 악명,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집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테러 발생 직후 가족들이 말하기를 "우린 그런 놈 모릅니다". 거기다 가족 전체가 이놈때문에 라딘으로 성을 바꾸면서 호적에서 파였다. 게다가 자식 중 한 명은 아버지 빈 라덴과는 전혀 다른 정치방향을 걷고 있다.[* 일단 아버지를 존중한다고는 했다.]

장신이다. 공식적으로 서방세계에서는 빈 라덴의 키를 6'4"(약 193cm)에서 6'6"(약 198cm) 정도로 추정한다. 사담 후세인도 190cm에 가까운 장신이니 뭔가 공교롭다는 느낌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빈 라덴의 생모는 여성이지만 키가 200cm나 되었으며(!!) 빈 라덴은 이 영향을 받아서 체격이 상당히 크다.#

폭력의 역사

빈 라덴은 엘리트 고등학교인 Al-Thager Model School을 졸업하고 역시 명문인 사우디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에서 경제와 경영을 공부했다.[* 빈 라덴의 이후 학력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가 존재하는데 토목공학으로 1979년 학사학위를 받았다는 자료도 있고 반면에 행정학으로 1981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다는 자료가 있으며 빈 라덴이 대학 3년차에 자퇴했다는 자료도 있다.] 그 후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에 압둘라 앗잠 휘하의 의용 무자헤딘으로 참전하였다.

이때만 해도 미국과 아니 정확하게는 CIA와의 관계는 서로 절친이었다고 한다. 무자하딘 뒤를 봐주고 있던 CIA나 ISI(파키스탄 정보부) 입장에서는 부자집 도련님이 편한 생활을 마다하고 사악한 빨갱이들과 싸우겠다고 최전선 현장에서 싸우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특히 서방에서 교육을 받아 영어도 잘하니 그 위치는 쉽게 상상이 간다.[* 1988년작인 영화 《람보 3》는 영화 마지막에 "이 영화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용감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는데 그 13년 뒤에는...]

1984년에는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등을 활용, 마크탑 알 키다맛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였고 이는 아랍 세계의 의용병, 무기와 자금(주로 빨갱이가 싫은 CIA 와, 소련과 공산주의 세계에서 누가 오야붕인가 겨루고 있던 중국에서 공급되었다)을 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주된 통로가 되었다. 1988년에는 마크탑 알 키다맛의 조직을 분리하여 앗잠은 무자헤딘에 대한 지원을 맡고 빈 라덴 자신은 좀 더 군사적인 활동에 집중하여 1989년에는 아프간 잘랄라바드 전투에서 일어난 전투에 참여하는 등 수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빈 라덴 휘하의 조직은 현재의 알 카에다로 이어진다.

199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옮기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는데 사우디에서 보유한 재산들을 가져나오지 못했다. 1993년에는 수단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소말리아에서 UN군을 공격한 민병대 일부가 알 카에다인 것으로 밝혀져 미군의 추적을 받기 시작하자 다시 거처를 옮긴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라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싸웠다고 보기에는 각각의 행동이 시기적으로 한참 차이가 있다.

탈레반의 결성은 더욱 늦어서 1994년 10월에나 결성되었다. 게다가 더 우스운건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을때 거처한 곳은 잘랄라바드였는데 탈레반은 잘랄라바드를 군대로 공격해 점령했다. 즉, 빈 라덴과 탈레반의 관계는 사실상 그 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와중에 빈 라덴은 2001년에 또 9.11 테러를 통해 미국 본토 공격에 성공, 알 자지라 방송에 자신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인증영상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서 미국의 주의를 끌었다.

여기에 제대로 열받은 미국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불과 이틀만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깡이 미친 듯이 세고 국제사회를 철근처럼 씹어먹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는 빈 라덴의 인도를 거절했다.

그렇게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시작되었다. CIA 요원들이 다시 아프간으로 건너가고 곧 특수부대원들이 뒤따라 들어가 아프간 부족들을 규합하여 전쟁준비를 시키기 시작, 북부동맹군이 탈레반을 밀어내는 사이 미군은 차츰차츰 지원하며 정규군을 투입해 전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탈레반은 순식간에 거덜나고 아프간은 미국의 점령상태가 되었다.

한편 2004년 10월, 빈 라덴은 인터넷을 통해 9.11 테러를 왜 계획하게 되었는가를 밝혔다. 이스라엘 공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붕괴되는 베이루트의 고층 빌딩과 무고한 희생자들의 모습을 TV로 보고 빈 라덴은 미국의 건물을 공격해 그대로 되갚아줄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빈 라덴이 말한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폭격은 1982년 6월의 이스라엘레바논 공격(중동전쟁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보고 결심하고 22년 뒤 빈 라덴과 휘하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에 끔찍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빈 라덴을 잡아라!

>Q: 왜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도 알아보는 미국님이 빈 라덴을 안 잡나요? >A: 다음 정권을 위해 남겨둔 거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잡으려고 아프간까지 쳐들어가서 전쟁을 일으켰으나 정작 작전의 목표물인 빈 라덴은 잡지 못했다.

탈레반의 패배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쟁은 핵심목표인 빈 라덴이 도주하면서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이라크전으로 주춤해진 미군의 감시를 틈타 다시 세력을 키워나갔고 빈 라덴은 간간히 자신의 성명을 담은 비디오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온갖 첨단장비와 5,000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빈 라덴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 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작전 초반에 빈 라덴을 거의 잡을 뻔했다. CIA의 아프가니스탄 파견대였던 조브레이커(Jawbreaker) 팀이 빈 라덴의 흔적을 확보하고 빈 라덴이 있는 건물을 확실히 파악하는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CIA는 레인저 1개 중대 정도만 와도 확실하게 제압가능하다며 빨리 병력을 보내달라며 호출을 넣었으나 정보가 전달되던 와중에 무언가가 일이 대차게 꼬여버려서,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무능 때문에 군에서 씹어버렸다(...) 그리고 빈 라덴 일당은 악천후를 틈타 폭풍을 타고 탈출, 결국 놓쳤다.

한술 더 떠서 아프간에서 무인기 '프레데터' 에 무장을 추가해서 시험운용하다가 렌즈에 잡혔다. 문제는 그 당시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던 프로젝트라서 발사명령을 내릴 만한 사람과 연락이 전혀 안되었다. 발사 버튼만 눌렀으면 헬파이어 미사일에 맞아 글자 그대로 가루가 됐을 상황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럼즈펠드 장관은 노발대발했고(정확히는 지랄발광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미군이 무인 공격기를 대대적으로 운용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빈 라덴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아프간에서 사라진 뒤로 빈 라덴의 행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후 - 넵튠 스피어 작전

> "신과 국가를 위하여, 제로니모를 사살했다. 제로니모를 사살했다. > "For God and Country, I pass Geronimo. Geronimo E.K.I.A.(Enemy Killed In Action의 약자로 '교전중 적 사망'이라는 뜻)" > - 특수부대 DEVGRU가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한 후 임무 성공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낸 암호 무전.

> "정의가 실현되었다. (Justice has been done.)" > -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빈 라덴 사망에 관련한 백악관 연설에서.

2011년 5월 2일, 미국시간으로 밤 11시경에 진행된 긴급 기자회견에서 빈 라덴이 사살되었음이 공식발표되었다.

빈 라덴이 숨어있던 곳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동쪽 50km 지점에 위치한 아보타바드 호화 주택가에 위치한 안전가옥이었다(빈 라덴의 침실). 더군다나 지역 경찰서와는 불과 250m 거리였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산골에 은둔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영 동떨어진 곳이라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미국은 장기간의 첩보로 빈 라덴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실제 위치를 확신한 것은 겨우 몇 달 전이었던 듯하다. 결국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DEVGRU(US 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 미 해군 특수전 연구개발단의 약칭 : 舊 SEAL 6팀) 가 아보타바드로 침투해 암호명 '제로니모'로 명명된 빈 라덴을 제거하는 넵튠 스피어 작전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지상군 투입없이 폭격으로 사살하는 것도 고려되었지만 빈 라덴이 은거한 아보타바드의 안전가옥이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56Km 떨어진 곳이라 수도 방공권 내에 들어있어 무인기를 이용한 공습이 어려웠고[* 무인기의 월경작전은 종전부터 파키스탄 정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있었으나 사전에 허가받지않은 수도 방공권 내의 접근은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무리였다. 물론 사전통지 또는 허가를 받았다가는 빈 라덴은 바로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ISI 내부에 탈레반 세력이 침투해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설령 무인기가 파키스탄군 방공망에 격추되지 않고 공습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무인기의 제한적인 폭장량으로는 안전가옥에 대한 확실한 파괴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3월에는 B-2 폭격기 2대를 이용해 2,000파운드 폭탄 수십발을 투하한다는 계획안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주변에 은퇴한 파키스탄군 장성이나 정치인, 기업가 등 엘리트들이 사는 호화주택이 많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었고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파키스탄 현지시간 2011년 5월 1일 밤 01시00분 DEVGRU 대원 25명[* 전직 DEVGRU 대원인 맷 비소넷의 수기 "No Easy Day"에 따르면 작전에 참가한 인원은 SEAL 대원 22명,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 폭발물 처리반) 대원 1명, 통역관 1명, 그리고 카이로라는 이름의 전투돌격견(CAD) 1마리라고 한다.]은 [wiki:"UH-60" MH-60 페이브 호크] 헬리콥터 2대와 CH-47 2대에 분승하고 빈 라덴의 안전가옥을 기습공격했다.[* 투입된 헬리콥터의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이 위키의 근거는 작전에 참가한 전직 DEVGRU 대원 맷 비소넷(필명 마크 오언)의 수기인 [No Easy Day]][* 이 중 [CH-47] 2대는 예비대 및 중간급유용이었다. 이 헬리콥터들에 타고 있던 예비 병력은 안전가옥에 직접 진입하지 않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작전 종료후 퇴출시 추락한 페이브 호크 승무원들과 대원들 및 현장에서 노획한 각종 자료로 늘어난 짐을 실었고 중간에 착륙해 연료가 바닥난 페이브 호크에 급유작업도 수행했다.]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던 저택은 주위의 저택보다 거의 6배 가량 큰 데다가 半요새화되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매우 널찍한 앞마당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DEVGRU 대원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착륙해 내부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빈 라덴의 경호원들은 로켓탄과 소총을 발사하며 저항했으나 모두 제압되었다. 빈 라덴은 자신의 침실에서 사살당하였고[* 첫날 국방부 발표에서는 빈 라덴이 무기를 가지고 저항하였다고 했으나 백악관에서 이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하였다.] 함께 있던 여성이 총격전 중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역시 첫날 발표에서는 이 여성이 빈 라덴의 아내라고 발표했으나 백악관측에서는 이것 역시도 부인하였고 인간방패였다는 설 역시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No Easy Day'와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빈 라덴의 부하 아브라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빈 라덴 검거 당시 같은 건물에 있던 빈 라덴의 27세 연하의 아내는 DEVGRU 대원들에게 덤벼들었으나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attachment:sh00.jpg?width=470 attachment:sh01.jpg 현장에서 발견된 페이브 호크의 꼬리날개

작전 과정에서 DEVGRU 대원들을 태운 MH-60 페이브 호크[* [UH-60] 블랙호크를 특수작전용으로 ~~마~~개조한 기체인데 파키스탄이 공개한 헬리콥터 잔해가 기존 페이브 호크와 비교할때 매우 독특해서 평범한 블랙호크 개조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거의 새로 나온 기종 수준이라고 한다.] 1대가 VRS(Vortex Ring State 와류고리 현상. 특정상황에서 공기가 헬리콥터 밑에서 돌아 조종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V-22가 뻔질나게 추락하는 원인이었다.)[* 당시 빈 라덴은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알흠다운 쓰레기 소각장을 자기 안전가옥에 만들어두었다. 당연히 이 지점이 LZ(Landing Zone: 착륙지점)로 선정되었는데 마침 벽을 교도소 수준의 높이로 세워놔서 내부는 헬리콥터가 오래 체공하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로 추락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고 추락한 헬리콥터는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DEVGRU 대원들에 의해 폭파되었다. 사실 당초 작전계획서에는 헬리콥터 2대만 동원하기로 예정되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바마가 예비기가 전혀 없으면 작전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구출작전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져 작전을 그르친 사례가 있다.]고 하여 결국에는 총 4대를 동원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헬리콥터 1대를 잃었음에도 나머지 3대에 전원이 무사히 탑승해서 작전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군대도 안 갔다온 대통령이 군 전문가들이 입안한 작전의 문제점[* 다만 앞서 이야기한 이란 대사관 사건이 미군 특수전사에 미친 파급력이 워낙 컸던 만큼 예비기의 중요성을 아예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적고 작전의 안정성보다는 은밀성 쪽에 무게를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듯 싶다. 사실 이란 대사관 구출작전의 경우는 극단적인 장거리 침투항정 + 급격히 악화된 기상 + 조종사들의 훈련도 부족 등 각종 악재가 겹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급의 사건이었던 면도 있다.]을 신통하게 짚어낸 것이다. 게다가 빈 라덴의 은신처에 있던 노트북에서 대량의 정보를 얻었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한 정보관계자에 의하면 노트북에 있는 정보의 10분의 1만 써먹을 수 있어도 거의 노다지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초기의 불확실한 정보로 인한 오보들이 지금도 전혀 고쳐지지 않은 채 알려져있다. 사실 한달쯤 지나서 자세한 정황이 정리되기도 전에 관심을 끊어서 생긴 사태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헬리콥터의 추락원인이 격추에서 기계결함으로 바뀐 채 전혀 수정되지 않고 있다. 또한 CIA, SAD가 개입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정보다. 일단은 전쟁 상태가 아닌 파키스탄에 미군이 군사작전을 할 명분이 없다시피 하니까 CIA 소속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html <iframe width="42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WfkCEffFEN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WWE 경기장에서 존 시나가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알리자 전 관중이 USA를 외치고 있다. "compromised to a permanent end" 라는 시적인 표현을 썼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인들은 1945년 8월 광복을 맞이한 한국인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만세를 부른 것처럼 부왘을 울렸다. 악마가 드디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백악관에 몰려들어서 USA를 연호하고 미국 국가를 부르는 등 하루종일 감회에 젖었다. 거의 10여년만에 불구대천원쑤의 각을 떠줬으니 기뻐할 만하다.[* 미국에서의 빈 라덴은 아랍인 히틀러 취급을 받는다. 뉴스에서도 앵커가 빈 라덴 사살 소식이 들어오자 "Happy days! Happy days!" 라고 외칠 정도였다.] 또한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9.11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모임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빈 라덴 사살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렸고 빈 라덴 풍자 이미지도 쏟아졌다.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반기는 입장을 표했지만 알 카에다의 보복테러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빈 라덴이 살아있다고 테러를 안 하는 놈들도 아니다.

빈 라덴의 시신은 항공모함 CVN-70 칼 빈슨으로 옮겨져 9시간 만에 추를 달아 아라비아만에 수장되었다. 미국은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이슬람교의 전통이며 빈 라덴의 시신을 받아줄 나라도 딱히 없어서 수장시켰다고 발표했지만 세간의 평은 어차피 무슬림이라 화장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시신을 땅에 묻을 수도 없다 보니 빈 라덴의 무덤이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두른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당사자인 이슬람권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장시켜서는 안된다며 불쾌해하고 있다.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수장은 할 수 있지만, 이슬람식 전통 예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시신 수장은 이슬람 전통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시신은 빈 라덴의 가족(친척 외)에게 인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떠돌고 있는 시신 사진은 가짜다. 2009년에 합성되어 올라온 것이라고 하며 파키스탄 방송에서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방송을 내보냈고 이를 외신들이 앞다투어 올렸다가 가짜로 판명되면서 사진을 삭제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살된 빈 라덴의 모습이 너무 끔찍한 탓에[* DEVGRU 대원이 쏜 총탄2발에 후두부를 맞아 머리가 터져서 사망했다.] 사진이 공개될 경우 나타날 파장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악관에서 공개한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 왼쪽부터 조 바이든 부통령, [wiki:"버락 후세인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마셜 웨브 [공군][준장][* 합동특수전 사령부 소속. 그 뒤에 안경을 쓰고 검은색 넥타이에 카키 셔츠(미 해군 근무복)를 입고 뒷짐지고 있는 사람은 [합참의장]인 [wiki:"미합중국 해군" 해군][대장] 마이크 멀린 제독이다(자세히 보면 셔츠 칼라에 별 네 개가 붙어있다.). 준장을 자리에 앉혀놓고 대장을 뒤에 세워놓는 셈인데 그 이유는 웨브 준장이 넵튠 스피어 작전의 총지휘를 맡고 있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지휘통제실이나 CIC 등에서 레이더 같은 것을 조작하는 인원은 앉아있고 지휘관은 서서 돌아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실제 작전실행을 맡은 웨브 장군의 지휘권을 존중해주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조차 작전 내내 그 어떤 말이나 간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니스 맥도너 국가안보 부보좌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그런데 전직 백악관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작전이 길어지자 오바마는 지루하다고 중간에 나가서 카드 게임을 하다 다시 들어왔다고 한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좁은 방에 모여서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있는 드라마틱한 명작품이다. 공개된 지 며칠 만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알려진 것과 달리 사살 당시 빈 라덴이 무장하지 않았다고 5월 3일 밝혔다. 또한 여성을 인간방패로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영국 텔레그레프는 미국이 빈 라덴에게 비겁자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서 조작했다고 주장중이다. 그리고 사망한 여성은 빈 라덴의 아내가 아닌 다른 남성의 아내라고 주장하고 있다.# 'No Easy Day'와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빈 라덴의 부하 아브라의 부인이었고 사살되는 남편을 도우려다 함께 총에 맞았다고 한다.

타임 지에 따르면 빈 라덴이 사살될 때 같이 있던 여성은 빈 라덴의 세번째 아내 아말이었다고 한다. 빈 라덴의 방에는 무기가 있었으나 무장은 하지 않았으며 아내를 인간방패로 쓴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인 빈 라덴을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DEVGRU 대원들은 아말이 자살폭탄으로 무장했을 것을 염려해 아말을 밀쳐내고 장딴지에 총을 쐈다고 한다. 아말은 부상을 입고 기절했고 빈 라덴은 눈과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빈 라덴의 딸(12세)은 작전종료후 파키스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DEVGRU 대원들이 빈 라덴의 딸을 비롯한 가족과 측근을 데려가지않은 이유는 헬리콥터 1대가 기체고장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나머지 3대에 이들을 태울 정원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체포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비무장 상태에서 DEVGRU 대원들에게 생포되어 가족들 앞에서 사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작전 직후 미국 정부에서 밝힌 공식입장은 '빈 라덴이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생포할 수도 있었다' 였기 때문에 사실이라면 꽤나 논란이 될 듯 하다. 빈 라덴의 27세 연하의 아내의 증언으로는 찬장에 있던 AKSU를 집으려다 사살당했다고 한다. 이러면 처음에는 비무장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무장을 하려 한 것이니 사살한 것도 당연하다. 결국 DEVGRU 대원들은 규정에 따라 처리한 셈이다... 였지만 이는 비소넷의 증언과는 확연히 달라 조금 애매한 부분.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은 이번 작전은 암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전은 사살 또는 생포 작전이었으며 빈 라덴이 항복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생포되었다고 해도 빈 라덴의 운명은 10여 년 전에 최후를 맞은 [wiki:"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티모시 맥베이]처럼 약물주사형으로 처형되거나 이것 저것 증언하는 대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는 것이었겠지만.

한편 의도적이지 않게 이 사건을 실시간으로 트윗하게 된 사람이 있다. {{{#!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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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aib Athar]라는 트위터 사용자가 아보타바드 상공에 평소에는 보기 힘든 헬리콥터가 떠 있다는 트윗을 했는데... {{{#!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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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보니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발표되었고, 순식간에 그는 당시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체포되는 것을 라이브블로깅한 사람이 되었다(...).

{{{#!html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EYFhFYoDAo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2013년 1월 넵튠 스피어 작전을 배경으로 영화 《제로 다크 서티》가 개봉했다. 캐스린 비글로가 감독을 맡았고, 국내에는 2013년 3월7일 개봉했다

{{{#!html <iframe title='코드네임 제로니모' width='686px' height='386px' src='https://videofarm.daum.net/controller/video/viewer/Video.html?vid=v29dcsdBsBk81JVVIDdAlD1&play_loc=undefined' frameborder='0' scrolling='no' ></iframe>}}}

그런데 놀랍게도 2012년 12월, 넵튠 스피어 작전을 배경으로 한 또다른 영화인 《코드네임 제로니모》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블루스톰》의 감독이었던 존 스톡웰.

넵튠 스피어 작전에 참가했던 전직 DEVGRU 대원 매트 비소넷은 마크 오언이라는 가명으로 이 작전에 대한 회고록 No Easy Day를 출간해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이 책에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에서 사살당했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No Easy Day와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빈 라덴은 비무장 상태에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 총에 맞았고, 이후 방에 들어온 DEVGRU 대원들이 확인사살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No Easy Day는 2013년 2월 <No Easy Day 빈 라덴 암살작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도 발매되었다. 역자는 이동훈.

뱀발로 빈 라덴을 지칭한 코드명에 당연하게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격분했다. 미국 식민자들의 땅 도둑질에 맞섰던 선주민 영웅을 빈 라덴과 동급으로 취급해 버렸기 때문이다.#

향후의 전망

빈 라덴은 확실히 알 카에다의 핵심적인 지도자이기는 했으나, 빈 라덴 자신이 미국에 쫓기면서 공개적인 활동이 상당히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 대안으로 빈 라덴 사살 당시에는 세계각국의 지부가 상당히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알 카에다는 이미 빈 라덴 한 명이 사망한다고 단숨에 와해될 정도의 조직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빈 라덴은 알 카에다라는 조직에서 가지는 비중은 작지 않다. 정신적 지주이자, 핵심적인 리더이며, 막대한 재산과 인맥을 가진 중요한 물주임은 분명했다. 또한 빈 라덴이 가지고 있던 알 카에다 조직의 핵심적인 정보까지 미국의 손에 들어간 이상, 알 카에다는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빈 라덴이 사망하고 1,2년 사이의 기간 동안 고위급 알 카에다 간부들이 연달아 [wiki:"암살" 미국이 발급해준 지옥행 편도 열차를 강제로 타게 되었는데] 빈 라덴이 가지고 있던 정보로 추적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아마 지금쯤 지옥에서 빈 라덴과 함께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그 동안 쌓아둔 명성과 자산 덕에 버티고는 있었으나, 2014년 들어서는 이슬람 국가의 급격한 성장으로 알 카에다는 몰락하고 있다.

파키스탄, 아랍 세계, 그리고 빈 라덴

빈 라덴이 아프간, 파키스탄 산골짜기도 아닌 파키스탄 시가지의 호화 안전가옥, 그것도 군사학교 코앞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파키스탄은 혹시 빈 라덴과 한패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빈 라덴 사망보도 직후에 CNN에서 진행된 대담에 따르면 빈 라덴이 거처하던 숙소는 빈 라덴 사망 당시 약 6년가량 지난 건물이었는데 이러한 특수한 건물(건물 주위에 특수장벽이 있다고 한다)을 지은 이유는 역시 빈 라덴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심증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작전에 대해서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작전을 끝내고 귀환하던 미군 헬리콥터 두 대가 파키스탄군의 공격을 받을 뻔한 일도 있었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 연설에는 작전에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의 도움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었고 테러와의 전쟁에 파키스탄의 동맹이 필요하였다는 점도 언급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자유이나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게 파키스탄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기 위해 러시아나 이란을 통과할 수는 없으니 결국 파키스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별로 미덥지는 않지만 참고 친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날개달린 코카인(Feathered Cocaine)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빈 라덴은 아랍의 갑부들이 그렇듯 를 몹시 좋아해서 1년에 한두 차례는 꼭 매사냥을 나갔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한 루트로 빈 라덴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한 매 보호가가[* 지금 중앙아시아의 매는 밀렵으로 인해 거의 다 멸종직전에 직면해있다.] 매 밀렵에 빈 라덴이 연루되어있음을 알고 있었고 매 사냥 예정장소까지 가르쳐주었는데 CIA는 쿨하게 씹었다. 그리고 5개월 후 9.11 테러가 터졌다.

또 사실 미국 UCLA대에서는 2년 전에 빈 라덴의 거처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뉴스기사) UCLA의 두 지리학자들과 그 학생들이 어떤 가설에 의하여 빈 라덴은 작은 마을에 은둔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신고할 가능성때문에 큰 도시(수도) 근처에 은거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위성과 빈 라덴의 자취들을 이용하여 가장 높은 확률의 은신처를 찿아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88.9%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 지역에 은거하고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한 것은 대학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CIA나 다른 기관들은 쿨하게 씹어버렸고 이 프로젝트는 결국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매 사냥이라든가 아보타바드 관련 언급들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둔 것일 가능성도 있다. 먼저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는 냉전이 끝나서 더 이상 첩보기관들이 수틀리면 별의별 짓을 다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였다. 그래서 빈 라덴 체포작전도 지금처럼 먼저 잡고 보는게 아닌 법 절차를 따져가며 잡는 것이라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주권침해와 국제법 위반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었고 아랍의 주요인물들은 자신들에게도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봐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 비협조적이었다. 거기에 몇몇 미국의 동맹국 유력자들은 빈 라덴과 친교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공격해서 국제법 위반과 동맹국 주요요인 사살이라는 악수를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9.11 이전에는 CIA도 빈 라덴이 매 사냥을 즐기는 것을 알고 요원들을 배치해 빈 라덴을 공격하려 했지만 바로 옆에 [UAE] [공군] 소속 비행기가 있는 것을 보고 작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UAE의 수장국인 아부다비의 왕자.[* 오바마 대통령이 CBS의 '60minutes' 라는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두바이 왕자 운운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거기에 아보타바드에 빈 라덴이 숨어있을 것이란 첩보나 분석은 몇 년전부터 나왔지만 파키스탄은 이에 대해 "그럴 리가 없다", "첩보가 잘못된 것이다", "니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의심하는데?" 는 입장을 견지해서 협조를 하지 않았다. 이번 작전에서 파키스탄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즉각적인 공격을 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2011년 7월 12일, ISI와 빈 라덴의 관계가 일부 드러났다. 파키스탄 군부는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중이다. 자칫 잘못하면 빈라덴과 함께 [wiki:"지옥" 용암이 펄펄 끓는 꿈도 희망도 없는 지하 막장]으로 아름다운 동행을 하게 생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성자 빈 라덴?

빈 라덴이 은신해있던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저택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성지화가 우려되었으나 "알면서도 뻥친 게 아니냐?" 라는 미국의 압박과 "파키스탄 정보부의 개쪽이다" 라는 파키스탄 정부 내의 여론때문에 # 2012년 2월에 철거가 완료되었다.


묘하게 아스날 FC 팬들에게는 아스날 광팬이라는 이미지가 붙어있다. 하이버리 시절 경기장에서 빈 라덴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숱할 뿐 아니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바뀐 뒤에도 종종 경기장을 찾았다는 소문이 돈다. 그런고로 아스날 팬 한정 아랍 축구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옛 빈 라덴의 심복들의 증언에 따르면

>"영국 축구클럽 아스널의 경기를 환호성을 지르며 볼 정도로 좋아했고 가끔은 직접 축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중에도 절대로 터번을 벗지 않았다. 키가 큰 빈 라덴은 배구에도 재능이 있어 공을 상대방 코트에 내리찍기 위해 뛸 필요가 없었다. 또 독서광이었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세계 10대 지명수배자 중 한 명으로 꼽혀 그 중에서 288억으로 가장 현상금이 높았으며, 인터폴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범죄자 7인 중에서 1위로 꼽았다고 한다. 이 지명수배서는 영화 《한니발》에도 나온다. 참고로 한니발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다.

한국 원화 지폐로(천원권, 오천원권, 만원권) 빈 라덴을 접을 수 있으며 실제로 접은 모습이 인터넷에 돌았다. 물론 구권지폐가 통용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신권으로도 가능하다.

넵튠 스피어 작전이 실행될 때 빈 라덴의 옆집에 살고 있던 파키스탄의 IT 사업가가 본의 아니게 트위터로 작전을 생중계(...)했다. 이 양반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아, 갑자기 웬 헬리콥터야. 시끄럽게" 같은 글을 올리다가 결국 "헐, 우리 옆집에 빈 라덴이 살고 있었음"(...)

폭스 뉴스에서는 'OBAMA BIN LADEN DEAD' 라는 자막 오타를 내서 비웃음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폭스 뉴스는 악질 수구언론으로 이름이 높아서 노리고 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었다.] 사실 CNN도 비슷한 실수를 했지만...

Rule 63에서는 빈 라덴 사후에 빈 라덴의 여체화 그림이 메인에 올라왔다. 안구 테러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 빈 라덴의 얼굴에 여자 몸 붙여놓은 그림이다. OME!]

와우 커뮤니티들에서는 빈 라덴의 딸이 사살될 당시 빈 라덴의 옆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에드윈 밴클리프 부녀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사실 마사토끼의 만화에 따르면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한다.#

저 깊은 바닷속 에서 살아있는 듯하다(...).

죽는 순간까지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빈 라덴이 죽은 이후 한 사회학과 학생이 통곡했는데 논문 주제가「여전히 잡히지 않는 빈 라덴과 미국 사회시장제도의 필연적 관계」였다고 한다... ~~뒈질려면 내가 졸업하고 뒈지든가~~

사후 아지트에서 찾은 문서에 의하면 한국 공격을 지시할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한국이 중동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음을 고려하면 그냥 대 서방공격의 일환으로 구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6년부터 2011년 사망할 때까지 머물던 아지트에서 빈 라덴은 의외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지트는 기본적인 페인트칠만 되어있고 기본적인 난방시설 이외에 에어컨 같은게 없어 수십명이 머무는 대저택임에도 한 달 전기, 가스 요금이 50달러 수준이었다고 한다. 식량도 자급자족하고 침대는 기본적인 합판으로만 짜여진 것이어서 그 저택을 취재한 타임지 기자는 마치 그곳이 캠프장 같았다고 전한다. 하긴 숨어살아야 했으니.

그리고 지명수배자인만큼 매우 신중한 생활을 했는데 빈 라덴은 불투명한 창문만 하나 있는 그 집의 3층에서만 머물며 집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게다가 그 저택에는 빈 라덴의 가족 이외에 행랑채에서 부하와 가족들이 살았는데 부하의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의 존재를 숨길만큼 신중한 생활을 했다. 누가 배신할지 모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CIA에서 정보원을 들여보냈을지도 모른다.

도피생활을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추적과 탐지를 피했는데 수염을 싹 미니까 아무도 못 알아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경찰에게 과속으로 걸렸는데도 경찰은 전혀 눈치 못챘다고 한다.

2012년 10월 9일에 발매되는 "오사마" 라는 소설에서는 테러리즘이 없는 평행세계를 무대로 빈 라덴은 펄프 픽션의 주인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탐정이 조사를 하면서 정말 빈 라덴이 소설 속의 인물인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의 최종보스 "클레릭" 하산 라시드는 오사마 빈 라덴이 모티브이다.

빈 라덴과 탈레반들이 좀비가 되어 세계를 위협하는 정신나간 B급 영화도 있는듯 하다. 제목은 OSOMBIE(...)

빈 라덴이 죽은 후, 알자지라 방송국에서 그의 2004년 생전 비디오를 녹화한걸 공개했다. 이 비디오가 대테러 전문가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 Praise be to Allah who created the creation for his worship and commanded them to be just and permitted the wronged one to retaliate against the oppressor in kind. To proceed:

Peace be upon he who follows the guidance: People of America this talk of mine is for you and concerns the ideal way to prevent another Manhattan, and deals with the war and its causes and results.

Before I begin, I say to you that security is an indispensable pillar of human life and that free men do not forfeit their security, contrary to Bush's claim that we hate freedom.

If so, then let him explain to us why we don't strike for example - Sweden? And we know that freedom-haters don't possess defiant spirits like those of the 19 - may Allah have mercy on them.

No, we fight because we are free men who don't sleep under oppression. We want to restore freedom to our nation, just as you lay waste to our nation. So shall we lay waste to yours.

No one except a dumb thief plays with the security of others and then makes himself believe he will be secure. Whereas thinking people, when disaster strikes, make it their priority to look for its causes, in order to prevent it happening again.

But I am amazed at you. Even though we are in the fourth year after the events of September 11th, Bush is still engaged in distortion, deception and hiding from you the real causes. And thus, the reasons are still there for a repeat of what occurred.

So I shall talk to you about the story behind those events and shall tell you truthfully about the moments in which the decision was taken, for you to consider.

I say to you, Allah knows that it had never occurred to us to strike the towers. But after it became unbearable and we witnessed the oppression and tyranny of the American/Israeli coalition against our people in Palestine and Lebanon, it came to my mind.

The events that affected my soul in a direct way started in 1982 when America permitted the Israelis to invade Lebanon and the American Sixth Fleet helped them in that. This bombardment began and many were killed and injured and others were terrorized and displaced.

I couldn't forget those moving scenes, blood and severed limbs, women and *****ren sprawled everywhere. Houses destroyed along with their occupants and high rises demolished over their residents, rockets raining down on our home without mercy.

The situation was like a crocodile meeting a helpless *****, powerless except for his screams. Does the crocodile understand a conversation that doesn't include a weapon? And the whole world saw and heard but it didn't respond.

In those difficult moments many hard-to-describe ideas bubbled in my soul, but in the end they produced an intense feeling of rejection of tyranny, and gave birth to a strong resolve to punish the oppressors.

And as I looked at those demolished towers in Lebanon, it entered my mind that we should punish the oppressor in kind and that we should destroy towers in America in order that they taste some of what we tasted and so that they be deterred from killing our women and *****ren.

And that day, it was confirmed to me that oppression and the intentional killing of innocent women and *****ren is a deliberate American policy. Destruction is freedom and democracy, while resistance is terrorism and intolerance.

This means the oppressing and embargoing to death of millions as Bush Sr. did in Iraq in the greatest mass slaughter of *****ren mankind has ever known, and it means the throwing of millions of pounds of bombs and explosives at millions of *****ren - also in Iraq - as Bush Jr. did, in order to remove an old agent and replace him with a new puppet to assist in the pilfering of Iraq's oil and other outrages.

So with these images and their like as their background, the events of September 11th came as a reply to those great wrongs, should a man be blamed for defending his sanctuary?

Is defending oneself and punishing the aggressor in kind, objectionable terrorism? If it is such, then it is unavoidable for us.

This is the message which I sought to communicate to you in word and deed, repeatedly, for years before September 11th.

And you can read this, if you wish, in my interview with Scott in Time Magazine in 1996, or with Peter Arnett on CNN in 1997, or my meeting with John Weiner in 1998.

You can observe it practically, if you wish, in Kenya and Tanzania and in Aden. And you can read it in my interview with Abdul Bari Atwan, as well as my interviews with Robert Fisk.

The latter is one of your compatriots and co-religionists and I consider him to be neutral. So are the pretenders of freedom at the White House and the channels controlled by them able to run an interview with him? So that he may relay to the American people what he has understood from us to be the reasons for our fight against you?

If you were to avoid these reasons, you will have taken the correct path that will lead America to the security that it was in before September 11th. This concerned the causes of the war.

As for its results, they have been, by the grace of Allah, positive and enormous, and have, by all standards, exceeded all expectations. This is due to many factors, chief among them, that we have found it difficult to deal with the Bush administration in light of the resemblance it bears to the regimes in our countries, half of which are ruled by the military and the other half which are ruled by the sons of kings and presidents.

Our experience with them is lengthy, and both types are replete with those who are characterized by pride, arrogance, greed and misappropriation of wealth. This resemblance began after the visits of Bush Sr. to the region.

At a time when some of our compatriots were dazzled by America and hoping that these visits would have an effect on our countries, all of a sudden he was affected by those monarchies and military regimes, and became envious of their remaining decades in their positions, to embezzle the public wealth of the nation without supervision or accounting.

So he took dictatorship and suppression of freedoms to his son and they named it the Patriot Act, under the pretense of fighting terrorism. In addition, Bush sanctioned the installing of sons as state governors, and didn't forget to import expertise in election fraud from the region's presidents to Florida to be made use of in moments of difficulty.

All that we have mentioned has made it easy for us to provoke and bait this administration. All that we have to do is to send two mujahidin to the furthest point east to raise a piece of cloth on which is written al-Qaida, in order to make the generals race there to cause America to suffer human, economic, and political losses without their achieving for it anything of note other than some benefits for their private companies.

This is in addition to our having experience in using guerrilla warfare and the war of attrition to fight tyrannical superpowers, as we, alongside the mujahidin, bled Russia for 10 years, until it went bankrupt and was forced to withdraw in defeat.

All Praise is due to Allah.

So we are continuing this policy in bleeding America to the point of bankruptcy. Allah willing, and nothing is too great for Allah.

That being said, those who say that al-Qaida has won against the administration in the White House or that the administration has lost in this war have not been precise, because when one scrutinizes the results, one cannot say that al-Qaida is the sole factor in achieving those spectacular gains.

Rather, the policy of the White House that demands the opening of war fronts to keep busy their various corporations - whether they be working in the field of arms or oil or reconstruction - has helped al-Qaida to achieve these enormous results.

And so it has appeared to some analysts and diplomats that the White House and us are playing as one team towards the economic goals of the United States, even if the intentions differ.

And it was to these sorts of notions and their like that the British diplomat and others were referring in their lectures at the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When they pointed out that] for example, al-Qaida spent $500,000 on the event, while America, in the incident and its aftermath, lost - according to the lowest estimate - more than $500 billion.

Meaning that every dollar of al-Qaida defeated a million dollars by the permission of Allah, besides the loss of a huge number of jobs.

As for the size of the economic deficit, it has reached record astronomical numbers estimated to total more than a trillion dollars.

And even more dangerous and bitter for America is that the mujahidin recently forced Bush to resort to emergency funds to continue the fight in Afghanistan and Iraq, which is evidence of the success of the bleed-until-bankruptcy plan - with Allah's permission.

It is true that this shows that al-Qaida has gained, but on the other hand, it show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has also gained, something of which anyone who looks at the size of the contracts acquired by the shady Bush administration-linked mega-corporations, like Halliburton and its kind, will be convinced. And it all shows that the real loser is ... you.

It is the American people and their economy. And for the record, we had agreed with the Commander-General Muhammad Ataa, Allah have mercy on him, that all the operations should be carried out within 20 minutes, before Bush and his administration notice.

It never occurred to us that the commander-in-chief of the American armed forces would abandon 50,000 of his citizens in the twin towers to face those great horrors alone, the time when they most needed him.

But because it seemed to him that occupying himself by talking to the little girl about the goat and its butting was more important than occupying himself with the planes and their butting of the skysc*****rs, we were given three times the period required to execute the operations - all praise is due to Allah.

And it's no secret to you that the thinkers and perceptive ones from among the Americans warned Bush before the war and told him: "All that you want for securing America and removing the weapons of mass destruction - assuming they exist - is available to you, and the nations of the world are with you in the inspections, and it is in the interest of America that it not be thrust into an unjustified war with an unknown outcome."

But the darkness of the black gold blurred his vision and insight, and he gave priority to private interests over the public interests of America.

So the war went ahead, the death toll rose, the American economy bled, and Bush became embroiled in the swamps of Iraq that threaten his future. He fits the saying "like the naughty she-goat who used her hoof to dig up a knife from under the earth".

So I say to you, over 15,000 of our people have been killed and tens of thousands injured, while more than a thousand of you have been killed and more than 10,000 injured. And Bush's hands are stained with the blood of all those killed from both sides, all for the sake of oil and keeping their private companies in business.

Be aware that it is the nation who punishes the weak man when he causes the killing of one of its citizens for money, while letting the powerful one get off, when he causes the killing of more than 1000 of its sons, also for money.

And the same goes for your allies in Palestine. They terrorize the women and *****ren, and kill and capture the men as they lie sleeping with their families on the mattresses, that you may recall that for every action, there is a reaction.

Finally, it behooves you to reflect on the last wills and testaments of the thousands who left you on the 11th as they gestured in despair. They are important testaments, which should be studied and researched.

Among the most important of what I read in them was some prose in their gestures before the collapse, where they say: "How mistaken we were to have allowed the White House to implement its aggressive foreign policies against the weak without supervision."

It is as if they were telling you, the people of America: "Hold to account those who have caused us to be killed, and happy is he who learns from others' mistakes."

And among that which I read in their gestures is a verse of poetry. "Injustice chases its people, and how unhealthy the bed of tyranny."

As has been said: "An ounce of prevention is better than a pound of cure."

And know that: "It is better to return to the truth than persist in error." And that the wise man doesn't squander his security, wealth and *****ren for the sake of the liar in the White House.

In conclusion, I tell you in truth, that your security is not in the hands of Kerry, nor Bush, nor al-Qaida. No.

Your security is in your own hands. And every state that doesn't play with our security has automatically guaranteed its own security.

And Allah is our Guardian and Helper, while you have no Guardian or Helper. All peace be upon he who follows the Guidance. || 영어에 정통하신 분들에게 번역 부탁드립니다.

빈 라덴의 이 수단은 그의 사후 3년, IS가 이용하고 있다. 이 발표문을 읽어보면 IS가 어떻게 미국과 싸울것이며 IS가 미국을 도발하는 의도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