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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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right><:>https://jpupdates.com/wp-content/uploads/2015/01/83869859.jpg?width=400%7C%7C || 이름 || 힐러리 로댐 클린턴 (Hillary Rodham Clinton) || || 출생일 || 1947년 10월 26일 (70세) || || 출생지 || 미국 일리노이시카고 || || 경력 || 미국 대통령 영부인(1993~2001) →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2001~2009) → 2008년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 미국 국무부 장관(2009~2013) → 2016년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 || 정당 || 민주당 || || 가족 || 남편 빌 클린턴, 첼시 클린턴||| || 종교 || 감리교 || [목차]

2016년 현재, 세계 최강의 권력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

소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영부인. 전 미국 국무부 장관. 차기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이며 미국 역사상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이다.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 있다. 과거에는 '클린턴' 하면 빌을 의미했으나 요즘은 힐러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성향

* 사실 힐러리 여사와 그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90년대 '중도주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미국 사회 내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왼쪽, 오른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면서 힐러리 여사도 진보적인 성향으로 이동했다.[* 예전에 있던 글에서는 힐러리는 남편인 빌 클린턴보다 진보적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출처나 자세한 내용을 서술해주시기 바랍니다.]
* 2016년 대선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후보 중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 다음으로 진보적인 편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경선에서 하차한 조 바이든 부통령과 공동 2위를 기록했다.[[1]]
* 중국에 대해서는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이나 발언을 종종 한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항상 충돌하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인권 침해국이라고 지칭해 중국의 반감을 산 적이 있다. 자서전에서도 중국의 인권 문제를 무척 무게감 있게 다루면서 부정적인 설명을 많이 덧붙였다. 결국 중국은 힐러리 회고록을 [[2]] 시진핑한테 대놓고 부끄러운줄 모른다고 하기도했다. [[3]]
* 위에 언급된 중국에 대한 태도와 연결하자면, 오바마 1기 행정부의 국무장관 시절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를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의 중동, 대테러전 수행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재조정한 주역으로 손꼽힌다. 부시 시절 미국이 중동에 골몰하는 동안 중국이 경제대국을 넘어 정치, 군사대국으로 성장하여 미국의 아태 지역 패권을 위축시키는 것을 방치하다시피 했다는 비판을 배경으로 한 것. 이에 따라 미군의 이라크 철수가 완료된 이듬해인 2011년부터 오늘날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재균형'(rebalancing) 등으로 불리는 아시아 태평양 중시 정책이 본격화된 것이다. 특히 힐러리는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 2011년 11월호에 직접 기고한 글에서 ["태평양 국가"(Pacific Power)로 규정하며 아시아 중시 정책에 대한 열의를 강조했다.]
*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성노예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 그럼 친한파 정치인이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힐러리 여사는 전시 여성의 인권침해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했고 그래서 저런 발언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아베 신조같은 무개념 정치꾼들이 현 일본에서 미쳐 날뛰는 상황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가 이런 문제에 일본 편을 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일생

출생부터 아칸소 시절까지

일리노이 주 파크리지 위즈너 가 235 번지가 힐러리 로댐 가족이 한때 살았던 곳이다. 이곳은 흔히 교외라고 하면 떠올리는 곳으로, 힐러리의 유년 시절은 대개 이 곳에서 형성되었다. 아버지 휴 로댐(Hugh Rodham)의 고집스럽고 괴팍한 성격 탓에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유별난 가족이었다. 휴 로댐은 열등감 때문에 일부러 더 심술궂게 행동하는 사람들처럼 모난 성격의 소유자였다. 힐러리를 포함한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런 괴팍하고 우울한 성향을 참아내야 했고, 궁색하리만치 검소한 생활을 견디어내야 했다. 또한 그녀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퍼붓는 욕설과 모욕을 들어야 했다. 그는 비록 무자비하고 공격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인물이었지만, 그와 그의 아내 도로시 하웰 로댐(Dorothy Howell Rodham)은 자식들에게 끈끈한 가족애와 그것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그 누구보다 힐러리는 이 가르침을 가슴 깊이 간직했던 것 같다. 1975년 빌 클린턴과 아카풀코로 신혼 여행을 갔을 때, 그녀는 부모와 남동생 휴이(Houghie, 휴 주니어), 토니(Tony)도 데려갈 정도였다. 힐러리는 사춘기를 거치며 아버지와는 멀어졌지만, 어머니와는 더욱 가까워졌다. "지금의 힐러리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도로시죠. 도로시를 보고 있으면 힐러리가 보여요."라고 린다 블러드워스 토머슨(Linda Bloodworth Thomason)이 말했다. 할리우드 제작자인 린다는 힐러리의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힐러리의 기질은 그리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힐러리는 "경우에 따라서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고 벳시 에블링이 인용했을 정도이다. 어린 시절 로댐 가와 가깝게 지내며 자주 드나들었던 힐러리의 사촌 오스카 다우디 또한 힐러리는 어머니의 치밀한 성격과 아버지의 허세를 모두 물려받았다고 단정지어 말한 바 있다.

힐러리에게 목표를 높이 두라고 가르쳤던 도로시는 특이하게도 힐러리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힐러리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었고, 14세 때,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 지원 서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은 지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또한 도로시는 아이들에게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를 위해 그녀는 힐러리에게 목수들이 사용하는 수준기[* 기울기를 조사하는 데 쓰는 기구]를 이용하여 그 안의 기포가 어떻게 가운데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줄 정도였다. "이 수준기가 네 안에 있다고 상상해보렴. 그리고 기포가 항상 중앙에 오도록 노력하여라, 가끔은 기포가 위로 올라가기도 할 거야." 도로시는 수준기를 세워 기포가 위로 가게 해 보였다. "그럴때면 기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해." 도로시는 수준기를 다시 바로 눕히며 말했다. 힐러리는 처음부터 학교에 쉽게 적응했고, 유진필드 초등 학교(Eugene Field Elementary School)에서는 거의 언제나 전 과목 A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심한 근시로 아홉 살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는데, 이는 1950년과 1960년대에 성장기를 거친 소녀에게 결정적인 결함이었다. 힐러리의 붉거나 남색의 안경은 처음으로 콘택트 렌즈를 끼게 된 33세까지 그녀 외모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때로 그녀는 허세를 부리며 안경을 쓰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마치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맹인'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고 회상한다. 졸업 몇 년 뒤 동창회에서 힐러리는 친구 벳시에게 "이 사람이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럼 저 사람은?"이라고 계속 물어야 했고, 벳시가 친구들의 이름을 알려줄 때면 힐러리는 " 저렇게 생겼었는지 정말 몰랐는데..."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1965년 가을, 힐러리는 너무 많이 읽어 너덜너덜해진 베리 골드 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 [* 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이 들어있는 여행 가방을 들고 웰즐리에 도착했다. 비교적 조용한 중남부 교외에서 자란 그녀가 별안간 만만치 않은 여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명문 사립 기숙 학교 출신으로 여름이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 한둘은 기본이고, 웰즐리 풍이라고 부를 만한 교양도 제법 갖추고 있었다. 힐러리도 나름대로 메인 사우스 고등학교에서 상위 5퍼센트 안에 들었지만, 이는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되었다. 힐러리는 이제 더 이상 '또래보다 똑똑한' 학생이 아니었다. 사실 동북부에 있는 7대 명문 여대들 중에서도 특히 웰즐리에 합격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상위 1~2퍼센트 안에 든 전적을 갖고 있었다. 힐러리가 입학하던 1965년은 하버드(Harvard), 예일, 컬럼비아(Coumbia), 브라운(Brown) 등 아이비 리그가 남학생의 입학을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전국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여학생들은 웰즐리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똑똑한 학생들 중에서도 비싼 학비를 감당할 형편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특출하게 공부를 잘했어야 했다.]

이런 고상한 환경에 힐러리는 위축되었고, 두려움 속에서 첫 학기를 시작했다. 엽서로만 보아왔던 외국에 덩그러니 혼자 나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그녀는 훗날 회고한다. 힐러리가 동부의 여대로 진학하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웰즐리 출신이었던 고등 학교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힐러리가 다른 7대 명문 여대 중에서도 웰즐리를 유독 마음에 들어 했던 이유는 학풍과 학교의 주변 분위기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이 학교에는 자기보다 훨씬 똑똑하고 멋진 여학생들로 가득하며, 심지어 이들 중 대부분은 앞으로의 출셋길마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힐러리는 이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그녀 혼자의 생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후에 회고한다.

결국 생각을 바꾼 힐러리는 웰즐리에서 국가 정세, 문화, 정치, 성 관념의 변화를 겪으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사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복잡한 정치관을 가진 소녀가 7대 명문 여대의 완벽한 매너를 갖춘 여성의 구식 모델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후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가 힐러리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금발의 생 긴머리, 그리고 나팔 바지를 입은 신입생이었다. "힐러리와 나는 자칭 학생 '개혁가'였어요. 급진주의자들이 학교 건물을 점령하고 학교를 휴교시키기 몇 년 전이었죠. 우리는 인권 운동 행진에 참여하고 더 많은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요구했어요. 심지어 우리는 전국을 한 데 모을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거죠." 라이히의 말이다.

웰즐리 시절 그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돈 존스 목사였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존스 목사는 힐러리의 상담자 역할뿐 아니라 통신원, 고해 신부, 소크라테스식 논쟁의 대상, 그리고 정신적 조언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힐러리는 우울해질 때면 언제든 돈 존스 목사를 찾았다. 이후에도 그들은 줄곧 이러한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남편의 탄핵 소동이 있던 해에도 힐러리는 그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존스는 힐러리에게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설교 '너는 받아들여졌다(You are Accepted)'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들려주었다. 죄와 은혜는 공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설교였는데, 틸리히는 "은혜는 우리가 엄청난 고통과 불안 속에 있을 때 찾아온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 사이 그녀는 열심히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현 상황에서 자신의 실존적 가치 설정에 따른 판단으로 이겨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 그녀는 인생이 고통스럽고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각종 영적인 격언, 때로는 사이비적인 격언들[* 개중에는 뉴에이지 식의 허튼 소리들도 있었고, 나름대로 깊이 있는 어구들도 있었다.]에 의지하여 구했고, 혼란스러운 문제들에 대한 참고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후에 힐러리가 자신이나 남편의 탐탁치 않은 행동이나 성격을 합리화하고자 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매사추세츠보스턴에 위치한 웰즐리(Wellesley) 여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다. 대학 초기에 잠시 공화당 청년 조직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베트남 전쟁흑인 민권 운동을 둘러싸고 조직 내 다른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탓에 비록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업무 보조 역을 하긴 했지만 심적으로는 민주당 쪽으로 점점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웰즐리 칼리지를 졸업하고 예일 로 스쿨에 진학했는데 이곳에서 한 학년 후배 빌 클린턴을 만나게 된다. 빌과 함께 있기 위해 졸업을 1년 늦추고 빌이 대학 졸업 후 고향인 아칸소 주의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자 아칸소로 빌을 따라서 건너가게 된다.

1975년, 빌의 청혼에 두 사람은 결혼했는데 이때 힐러리는 자신의 처녀 때 성인 로댐을 계속 유지했기에 풀 네임의 성이 로댐 클린턴으로 되었다. 빌은 이미 약관의 나이에 정계 진출을 시도했는데 1974년 하원 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1976년 리틀 록의 지방 판사에 선출되어서 빌과 힐러리는 리틀 록으로 이주했고 힐러리는 로즈 로 펌에서 일하게 된다.

어린이 보호 활동을 전개해서 아칸소 주의 어린이 보호 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고 1978년 빌이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되자 농촌 지역 건강 지원 위원회장을 맡아 아칸소주의 가난한 지역들에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역할을 했다. 이 때의 경험은 그녀가 빌 클린턴 행정부 초창기 의료 보험 개혁 작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1980년, 빌은 아칸소 주지사 재선에 실패했지만 2년 뒤 재기에 성공했다. 힐러리는 남편의 선거 운동을 적극 지원해 유권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영부인 활동과 정계 진출

1992년, 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힐러리는 영부인이 되었다. 기존의 영부인들이 조용히 대통령을 내조하는 수준이었던 것과는 달리 힐러리는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했는데 백악관 동관(East Wing)에 영부인 집무실을 두는 관례를 깨고 서관(웨스트윙)에 집무실을 둘 정도였다.

1993년, 빌 클린턴은 힐러리에게 국민의료보험 개혁을 맡겼다. 이때 힐러리는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의 특성에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의 엄청난 로비가 더해져 의회에서 개혁안은 부결되었고 힐러리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고 힐러리에 대한 지지율은 40%대 이하로 추락했다.

이 때 나온 유명한 농담이 힐러리의 옛 애인과 만난 클린턴 부부 이야기. 그 사람은 주유소 사장이 됐는데, 이걸 본 빌이 힐러리에게 "(저 사람이랑 결혼했다면) 당신은 영부인이 못 됐겠네?"라는 식으로 말하자 힐러리가 "아니, 그럼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겠지."라고 말했다는 것. --남편은 아내 나름이라니까-- --대통령 도발하는 담력 오오--

역설적이게도 힐러리를 다시 끌어올린 것은 남편 빌의 스캔들이었다. 초기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설이 돌았을 때 힐러리는 이를 보수 측의 음모로 규정했지만 스캔들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2003년에 출간된 그녀의 자서전에는 "이 양반이랑 계속 살아야 해?"라고 고민했다고 솔직히 털어놨지만. 이 때문에 그녀가 정치적 목적에서 이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남편을 감싸는 모습에 그녀에 대한 동정 여론이 확산되면서 그녀에 대한 지지율은 70%대를 넘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녀가 정계로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만 훗날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남편이 밉지 않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클린턴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르윈스키를 가리켜 나르시시즘에 빠진 루니툰이라고 비난하기도. https://www.bu.edu/bridge/archive/1999/05-14/photos/clintons.jpeg ~~저 웬수가 대통령만 아니었어도...~~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창 곤경에 빠졌던 남편을 바라보는 힐러리의 모습.[* 이 사진은 1999년 퓰리처상 보도 사진 상을 수상했다.]

1998년, 뉴욕 상원 의원 자리가 비게 되자 민주당 인사들의 권유를 받아 상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초 그녀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는 뉴욕 시장이던 루돌프 줄리아니가 거론되었는데, 아마 줄리아니와 붙게 되었다면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었겠지만 줄리아니가 전립선암으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그녀는 55%의 득표율로 상원 의원이 된다. 이후 그녀는 미국에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으로 주목받게 된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f/Hillary_Clinton_at_the_Senate_Armed_Services_Committee.jpg/512px-Hillary_Clinton_at_the_Senate_Armed_Services_Committee.jpg 합동참모의장 후보자 마이크 멀린 인사 청문회 당시의 사진.

상원에서는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에 찬성 표를 던졌는데 아프간이야 그렇다 쳐도[* 반대했다가는 매국노 소리 들으니까...] 이라크 침공에 찬성한 사실은 후에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던 오바마와의 격돌에서 까임 거리가 되기도 했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유력한 후보! 그러나...

2007년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지만...민주당 대선 경선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뉴비 버락 후세인 오바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기를 잡은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는 미국의 특성상 힐러리로서는 충격적인 결과. 물론 아이오와 법칙이 꼭 필승도 아니긴 했지만 경선 흥행을 위해 힐러리도 전략적으로 띄워주던 오바마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다. 두 번째로 열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승리를 거두면서 반전의 계기가 되나 싶었는데... 이게 민주당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선의 서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뚜껑을 열기 전에는 힐러리의 대세가 점쳐졌고 그렇게 흘러가나 싶었지만 예상 밖의 결과에 힐러리도 상당히 당황했던 듯하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이후 흑인 배우이자 시인인 마야 안젤루가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면서 흑인 표에 줄 영향에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물론 오바마는 오프라 윈프리의 지지 선언을 얻어내서 별 실효는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패배

https://images.dailykos.com/images/156815/large/obama_clinton.png 힐러리와 오바마의 지지율 추이. 보면 2월달, 경선 바로 시작 전까지도 버락 오바마가 힐러리에게 뒤지고 있었다는것을 볼 수 있다.

2008년 1월과 2월에 각각 열린 미시간 프라이머리와 플로리다 프라이머리[* 당시 오바마는 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덕분에 플로리다에서는 힐러리와 "Uncommitted"가 대결을 벌였다.]에서는 힐러리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필이면 두 주가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규정을 어긴 채 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바람에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미시간과 플로리다의 프라이머리를 무효로 선언해 버렸다.[* 슈퍼 화요일에 시행해야 된다는 전국 위원회의 말을 씹어서 위원회 측에서 대의원 투표권을 박탈해 버렸다. 나중엔 명당 0.5표씩 카운트 되게 조정이 되기는 하였다.] 힐러리는 이에 반발해 미시간과 플로리다의 프라이머리를 다시 실시할 것을 주장한 반면 오바마는 재경선 실시에 미적대는 반응을 보였다.

양측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2008년 2월 5일, 22개주에서 동시에 경선을 치루는 슈퍼 화요일에서 승부가 결판날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보통 슈퍼 화요일에서 승리를 거둔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오바마는 13개주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힐러리는 8개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두 후보의 득표율은 초박빙이었고 어느 쪽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해 승부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2008년 3월 4일 텍사스, 오하이오, 로드 아일랜드, 버몬트의 4개주에서 경선이 치뤄지는 미니 슈퍼 화요일에서는 힐러리가 텍사스, 오하이오, 로드아일랜드 3개주를 석권해 승부는 계속 이어졌다.(...) --죄다 보수 주에서 이겼네-- [* 텍사스는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를 둘 다 진행했다. 프라이머리에서는 힐러리가, 코커스에서는 오바마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주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하자 민주당 내에서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사퇴하쇼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힐러리는 끝까지 가겠다라면서 경선 완주를 주장했다.

결국 사상 유례가 없는 혈전이 된 경선은 반년 만인 2008년 6월에야 마무리 되었고, 힐러리는 6월 7일 뉴욕에서 경선 패배를 인정하고 오바마를 적극 돕겠다고 선언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국무장관 임명과 그 이후

경선 패배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힐러리 부통령의 소위 드림티켓론이 논의되었지만 힐러리는 러닝메이트를 거절했다. 거절한 사유에는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 부통령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과 힐러리가 경선 과정에서 진 거액의 빚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힐러리에게 국무장관 직을 제안했고 힐러리는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다. 다만, 미국법상 국무장관이 되려면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힐러리는 경선 때 진 거액의 빚을 아직도 해결 못한 상황이었다. 이 문제는 드라마 《어글리 베티》의 주연배우이자 힐러리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아메리카 페레라가 열성적으로 기부금 모금에 나서준 덕에 해결되어서 힐러리는 국무장관에 취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부지런히 강연 등을 하면서 활동한 결과 5년 만인 2013년 초에 빚도 다 갚았다.

2010년 후반, 차기 대선에 나설 거냐는 질문에 국무장관직을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2016년 대선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Clinton 2016! 페이스북 페이지(물론 비공식)도 있다.]일단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원사격을 받았기 때문에 재선될 경우 어떻게든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배려할 수밖에 없고 이미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배려한다면 그 배려의 결과는 힐러리의 2016년 출마 지지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다만 이 문제는 아직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근데 2016년이면 칠순이 가까워지는데~~

다만 문제는 힐러리의 건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힐러리는 바이러스성 위 질환으로 쓰러지는 과정에서 뇌진탕까지 겹쳐서 2주 정도 요양한 상황이었는데 다시 혈전 증세로 입원했다고 한다. 일단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존 케리가 힐러리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이 되었으므로 휴식기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힐러리의 오랜 참모그룹들이 2008년 경선이후 와해되어 힐러리가 대선에 재도전한다 해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힐러리의 참모들은 힐러리의 경선패배에 큰 내상을 입었고 힐러리가 오바마의 국무장관 제의를 수락하자 힐러리에게 환멸을 느끼고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 힐러리가 대선에 재도전 하려면 우선 와해된 참모그룹부터 복구해야 하는 과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6월 10일에 트위터를 개설했다. 사실 계정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팔로 기능을 차단했다가 그것을 오픈한 것. 하루만에 26만 명이 팔로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런 행보는 힐러리가 차기 대권 출마의 포석을 놓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6월 13일에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행사에 참석해 자신이 국무장관 퇴임 후 세 가지 이슈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며, 그것은 '유아발달, 경제성장, 여성의 정치참여'라고 밝혔다. 세간에는 여성의 정치참여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대권 행보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국정과제를 큰 틀에서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편 빌 클린턴과 딸 첼시도 때를 맞춘 듯이 적극적인 대외활동에 나선 것도 힐러리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중.

아직 이르긴 하지만 차기 미국 대선의 예비 지지도 조사에서도 힐러리가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아직 힐러리는 대선 출마를 분명히 밝힌 것도 아니고 공화당에 딱히 중량감 있는 차기 주자가 부상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는 몰라도 미국 NBC는 힐러리를 다룬 미니시리즈 제작을 발표했고[* 그런데 주연배우가 힐러리 본인과는 달리 섹시한 이미지의 다이앤 레인이라 뒷말이 많다.~~내 힐러리가 이렇게 섹시할리가 없어?~~] CNN 계열의 CNN 필름은 2014년에 힐러리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이리 되자 공화당에서 발끈하고 나섰는데, 특정후보 밀어주기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프라이머리 토론회에 NBC와 CNN의 참여를 막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한때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이자 현 뉴저지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에게 지지율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크리스티가 뉴저지 포트리(Fort Lee) 시의 시장에게 정치보복을 위해 뉴욕 맨해튼으로 연결되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의혹, "브리지게이트"가 떠오르면서[* [워싱턴 다리는 힐러리를 돕는 다리?]] 다시 크리스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4]]

한편, 이렇게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하던 힐러리에게도 대형 악재가 발생했다. 30여 년 전 변호사 시절에 여아 성폭행 범을 유죄란 걸 알면서도 감형시켜준 걸 자랑한 [테이프가 공개]된 것. 어린이, 여성에 대한 인권 신장을 기치로 하는 힐러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암초를 만난 셈이다. 평소 자신이 주장하던 가치관과 모순됨과 동시에,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미국에서 대단히 민감한 이슈인 소아 성폭행이라는 점이다.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Khaleesi is coming to Westeros! >칼리시웨스테로스로 오고 있다! >2015.04.25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회 [[5]] 백악관으로 가는 길, 바로 그 두 번째 2015년 4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6]] ||<|7><width=78%><:> width=100% ||||<width=22%><:> {{{#!HTML  
 }}} || ||||<#CCCCCC><width=22%><:> 범례 번역 || ||<#405B93><width=2%> ||<width=20%> 힐러리 클린턴 || ||<#9BCFC6><width=2%> ||<width=20%> 버니 샌더스 || ||<#BCBDD9><width=2%> ||<width=20%> 마틴 오맬리 || ||<#F5B66C><width=2%> ||<width=20%> ~~조 바이든~~ [*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는 본인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width=22%><:> {{{#!HTML  
 }}} || ▲ 2015년 1월부터 조사된 주요 후보들의 여론조사 지지율 평균.[* 2015년에 지지율이 한 번이라도 10%를 찍은 후보를 주요 후보라고 정의]

사실상 본선직행?

최고의 주목을 받는 대선 후보 답게, 여러 가지 논란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중이다. 특히 그녀의 기존 커리어가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부인으로서, 국무장관으로서 탄탄한 인지도와 지지층을 얻음과 동시에 반대파도 양산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그녀가 대선주자가 될 것으로 보는지 국무장관 시절 군사 고문으로 가깝게 지냈던 폴 셀버 공군대장을 정권 교체기에 활동할 차기 합동참모차장에 내정하는 등 밀어주는 분위기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부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공화당에서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가 한 때 공화당이 세를 펴지 못했던 히스패닉 계층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되었지만, 이후 대선에 뛰어든 도널드 트럼프, 벤 카슨마코 루비오에게 치이면서 순식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경쟁자의 등장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https://s-media-cache-ak0.pinimg.com/originals/84/46/77/8446771a8c40260b42cafb2115cbfe8a.jpg?width=100% || ||<:>버니 샌더스 2016[br]거울에 보이는 물체는 보기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힐러리가 자동차를 탈 때 버니가 발로 달리는 것은 슈퍼팩의 빵빵한 자금 지원을 받는 힐러리와 소액 모금만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버니의 자금력 차이를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버니의 분기별 모금액이 힐러리를 추월하면서 옛말이 되었다. 참고로 버니는 고등학교 때 중거리 육상 선수였다.]|| 경쟁자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게 버니 샌더스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16년 현재, 힐러리가 차기 민주당 대선주자로 각광받고 있지만 수많은 미국의 젊은 진보 층은 힐러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대기업들의 노예가 된 민주당의 이미지를 거의 대표 격으로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에 찬성표를 던진 건 덤. 마더존스 같은 진보 언론페이지에 보면 심상찮게 "힐러리는 내 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내지는 "(공화당은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뽑겠지만, 절대 이상적인 대표가 아니다" 같은 반응을 볼 수 있다. 이런 미국 내의 다른 진보들은 사민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을 드림티켓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둘은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진보적인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데다, 힐러리는 실제로 미국 내 대기업들과 길게 얽힌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도 언론계 대기업의 슈퍼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내 대기업들은 대선자금을 빌미로 정치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 참가를 선언하자 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입지가 약간 약해진 상태이긴 하지만, 힐러리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건 변함이 없다. 뉴햄프셔주에서는 43-35로 경합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2008년처럼 뉴햄프셔에서 패했다고 경선을 이길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힐러리 측에서도 마냥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비록 경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샌더스의 지지 세력도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의 Citizens United에 반대한다면서 슈퍼팩을 통해 선거자금을 모으는 것을 거부하며[* Citizens United를 뒤집겠다고 약속한 법관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하겠다고 해놓고 슈퍼팩은 일단 써먹고 보는 힐러리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힐러리와는 달리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애국자법에서도 일관되게 반대표를 던졌고 동성애자의 결혼을 찬성해왔다.

여기서 드러나듯 자주 의견을 바꾼 힐러리와는 달리 언제나 일관적이었다는 것이 장점이다.[* 힐러리 측에서는 힐러리가 주요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바꾸는 것을 "진화한다(evolve)"는 말로 표현하지만, 이 표현 때문에 사람이 언제까지 진화할 수 있느냐며 포켓몬(...)이냐는 비아냥을 듣는다.] 네거티브 전략을 쓰지 않고[* 정책이나 공약과 관련이 없는 인신공격을 자제하는 것을 뜻한다. 버니는 그 자리에 힐러리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더 채워넣는 편이다.] 공약만을 가지고 정정당당한 캠페인을 한다고 천명하는 등 미국 정치판에서 여러모로 보기 드문 후보다.[* 그것도 양당제인 미국 정치판에서, 무소속 후보로 1991년부터 하원의원~상원의원을 순수하게 시민 지지자들의 소액 기부만으로 쭉 해온 건 정말 대단하다. 또한 대선 출전 선언을 한 지 24시간 내에 샌더스가 받은 돈은 무려 150만 달러. 대선 출마를 선언한 어떤 후보도 24시간 내로 저만큼 기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시민 지지자들의 소액 기부만으로 저만큼 모은 것이다!] 인터넷과 SNS의 일상화는 과거 기록에 대한 접근과 기록의 전파를 쉽게 하므로 입장이 자주 바뀐 힐러리에게는 악재이지만, 일관된 입장을 취한 샌더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관된 과거 기록을 보여주며 새로운 지지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샌더스가 끌어모은 지지자 중 상당수가 SNS를 일상적으로 쓰는 대학생과 청장년층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나, 버니 샌더스는 힐러리에 비해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특히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흑인들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이다.~~일단 이름이나 알까 싶다~~ 일단 쇼미더머니의 끝장판인 미국에서 슈퍼팩을 사용하지 않고 선거자금을 모으다 보니 액수에서 힐러리보다 딸리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문제. 아이오와 코커스가 끝나고 나머지 후보들이 전부 사퇴하여 둘만 남은 상황에서,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2008년처럼 엎치락뒤치락 할 수도 있고, 예상대로 싱겁게 힐러리가 대선주자로 금방 확정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미국 정치판이라고 다른 국가와 별 다를 바가 없어서 워낙 '일단 이름/얼굴 아는 놈 찍는다.'의 경우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네임밸류만큼은 공화당과 민주당 통틀어서 부동의 원탑의 자리에 있는 힐러리가 정치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턴 상당히 유리하다. 물론 힐러리 입장에서도 버락 후세인 오바마에게 경선에서 패배한 과거가 있고 버니의 인지도는 비슷한 시기의 오바마보다 앞서므로 경선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샌더스역시 이런 경향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정치에 무관심한 계층에게도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있고[* 샌더스 본인은 이런 전략을 정치 혁명(Political Revolution)이라 표현하고 있다.], 해당 계층에서 서서히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무슬림 최측근 비서

힐러리는 최측근 비서로 무슬림인 '후마 에버딘'(Huma Abedin)을 두고 있다. 애버딘은 인도계 아버지와 파키스탄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슬람교도다. 워싱턴 정가에선 드문 존재다. 미시간에서 태어났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학 교수를 한 어머니를 따라 아랍에서 성장했다. 후마 에버딘은 1976년 생으로 1996년 백악관 인턴을 시작하면서 힐러리와 연을 맺게 되었다. 후마 에버딘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7]]를 참고

후마 에버딘은 이번 2016년 힐러리 경선캠프에서도 vice chairwoman이란 직함으로 캠프에서 5손가락안에 드는 고위급이다. 힐러리에게서 엄청난 신뢰를 받고 있으며 권한또한 막강하다. 사실상 캠프내에서 최고 실력자란 평도 있을정도. 힐러리는 후마 에버딘을 친딸처럼 신뢰한다. 무슬림을 최측근으로 두는것을 보면 힐러리가 편견이 없고 아주 열려있고 소수자를 배려한다는것을 엿볼수 있다. 힐러리는 무슬림에게도 상당한 득표를 얻어낼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관련 중앙일보 기사.['문고리' 비서 … 남편 빌도 그녀 통해야 연락 닿아]

힐러리는 집에서 쉬거나 혹은 재택근무를 할 때 "내 침실 문이 잠겨 있으면 그냥 노크하고 들어와도 돼"란 e메일을 애버딘에게 보내곤 했다.~~뭔가 므흣한~~ 후마 에버딘은 무슬림 형제단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것이 힐러리의 이메일 내용공개로 드러나기도 했다. 관련해서 워싱턴 타임즈의 기사가 있다. [[8]] 후마 에버딘과 무슬림 형제단의 관계에 대한 또다른글 [Abedin’s Muslim Brotherhood Ties,<National Review Online>,2012년 7월 25일]

동아일보 기사 (후마 에버딘은 ) 오랫동안 수행비서로 일해 클린턴 전 장관이 보는 서류는 물론이고 커피 잔까지 그의 손을 거칠 정도다. [[9]]

즉 다시 말해 힐러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후마 에버딘'과 함께한다는것이다. 힐러리가 하는 행동은 모두 후마 에버딘과 함께며 위의 다른 기사에 나온것처럼 남편 빌 클린턴조차 힐러리와 연락을 하려면 후마 에버딘을 통해야만 한다.


진행상황

  •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양자대결시 전국지지율은 루비오를 제외하고 힐러리가 1~2%정도 더 앞서나가지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란을 보면 알수 있지만, 주단위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이 더 많이앞서고 있음. 즉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공화당이 앞서는 상태

11월 16일~17일 전국지지율 조사기관 PPP [(PDF 파일)] 힐러리(민주당) 45% vs 트럼프(공화당) 44% 미정 11% 힐러리(민주당) 46% VS 벤카슨(공화당) 45% 미정 9% 힐러리(민주당) 43% VS 루비오(공화당) 45% 미정 12% 힐러리(민주당) 46% VS 크루즈(공화당) 44% 미정 10% 힐러리(민주당) 43% VS 젭부시(공화당) 41% 미정 15% .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전국지지율에서도 공화당의 주요 후보군들에게 모두 발리고 있다(....) 폭스뉴스 11/16~19 조사 [(PDF 파일)] 9쪽부터 트럼프 46% 힐러리 41% 투표안함 7% 제3후보 선택 2% 모름 5% 벤카슨 47% 힐러리 42% 투표안함 4% 제3후보 선택 2% 모름 4% 루비오 50% 힐러리 42% 투표안함 3% 제3후보 선택 1% 모름 4% 크루즈 45% 힐러리 41% 투표안함 5% 제3후보 선택 2% 모름 5% 젭부시 45% 힐러리 39% 투표안함 9% 제3후보 선택 3% 모름 4% .

  • .힐러리는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지만, 반대로 남성들에게는 인기가 많이 떨어진다.

11월 16~17일 최신 [(PDF 파일)] 97~98쪽을 참조하면 대선 가상 양자대결의 경우, 힐러리는 여성 지지율은 52% 정도로 높지만, 반대로 남성 지지율은 37%정도로 낮다. 극단적인 성대결구도 . 힐러리 VS 트럼프 남자는 힐러리 37% 트럼프 52% 미정 11% | 여자는 힐러리 53% 트럼프 37% 미정 11% 힐러리 VS 카슨 남자는 힐러리 37% 카슨 55% 미정 8% | 여자는 힐러리 54% 트럼프 37% 미정 10% 힐러리 VS 루비오 남자는 힐러리 36% 루비오 51% 미정 13% | 여자는 힐러리 50% 루비오 39% 미정 11% 힐러리 VS 크루즈 남자는 힐러리 39% 크루즈 51% 미정 8% | 여자는 힐러리 52% 크루즈 37% 미정 10% .

* 사실 지금의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보다 더한 최종보스다. 힐러리로서는 벵가지 사건 청문회가 공화당 측에서 그의 지지율을 깎으려는 억지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잠재적인 경쟁자인 조 바이든도 불출마를 선언했으므로, 이메일 스캔들만 해결된다면 아주 유리한 경선을 치룰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다만 제1차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 이후 버니 샌더스의 인지도가 "당신의 망할 이메일(your damn emails)" 발언으로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 덕분에 각종 온라인 여론 조사와 포커스 그룹 조사에서 샌더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다. CNN이 힐러리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쓴 것도 CNN이 힐러리에 기부한 전력을 보아 의심스럽게 비쳐지고 있는 중이다.
* 그러나 많은 미국 주요, 주류 언론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샌더스를 실력으로 앞섰다고 평가했고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정치부 기자들은 결국 힐러리가 美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 현재 샌더스의 인기가 25%~30%내외로 나오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고학력, 주로 30대 이하의 지지율이 힐러리에 비해 높아서 나타난다. 샌더스의 약점이자 곧 힐러리 클린턴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의 핵심 당원, 소수인종, 여성단체에서는 클린턴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SNS에서는 샌더스가 우위일지 몰라도, 기성세대나 노년층, 여성에서 클린턴이 여론조사에서 매번 거의 60%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고, 이들의 경선에서의 영향력이 인터넷 여론보다 훨씬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10월 17일자 CNN여론조사의 설문항목과 표본계층의 답변 항목 수치를 보면 명약관화.
 * Income inequality 항목만 빼고 클린턴이 민주당원이 중요시 하는 거의 모든 이슈대결에서도 압도적으로 샌더스를 누른다. 2008년 민주당 경선의 영어 위키백과 항목을 보면 힐러리는 2008년 프라이머리 때도 경선 모집단 지지율은 거의 오바마와 동급이거나 오히려 아주 근소하게 앞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총기규제 문제에서도 예전 자신의 입장을 집어던지고 힐러리가 샌더스보다 훨씬 선명한 색깔을 보여주면서 진보적 선명성도 강해졌다는 평가.
 * 다만 제1차 대선 후보 토론 2일 후에 "총기 규제에 대해 양쪽이 소리치면(shouting)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다"고 한 샌더스의 발언을 트집잡아 "[말하면 소리치는 것이냐]"고 네거티브를 걸었는데, 사실 샌더스는 같은 발언을 토론이 벌어지기 몇달 전부터 계속 해왔기 때문에 성차별(*****ism) 카드를 벌써 꺼내드는 것이냐며 반응이 좋지 않다.[* 본인이 별 거 아닌 후보라고 생각하면 그냥 언급을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먼저 건드렸느냐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MSNBC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말을 반복했고] 폭스 뉴스조차 없는 말을 지어낸다며 [비판했다]! ~~폭스 뉴스가 바른 말을 하다니!~~ 샌더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잡은 것일 뿐이다]"고 잘라말한 후 총기 관련 현안에 대해 얘기를 했다.
 * 해병대에 입대하려고 했다고 했던 주장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또 다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입장에 있었는데 해병대에 입대하려고 한 건 앞뒤가 안맞다는것. WP에서는 사실일 가능성이 있지만 힐러리가 말한 것처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10]]
* 제2차 대선 후보 토론에서 샌더스와 오맬리로부터 정치 자금의 출처가 대부분 월가라는 지적을 받자, "나는 9.11 테러 당시 월가의 재건에 온 힘을 쏟았다"고 말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해당 발언 직후 "월가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은 것을 변명하려고 9.11 테러를 써먹은 발언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고 트위터에서 곧바로 [받았고], 이 지적이 방송에 곧바로 다시 올라올 정도로 파장이 컸다. 해당 지적을 한 인물은 아이오와 주립대 법학과 조교수인 [그루얼]이다.
*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그녀에게 매우 긍정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테러 문제에 관해 힐러리가 모든 공화당 후보들보다 더 미국인들에게 신뢰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11]] 파리 테러가 민주당에게 악영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어느 정도는 불식시킨다고 할 수 있겠다.
e메일 스캔들

2015년 초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서 공적 이메일이 아닌 사적 이메일을 사용했다는 것이 뉴욕 타임즈를 통해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힐러리 사적인 일로 본인의 이메일을 사용했다면 아무런 논란이 없겠지만 공적인 일에도 그 메일을 사용했다는 것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사적인 이메일이 공적인 이메일보다 해킹을 당하기 쉽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국가 안보에 위험이 가는 행동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큰 의문점은 왜 클린턴이 공적인 일에 사적인 이메일을 사용했냐는 것. 클린턴은 계속해서 자신이 한 일이 법에 위반되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왜 이렇게 까지 해야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전반적인 의견은 클린턴이 뭔가를 숨기려했다는 음모론쪽 보다는 그냥 실수 (...) 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수든 아니든 클린턴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클린턴이 자신의 무죄 (공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았다)를 증명하기 위해서 사법부에 모든 이메일을 공개했다지만 공개하기 전에 클린턴의 스태프가 2년 동안의 이메일을 모두 검토했다는 것 여기서 스태프가 클린턴에게 불리한 이 메일은 지웠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

이 논란에 대해 미 법무부에서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개인 이메일 계정을 소유할 법적 권리가 있으며, 그가 이메일 메시지를 다룬 방식도 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백악관 또한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클린턴 전 장관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개인 이메일 사용에 관해 사과해야 하는지를 질문받자 대통령이 사과 등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12]] 미 정치권과 외부에서는 정부와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큰 여당 후보를 보호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제1차 민주당 대선토론에서도 당연히 해당 스캔들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힐러리는 중요한 정책에 대해 얘기하자는 답변으로 넘어갔는데, 이에 버니 샌더스가 "미국인들은 그 놈의 이메일 얘기는 이제는 지겨워한다(The American people are sick and tired of hearing about your damn emails.)"고 동의해주면서 힐러리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무난히 넘어가게 되었다. 이 발언으로 버니 샌더스의 인지도가 크게 늘어난 것은 힐러리 입장에서 어찌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버니가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인물들이 얘기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메일 스캔들은 정적의 입장에서 공격하기 좋은 떡밥이고 힐러리 본인도 석연찮은 초기 대응을 보여주었으므로 조사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힐러리의 기록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폴리티코(Politico)에서 이메일 스캔들을 암(Cancer)이라 [이유이다].

결국 1월 29에 국무부에서 힐러리의 이메일중 22건의 이메일을 1급 기밀로 분류하고 공개를 거부하면서 다시 논란에 불이 붙었다.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젭 부시등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TV토론회에서 힐러리는 군통수권자 자격이 없으며 힐러리를 기소해야 된다면서 강공을 퍼붓고 있어 힐러리에게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것으로 보인다.

벵가지 스캔들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물러날 때 테러리스트들이 벵가지라는 리비아의 도시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공격해서 대사관과의 직원들을 죽였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 힐러리 클린턴이 책임이 있다는 것이 스캔들이다. 공화당원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병력 증강을 요구하는 대사관의 요구를 여러번 무시하였으며, 미국 대중들에게 테러리스트 공격인것을 알면서도 처음에는(나중에는 발언을 번복했다) 테러리스트 공격이 아니라고 거짓말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5년 10월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이 사건에 대해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민주당원들은 이 사건이 공화당의 힐러리 클린턴 끌어내리기 작전 중 일부라고 보고 스캔들이 아니라고 한다. 공화당원들은 그것을 부인하지만 10월 2명의 공화당원들이 벵가지 커미티는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기위해 만들었다고 고백해버렸다 (...) 그 중 한명은 10월 현재 공석인 하원 의장 후보 1순위였던 케빈 매카시로 그는 공중파에 '힐러리 클린턴은 막강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는 무엇을 했나? 벵가지 커미티를 만들었다. 그녀의 지지율이 지금 몇 퍼센트인지 봐라' 라고 말했다.

결국 이 말실수로 인해 매카시는 하원의장 직에 앉아보지도 못한 채 후보를 사퇴해야 했고, 이후 공화당은 폴 라이언을 하원의장으로 올리기 전까지 사상 초유의 아수라장을 겪어야 했다.

2015년 10월 22일에 있었던 청문회에서는 힐러리가 평소에 보여주었던 신기에 가까운 말솜씨로 9시간 동안 모든 추궁을 뿌리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마지막 발언에서 청문회의 의장인 트레이 가우디([Gowdy])가 습격에 관한 증인 출석을 방해하려 했다는 정황을 언급하면서 무언가 꼬리를 잡는가 했지만, 갑자기 이메일 얘기로 삼천포로 빠지면서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렸다. 이후 힐러리는 골수 극우를 제외하고는 벵가지 스캔들에 대해 딱히 공격당하지 않게 되었고 지지율도 회복하게 되었다.

이렇게 벵가지 스캔들은 공화당원들이 힐러리 클린턴 공격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스캔들이기도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도 미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 의심은 힐러리 클린턴이 벵가지 공격이 테러리스트 공격임을 알았음에도 미국민들에게는 무슬림의 순진함 때문에 이 공격이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발언을 하기 며칠 전 이집트 대통령에게 이 공격은 그 비디오와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 밝혀진 것. 충분히 거짓말이라고 의심받을 만한데도 묻혀진것은 미국 주요언론들이 진보적인 색채를 띠기 때문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벵가지 스캔들은 과연 마무리된건가?

2011년 미국 대사관 직원 4명이 피살당한 벵가지 사태는. 힐러리가 2015년 10월 벵가지 청문회를 넘기고 경쟁자 버니 샌더스가 이를 문제삼지 않을것이며 정책대결을 하자고 해서 적어도 민주당 경선에서 만큼은 봉합되고 넘어간듯 했으나 향후 본선에서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불발탄과 같다.

2016년 1월에 벵가지 사태를 다룬 마이클 베이의 영화 13 Hours: The Secret Soldiers of Benghazi (2016)라는 영화가 개봉되어서 현재 상영중이다. 일설에는 힐러리가 이 영화의 개봉을 막으려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도 있다. 관련기사 '벵가지 영화', 마음 바쁜 힐러리 발목 잡나? 기사내용 '힐러리 측이 영화 개봉을 막으려고 시도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13]]

특히 얼마전인 1월중순에 FOX티비에서 이 영화 개봉에 맞춰서 벵가지 사태 희생자 유족 3명을 초대했는데 벵가지 사태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도 출연해서, 원망,통한어린 눈물과 함께 '힐러리는 거짓말쟁이다'(Hillary is a liar)라고 고함을 질러서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향후 대선에서도 이 어머니가 계속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youtube(ZQy5WiUNWFY)] 3분 30초부터 이 어머니의 말이 나온다.

건강 이상설

전직 뉴욕 경찰관이 연방요원과 경호 인력 등에게서 들은 얘기라며, 3차 토론회 도중 중간광고 시간에 잠시 화장실 이용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실을 거론하며 "클린턴이 화장실에 간 것은 뇌 부상의 문제가 재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인인 에드워드 클라인도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뉴스에 "클린턴은 여전히 두통과 불면증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며, "지난해 벵가지 청문회[* 윗문단에 언급된 그 청문회]를 마치고는 보좌진들의 팔에 의지에 차량으로 실려 갔다"고 말했다.

이미, 2012년 12월 장염에 걸려 실신해 뇌진탕 증세를 일으켰다가 후속 검진 과정에서 혈전이 발견돼 한 달여 동안 업무를 중단한 적도 있었다고.

이에 대해 힐러리 측은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는 주치의 소견을 이미 지난해 7월 받았다"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이야깃거리

* 빌과 힐러리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정치적 동맹이다 등등 말이 많지만 백악관 시절 일을 했던 사람들이 은퇴한 후에 써놓은 책을 보면 아닌 듯하다. 한 예로 빌과 힐러리가 둘만 있을 때는 참모들이 반드시 노크를 한 후에 들어갔다고... 대통령님과 여사님께서 격렬한 섹스를 하고 있던 것을 목격한 참모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목격하고 나서 관타나모에 끌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참 민망한 경험이었다고.
* 힐러리가 정치인으로 있는 시절에 사망(내지 부상)한 정치인들 이 꽤 많다.(상당히 많다... 음모론이 괜히 생긴 게 아닐 정도로)
* 대중적인 이미지가 한때 상당히 안 좋았다. 미국의 한 투표에서 지난 천 년간 가장 사악한 인물에서 이디 아민, 사담 후세인을 제치고 6위에 랭크되기도 했다고.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며 2012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서 외교의 아이콘으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이미지가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올라간 듯.
* https://i0.kym-cdn.com/photos/images/original/000/280/609/55b.jpg
'국무장관 여사'라고 불러
* https://static.thehollywoodgossip.com/images/gallery/mitt-romney-and-hillary-clinton-texting.jpg
#힐러리 클린턴을 2016년 대통령으로
롬니야, 넌 좀 짜져있어
* G6 안에서 시크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진에서 포풍간지를 뿜어내어 또 한 번 필수요소가 되었다.
* 힐러리 여사의 억양은 미국 중서부 지역 억양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캘리포니아식 억양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약간 색다르게 느끼게 들릴 듯. 그리고 위엄 있는 말솜씨와 분명한 자기주장의 능력자이다. '낙태'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힐러리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던 상대 공화당 의원을 역관광시키기도 한다.
*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정치인이지만, 전 주미 러시아 대사이며 러시아의 현 외교부 장관 세르게이 빅토로비치 라브로프는 힐러리와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나서 그녀를 "외교에 무지하다"고 디스했다...
사실, 역대 미국 외교가 인물 중에서 러시아의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자체가 매우 드물다. 비슷하게, 미국 역사학자들의 저서들을 읽어보면 대체로 구소련의 외교능력에 대해 매우 참담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서로 기준이 매우 다른 듯.
* 2015년 5월 백악관 만찬에서 오바마의 분노 번역가 루터[* Key & Peele에서 · · · · ·.]가 힐러리를 언급하며 '칼리시가 웨스테로스로 온다! 다들 조심하라구!' 라고 말한 것을 계기로 대너리스 타게리안과의 합성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칼리시는 소설 왕좌의 게임에서 유목민 부족 여왕을 일컫는 호칭이다.] 그리고 2015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선정되었다.
* 프로필 키를 주작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2008년 경선 당시 힐러리의 프로필 키는 167cm였는데 지금은 174cm로 기재 한다는것 (.....) [[14]]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은 그녀~~

관련항목

* 뉴욕주 - 힐러리의 정치적 근거지.
* 빌 클린턴 - 미국 제42대 대통령이자 힐러리의 남편.
* 버락 오바마 - 치열했던 2008년 민주당 경선의 경쟁자이자 현 미국 대통령.
* 민주당 - 소속정당
* 버니 샌더스 -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2016년 민주당 경선의 경쟁자.

분류:미국의 정치인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