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
개요
何晏(190,193?~249)
중국 wiki:"삼국시대(중국)" 삼국시대 [wiki:"위#s-5"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자는 평숙(平淑). wiki:"후한#s-1" 후한 말기의 외척으로 대장군까지 지낸 하진의 손자이자 위 태조 무황제 wiki:"조조(삼국지)" 조조의 사위.
조부 하진은 십상시의 난 때 뜻밖의 죽음을 당했으며, 종조부 하묘도 조부의 암살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죽음을 당해 이후 정권을 잡은 wiki:"동탁#s-1" 동탁이 고모할머니 하태후와 그 아들인 wiki:"소제#7.1" 소제가 폐위당해 독살당한 것에 이어 종조부 하묘도 조부를 죽게 했다는 이유로 동탁에게 무덤이 파헤쳐져 시체가 절단되면서 길에 버려졌다. 곧이어 증조할머니 무양군을 비롯한 하씨 일족들은 동탁이 몰살해 오직 아버지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 곧 요절했기 때문에 하안은 하씨 일족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으며, 하안의 어머니 윤씨는 wiki:"조조(삼국지)" 조조에게 재가했기 때문에 조조는 하안을 자신의 자식들과 같이 길러 사실상 양자와 다름없는 몸으로 위나라 궁정에서 양육되었다.
영특해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에 조조에게 특히 사랑받았다고 한다.
세설신어에서는 여러 일화가 있는데, 조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조조가 하안을 워낙 총애해 아예 그를 정식 양자로 들여 조씨(曹氏)로 삼으려 하자 어리지만 영특했던 하안은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자 땅에 금을 그어놓은 뒤 그곳이 '하씨의 문'이라면서 하루종일 그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이런 하안의 기행에 조조는 하안을 기특해하면서도 안쓰럽게 여겨 양자로 삼으려던 것을 그만뒀다고 한다.
훗날 조조의 딸인 금향공주와 결혼하면서[* 위말전에 따르면 이 금향공주가 하안과 어머니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이라면 아버지가 다르다고 해도 빼도박도 못하게 근친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배송지가 그럴 리 없다고 반박한 것도 있고 여러가지 정황상 근친혼은 아닐 것으로 보는 게 대세.] 왕실의 부마가 되었다. 하안은 당대의 석학으로 이름이 났지만 사치스럽고 호색해 여러 기행을 벌였고, 노장에 심취해 수십편의 책을 저술했다. 조조의 후계자 조비는 평소 하안의 퇴폐적이고 거리낌없는 성격을 싫어해 "가짜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공공연히 경멸감을 드러내던 인물이었고, 조조가 죽자 하안을 궁궐에서 내쫓아 관직에도 임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조예 시대까지도 중용되지 않았는데, 조예가 죽고 그의 양자인 조방이 8살의 나이로 제위를 계승하자 황족인 [조진]의 장남이자 조예의 처남인 조상이 집권[* 원래 조예는 그의 숙부인 연왕 조우를 대장군에 임명해 정권을 맡기려고 했다가 그가 사양하자 조상에게 맡겼다.]했는데, 하안은 조상의 수하로 영입되면서 관리 선발을 담당하는 이부상서로 임명되어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입성했다.
당시 조상과 함께 탁고대신으로 정권을 위임받은 인물은 사마의였는데, 사마의의 업적은 조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않으며 나이로도 조상의 아버지 뻘에 해당했기 때문에 조상은 감히 사마의를 거스를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하안은 조상을 부추기는 한편 사마의를 실권이 없는 명예직인 태부로 추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권력을 해체해 사마의를 실각시켰다. 이후 하안은 붕당을 조직해 나라의 중권을 조상이 독점하고 모든 결재를 먼저 심사토록 해 조상의 1인 체제를 확고히 한다.
하지만 조상의 붕당엔 하안을 필두로 당시 경박재자로 불리던 신흥 가문의 인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의 세력은 기초가 없었다. 때문에 하안은 자신들의 세력과 영합하는 자는 승진시키고 거스르는 자는 파면시켰으며, 태후의 궁을 자신들이 맘대로 옮기는가 하면 조방이 집행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등 심하게 권력을 남용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에 대한 기존 관료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249년 조방과 조상, 그리고 그의 일파가 조예의 무덤인 고평릉에 제사를 드리러 간 사이에 조상의 권력 독주에 불만을 품은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킨 고평릉 사변으로 실각했다.
위씨춘추에 따르면 사마의가 하안에게 조상과 그의 심복 이승, 필궤, 정밀, 등양, [환범], 장당 등의 재판을 맡기자 하안은 혼자 살기 위해 동지였던 조상과 그 심복들을 필사적으로 치죄해 사면받기를 원했지만[* 하안은 그 사마사와 친했다. 나이 차이는 20세 가까이 났지만 그냥 친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잘하면 살 길이 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마의는 그런 하안을 조롱하듯 죄인들의 명단 마지막에 하안의 이름을 넣었다고 한다.
조상, 하안, 이승, 필궤, 정밀, 등양, 환범은 모두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족되었다. 그러나 하안의 어머니 윤씨가 당시 5, 6살 정도였던 손자, 즉 하안의 아들의 조명을 탄원해 둘만은 살아남았다.
평가와 기행
하안은 삶의 근본을 정치가 아닌 학문에 두어 현학과 유학, 도가 학문에 두루 깊이 연구를 다해 당시의 지재이던 왕필을 발탁하는가 하면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대표 저작인 논어집해는 현대에도 전해지며 위진현학의 시초로 받들어지는 등 역사적으로 패배자였던 반면 학문적 성취는 후대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사마의의 쿠데타에 실각하고 처형된 인물이니만큼 정사에서는 아첨과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권력을 남용하고 최후에는 극도의 비굴함을 보이는 등 간신의 표본에 가깝게 묘사되나 세월이 지나 왕조가 바뀌면서 과거 왕조의 역사에 대한 공정성이 생겼기 때문인지 혹은 사마씨 정권이 조상과 하안 파벌을 몰아내고 세운 서진왕조의 행태가 워낙 막장이었기 때문인지 하안을 재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당나라 시기에 쓰여진 진서에서는 하안이 매우 공정한 관리선발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정사 삼국지의 기록과 평가가 상반되고, 명-청 교체기의 인물인 왕부지는 하안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사마씨 정권과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신랄히 비판하길,
{{|사서에서는 하안이 권력자에게 빌붙어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그에게 붙은 사람은 승진했고 거스른 사람은 파직됐다고 한다. wiki:"부하(삼국지)"부하 등은 하안이 겉으로는 청정하나 속으로는 간사하다고 조롱했는데 이들은 모두 사마씨의 당파로 사악한 사람들이 모여 정직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 오명을 더한 것이다.
하안이 자신과 다른 파벌을 해체하고 자신의 사람들을 심은 것은 조씨의 사람들을 깊이 배양하고자 한 것이다. 노육과 부하는 자신의 관직과 녹봉에만 관심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자손뿐인데 어찌 사직의 신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령 조상이 하안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사마의를 아버지처럼 섬기며 거스르지 않았다면 비록 그 자신은 생명을 부지했을지 몰라도 또한 왕망을 떠받든 유흠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사마의의 찬역이 이미 성공하는 데 이르러 조상이 대항하고자 한들 유의나 사마휴지가 망하거나 죽은 것처럼 너무 늦지 않겠는가? 조상은 더불어 무슨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조예가 그것을 모르고 어린 임금을 맡긴 것이다. 조상이 이미 종실의 신분으로 고명을 받으니 하안과 필궤, 등양, 이승 등의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누구와 더불어 일을 하겠는가.
당시 조씨의 종친들은 wiki:"조비" 군주에게 시기당해 소원해져 권력이 없었고 한 두 명 남아있던 정직한 대신 고당륭이나 wiki:"신비(삼국지)"신비 같은 사람들도 세상을 떠났으니 조씨의 존망을 쥐고 있는 것은 오직 하안 뿐이었다. 그런데 유독 하안을 심하게 책망하는 것은 마치 유곤에게 왜 유연에게 귀부하지 않았으며 문천상이 왜 몽고에게 항복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는 것과 다름없지 아니한가!
명예와 절의가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은 부화(浮華 =겉치례만 화려하고 참람되며 실속이 없음.)하다 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간사하다 하는구나. 삼국지는 진대에 쓰여졌으니 사마씨의 책이나 다름없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책으로 인해 충심과 애국을 버리고 다만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만을 얻고자 하여 심하게는 역당에게 귀부하는 것을 훌륭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공론이 소멸하니 사람들의 마음이 미혹되는 것이다.|}}
조상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술이 없기 때문에 고찰할 방법이 없으니 왕부지가 주장한 대로 조씨의 존망을 쥔 유일한 희망이 하안이었을지도 확단하기는 어려운 문제지만, 하안과 마찬가지로 조상파의 핵심인사였던 하후현이 구품중정제의 폐단에 대한 보완책을 제시한 것에 대해 사마의가 반대했던 사건이나[* 사마의를 비롯한 사마씨 정권 자체가 구품중정제로 인해 세력을 강화한 문벌귀족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조상 파벌에 속했던 인물들이 주로 조씨의 종친이나 조조 시대에 벼락출세한 신흥 가문 2세대 출신이었던 점을 본다면 능력이나 도덕성의 유무를 떠나 사마씨 파벌로 대표되는 구품중정제로 인해 문벌귀족화한 기존 호족세력에 비해 친왕세력에 가깝고 사마씨 등 문벌귀족과의 대결양상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띄었으리라 추측하기엔 무리가 없다. 물론 진보적이라는 조상 파벌이 실제적인 국정 운영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미지수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별개로 하안은 자신의 외모를 많이 가꾸어 이름이 났다. 자신의 얼굴을 보며 몹시 만족하며 기뻐했고, 밖으로 나갈 때는 화장을 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자신의 그림자마저도 항상 돌아보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에 대해 당시 유명한 점술가 관로는 “얼굴이 하얗고 걷는 것이 나무와 같은 하안은 귀신의 상으로 오래 장수할 상이 아니다”라고 평했고 이는 적중했다.
세설신어에서는 wiki:"조비#s-1" 조비가 하안이 얼굴에 분을 칠하고 다녀서 저렇게 하얀 것이라고 여기며 망신을 주기 위해 여름철인데 뜨거운 국을 자리에 내오게 했고 하안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건(혹은 옷소매)로 얼굴을 닦자 수건이 새하얘지며 화장빨이 들통났다는 굴욕적인 일화도 있다.
수건이 아니라 얼굴이 더욱 하얗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원전에서 "땀이 흐르자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는데 (수건이)바뀌어 하얗게 되었다"는 것을 얼굴이 더 하얗게 된 것으로 오독한 것으로 여겨진다.
태평어람에 의하면 몸이 워낙 허약해서 무거운 옷은 그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다고 한다. --병약 미소년 계열??--
위말전과 오행지에 의하면 여자 옷을 입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태평어람의 기록과 같이 본다면 조복 같은 당시의 남성 정장이 무거워 입기 힘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남성복이 다 무겁고 여성복은 다 가벼운 게 아닐 테니 역시 취향의 문제 같다(...)
초학기에 인용된 하안별전에 의하면 엄청난 미남이었기에 밖에 나가면 구경하는 사람이 거리에 가득했고 모두 하안이 신선과 같은 부류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안의 외모도 외모지만 위의 기록과 종합해 봤을때 당대 최고 권력자인 조조의 의붓아들이자 사위라는 사람이 여자옷을 입고 화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현대 기준으로도 쇼킹하지만 고대에는 더더욱 엄청난 컬쳐쇼크였을 것이다.... 게다가 구경꾼들이 거리를 가득 매운 상황에서 하안이 주눅들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외모를 과시했다고 다녔음을 생각하면 일반 사람들이 하안을 다른 차원의 사람(=신선)으로 여겼을 것도 무리가 없다...
다만 하안이 죽는 시점에서의 나이는 60대에 가까운데 진나라 시대에 하안과 조상 파벌을 까는 기록이야 워낙 파다했을 테니 하안의 기행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젊은 시절에 잠시 벌였던 기행이 과장되어 전해진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는 평상시 석종유, 석유황, 백석영등을 정제시켜 만드는 일종의 흥분제인 오석산을 복용해 친한 지인들에게 전파하기까지 했다. 그는 중국사 최초의 마약 복용자 및 마약 브로커로 [창천항로]에서 어느 정도 보이는 그의 기행은 다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세설신어에 따르면 하안은 오석산을 복용하면 병을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이 맑게 트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얘기했다.~~어디서 약을 팔아~~
삼국지 시리즈
|| attachment:11하안얜키랏이아니야.jpg || || 삼국지 11 일러스트 || || attachment:하안.jpg || || 삼국지 12 일러스트 ||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 삼국지 7에서 최초로 등장했으며 능력치는 통솔, 무력이 낮고 지력, 정치가 6~70대의 후잡한 정치형 문관 스타일인데 유독 매력이 한자리수로 극단적으로 낮다. 조상의 측근 중에서는 가장 꾸준히 출연했다. 삼국지 10까지 자신의 저작인 논어집해를 아이템으로 가지고 있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0/36/74/72. 혼란과 매도를 가지고 있다. 논해집해의 정치 보정은 4.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27/72/68/3에 특기는 반목,반박,논파 3개. 큰 의미는 없지만 전용아이템으로 논어집해(지력+2)를 가지고 있어서 실질 지력은 74가 된다.
미남이라고 버젓이 사서에 나왔건만 인지도가 낮기 때문인지,7~10까지는 그야말로 듣보잡 문관스러운 인상으로 나왔다가 삼국지 11에서 일러스트가 교체되었는데, 초점 없이 썩은 눈이 뽕맞은 듯한 인상이라 마약쟁이라는 고증은 맞는 것 같지만 안습한 능력치에 걸맞는 찌질한 3류 악당스럽게 나왔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준 사기급 특기인 기략을 갖고 있으며 수명도 그럭저럭 긴 편에 속하므로 상당히 쓸만하다. 지력이 겨우 71이긴 하지만 후반기 장수들의 능력치가 대체로 낮고 PK라면 지력 71 이상인 장수는 능력연구로 지력을 95까지 올릴 수 있으므로 지력만 90대로 올려주면 졸지에 A급 모사로 가치가 급등한다.[* 다른 기략 소지자인 이회에 비해 다른 능력치가 낮으나 어차피 지력만 높다면 그런 건 별 문제가 안 되고 의리가 낮고 야망이 높아 배신하기 쉬운 점도 의형제 시스템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역대 삼국지 시리즈 중 하안이 가장 쓸만한 시리즈. 지력을 올린 뒤 사마의와 가충과 함께 계략대를 편성하면 유사 제갈마속이 된다.
삼국지 11 이후의 공백기간 동안 창천항로,삼국지대전등 다른 매체들의 조명으로 어느정도 인지도가 생긴 영향인지 삼국지 12에서는 깔끔한 미남형의 일러스트로 교체되었다. 뭔가를 주시하는 모습인데 포즈가 키랏을 닮았다고도…
능력치는 지력이 1 상승한 것 외에 전작과 동일하나 매력이 삭제되면서 평균치가 상당히 올라갔으며 논어집해가 부활해서 실질적인 지력은 70대 중반에 머무른다. 전법은 지력저하. 매력의 역할이 지력, 정치와 합쳐졌기에 기존에 비해 내정용으로서의 활용도는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작의 자신들(...)과의 비교이고 게임 전체로는 잉여급.
[창천항로]
작품 중후반부부터 등장한다. [조조]의 둘째 딸과 [wiki:"속도위반#s-2" 결혼전에 아이를 만들었다는 설정]이며, 처음에는 혼자 나와서 누구를 주시하며 돌아다니거나 나중에는 자신의 아이와 등장해 나중에 자신을 죽이게 되는 [사마의]를 경계하는 모습도. 처음에는 유교와 유학자들을 매우 깔봤으나 조조의 권유에 의해 논어를 해독하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중에는 공자와 논어에 심취하게 되어 [유엽]에게 놀림받기도 한다.
[삼국전투기]
틴 타이탄의 로빈으로 나온다. 문흠의 첫 등장 때 등장한 로빈은 문앙일거란 추측이 있었지만 정작 하안이 로빈으로 나왔다. 굉장히 자뻑이 심한 나르시스트로 나온다. 한 방서에서 그랬던 것 처럼 정밀, 등양과 함께 위나라의 세마리 개라고 불리며 대차게 까이고있다. 아얘 그 셋을 개로 그린 장면들까지 있고 촉나라의 장완, 비의 동윤과 비교되면서 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