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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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 진보 계열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학생들을 통칭하는 말. 원래는 독재정권 당시 친정부 언론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만든 표현이었는데, 딱히 대체 표현이 없어서 그런지 운동권 스스로도 계속해서 쓰고 있다. 어쨌든 스포츠와는 전혀 관련없다.

이에 대비시켜 비운동권, 혹은 반운동권이란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사실 현재는 운동권이니 비권이니 하는 표현 자체가 잘 쓰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권은 문자 그대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인 점이 크다. 요즘은 비운동권 학생회가 디폴트값이고 어쩌다 운동권 학생회가 세워지면 '요새도 운동권이 남아있어?'라는 시각을 받곤 한다. 성향에 관계없이 학생회라는 조직 자체가 붕괴 직전의 안습한 상황이다보니 2000년대를 풍미한 운동권 대 조직화된 비권 간의 정치싸움도 옛말이 되었다.

농담삼아 운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체대생들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과거와 정치적 성향

운동권이란 표현이 널리 사용된 것은 80년대 부터이다. 60~70년대 비 합법 운동이 끝나고 학생운동이 학내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위치를 점하면서부터 이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자타공인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핵심세력. 다만 내부적으로 그 분파는 다양했다. 이러한 노선논쟁이 본격화 되는 것은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다시말해 이후에 무슨 운동을 할 것이냐란 논쟁이 이루어지면서 분파가 형성되고 이는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이니, 반봉건매판자본, 등등등 정말 어려운 용어들로 노선논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AI라든가 하는 방식의, 80년대와 다소 다른 방식의 논쟁이 있었다. 대부분 국제정세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며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맑스주의, 자유주의, 마오주의를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추가바람 ] 정말 무협지처럼 다양한 노선 논쟁이 있었는데(김영하 작 무협학생운동),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NL-PD 논쟁이다. 이는 사구체 논쟁에서 촉발된 것으로, NL-PD와 관련 된 내용은 따로 항목이 있으니 서술 생략. 물론 이 당시 NL이 지금과 같지도 않고, 이 당시 PD가 지금과 같지도 않지만 이 흐름은 아직까지도 한국사회 운동세력 내에 커다란 구분선 중 하나이다. 현재 NL-PD 구분은 거의 통일운동 vs 노동운동 대립구도를 대신하는 단어로 쓰인다고 봐도 무방하다.

NL 계열은 1980년대 중반(강철서신 사건)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정확하게는 1996년 연세대 사태,1997년 전남대학교 학생구타사망사건 이전까지는) NL이 다수파며 사실 이는 학생운동권에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사실 이론이 타 정파에 비해 매우 구리지만(...) 친화력과 조직력 하나는 최강(...)이다보니...) 하지만 학생운동권내 최강 조직이자, NL의 심장[* 초창기엔 PD파도 참여했지만, 96년 이후 점차 떨어져나갔다. 그 이후에도 남아있는 곳도 있었긴 했다.(대표적으로 서울대 다만 이쪽은 90년대 이후 NL이 한 번도 석권한적은 없다.) 물론 지금은 일부 극단적인 NL들 빼고 다 떨어져 나갔지만.]이였던 한총련이 유명무실화된 것만 봐도 그렇다. 한총련의 뒤를 이은 한대련의 경우 적어도 겉으로는 한총련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지는 않는다.(하지만 2010년대를 전후해서 한대련의 주류였던 NL혁신과 PD계열에 세가 빠지고 수도권 일대의 NL계열(...)이 조직력을 이용해 주류가 되면서 다시 한총련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전투력은 한총련 시절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아무튼 현재 NL내 최대 정파는 한대련이며, 현재 학생운동 내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

PD 계열은 소련 붕괴 후 엄청나게 분화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전국학생연대회의(구 대장정 / 현 행진) - 전국학생대표자협의회 (구 전국학생연대 / 현 대학생 사람연대)의 이분구도 였으나 전학협이 해체하고 PD-NL을 아우르는 정파였던 21세기 진보학생연합역시 해체하면서 그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PD 경향 정파는 연대회의를 계승하는 전국학생행진, 다함께를 계승하는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 정확히 말하면 PD는 아니지만 큰 틀로 보면 범 PD로 분류된다.], 전학협과 사회당을 계승하는 청년좌파, 그리고 사노위를 계승하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학생위원회 정도이다.

80년대 시위의 꽃이기도 했다. 백골단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정권의 징압병력을 막을 전투력을 필요로 했는데 마치 망치와 모루처럼 시위대오와 전경방패부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으면, 양 측면에서 백골단이 "야! 살(殺)!!" 이란 구호와 함께 덮쳐오는 진압전술이 자주 등장했으며 양 측에서 사수대라 불리는 학생들이 백골단과 방패부대의 압박을 저지하면서 나머지 대오가 플랜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팜플렛을 길거리에 살포하거나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식의 집회가 전개되었다. 결국 후자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던 것.

80년대에는 집회 대오 중 가장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유한게 학생대오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 당시 선도적으로 이슈파이팅을 하던 사실상의 유일한 집단이 학생운동권이었고, 당연히도 집회에서 앞장서는 역할을 맡았다.

[뉴라이트]와 운동권

의외라고 느낄지 어떨지 모르지만, 뉴라이트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은 사실 운동권 출신들이 대다수이다. 즉 젊었을 때 운동권에 몸담아 열심히 좌향좌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선 방향을 180도 돌려 열심히 우향우한 결과물이 바로 뉴라이트.

운동권이었던 그들이 이처럼 극적인 전향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냉전의 붕괴 과정에서 겪은 멘붕 때문이었다. 흔히 운동권 소속 청년들이 그렇듯, 이들도 운동권 선배들의 영향으로 현실의 대한민국 사회와 미국 등에 대해선 대단히 부정적이었던 반면, 북한이라든가 공산주의, 주체사상 등에 대해서는 이상적인 부분만을 취사적으로 받아들여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던 이들이 다수였다. 그렇게 운동권이 최극성을 이루던 80년대 말 압도적 화력을 선보였던 이들이었으나,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소련의 붕괴, 독일의 통일, 동구권의 변혁 등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제히 몰락하고 90년대 중반들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그 대내적 실상이 밝혀짐에 따라 상당수가 그제서야 "우리가 속았다!!"는 충격을 먹고 멘탈붕괴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기존에 있던 한총련은 시대에 제대로 변화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연세대 사태|96년 한총련 사태]와 [이종권 구타 살인사건|97년 프락치 오인 살해사건] 등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90년대 운동권 내부에서는 통렬한 반성의식이 소용돌이쳤고 이 때 운동권 인사들 중 상당수가 우익으로 전향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 때 한총련 산하단체였던 전북총련이 한총련을 탈퇴하고 나중에 수천명이 집단전향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사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전투종족적인 강경성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권 특유의 저돌성을 고수하는 상태에서 방향만 180도 튼 꼴이 되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뉴라이트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뉴라이트 주요 인사로 불리는 인물들의 약력을 보면 의외로 젊은 시절 운동권 이력이 있거나 운동권과 관련을 지었던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실제 운동권 경험을 해 보았던 이들이기 때문에 운동권에 대해 누구보다 그 생리를 빠삭하게 꿰고 있으며, 극단적인 좌향좌에서 급격히 극단적인 우향우로 트는 [극과 극은 통한다|이런 현상]은 아직도 현재진행, 아니 원래부터 동서고금 꾸준히 역사적으로 있어 온 사실이다.

비판

* 운동권의 주축은 대부분은 소위 명문대 재학생, 출신들이 독점했다.[* 좀 정확히 말하면 메이저 캠이라고 해서 문과 위주 명문대다. 1980년대만 해도 이공계에서 운동권은 ~~서울대 빼고~~ 거의 보기 힘들었다. (메이저 캠퍼스의 준말로 당시 학생운동 파워가 강했던 5개 대학을 말 한다.)] 운동권 세력판도도 NL,PD 계파로 분류되기 이전에 [대학 서열화|대학 순위]별로 갈려 버리는 건데 명문대 출신과 3류대 출신이 똑같이 운동권 활동을 벌일 경우 3류대 운동권은 니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비웃음을 사고 해당 학교 학생들의 호응도 이끌어 내기 어려워서 적극적으로 운동권에 개입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학벌과 학력 덕분에 명문대 출신들은 사회에서 한자리씩 하는 선배들의 도움을 받거나, 사상적 전향 이후에도 국가고시든 어디든 먹고 살 길과 능력이 있었지만[* 운동권 시절 사상학습 과정에서 배운 논파력으로 이후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강조될 때 논술강사로 많이 갔다고도 한다. 스타 강사들 중에서도 운동권 출신이 많다.] 3류대가 운동권 전력을 가질 경우 앞날이 심하게 암담했다. 심한 경우에는 명문대가 주축이 된 운동권조직이 3류대 학생회에 개입해 학내분규를 조장 혹은 학생회 자금만 유용해버리고 발을 빼는 일도 있었다. 

* 과거의 시위대하면 흔히 꽃병과 파이, 그리고 바리케이트와 짱돌로 대표되는 폭력시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90년대 들어서는 폭력시위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게 극단적으로 폭발된게 1996년 [연세대 사태|연대 한총련 사건]이였다. 이 때를 계기로 내부적으로 필요이상의 폭력시위는 자제하자는 비판이 돌았고, 2000년대를 기점으로 학생운동권의 전투력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2006년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시위정도가 학생운동권이 마지막 전투력(?)을 보여준 때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론 무기가 등장할 정도의 굵직굵직한 충돌은 대부분 노동조합 대오와 전경들 사이에 벌어졌다. 최근에는 학생대오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전투력이 하락해 집회 때 되려 시위대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대표적으로  전경밀고들어오는데 등돌려 도망가기[* 특유의 전투력(...)로 전경 여럿 전역시킨 대규모 노동조합은 안 그럴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경향이 있다. 대규모 시위 참여시 앞에 노동조합이나 학생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 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고대전투던 현재전투던 이런식의 퇴각은 최악의 전술이다. 실제 이럴경우 뒤에있는 대오랑 엉켜 우르르 넘어지고 그대로 연행당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잘 도망치는 소위 시위꾼들은 혼란상황을 통해 손쉽게 빠져 나간다.]
*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노자 교수가 과거 운동권의 문화를 비판한 적도 있다. 내부적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생활계율[* 국풍81 이 열리던 때는 군복무 하던 학생들이 강제로 공연을 했었는데 그 행동도 변절자라고 취급해서 학생사회에서 제명시켰던 흑역사가 존재한다.]을 적용해 내/외적으로 비판을 받은적도 있었다. 특히 NL 계열의 경우 주체사상의 수령론의 영향으로 인해 이러한 권위주의 문화가 매우 심했다. 80년대에는 선후배간의 체벌도 꽤 많았다고 하여 하며 몇몇 학교들은 2013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가령 새내기 군기잡는다고 한학번 위 학생들 집합시켜서 기합을 준다든가...(흠좀무) 놀랍겠지만, 사실 80년대에 대학문화 자체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당히 권위적이고 마초적이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당시 NL들의 구호인 미제와 청와대 독재 아래 신음하는 우리의 딸들... 운운이 있다. 왜 독재아래 신음하는 우리 민중들을 꼭 '여성'으로, 섹슈얼한 표현으로 환원시켜야했을까? 이 때문에 운동권의 핵심이 되는 복학생들과 여학생회는 늘 대립을 하기 일쑤였다. 이 문제는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학생단체에서 여대, 여성의 비중이 늘면서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권위주의적인 학생운동에 대한 비판이 PD계열 학생회들로부터 제기되어 꾸준히 담론화되었다.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이들이 도리어 권위주의 노선을 들여오면 어쩌냐고. 심지어 과거에 영어를 사용하지 말아라[* 국내 운동권 말고도 이런 주장은 많았다. 실제로 에스페란토운동에 참여한 인물 중에도 영어, 불어 등 제국주의 국가의 언어를 쓰는데 반대해서 참여한 인물도 많았다.], 프로야구를 보지 말아라[* 프로야구를 만든 [wiki: "29만원" 그 분]의 목적이 정치에 눈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 등의 계율도 있었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수직적 구조도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타 학생 동아리에 비해 크게 두드러질만큼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사실상 권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흘러 오히려 이상한 물을 들여놓았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가령 집회 때 줄맞추어 앉게 한다고 파시즘이라고 한다거나...(집회 때 줄맞추어 앉는 것은 통행에도 좋고, 여러명이 앉기에도 좋다. 학교 운동회 해봤으면 누구나 당연히 아는 사실.) 하지만 이는 정파나 학교에 따라 다른지라(...) 특정 노래나 책(높은 확률로 미국 음악 또는 책) 보지 말게 한다던가 하는 괴랄한 계율은 존재 한다. 실제로 신입생들은 멋 모르고 불렀다가 선배들 한테 괜히 혼났다는 일화가 있다. 80년대 후반에는 과 학생회실에서 통기타를 치면서 존 레논의 'imagine'을 불렀다는 이유로 선배한테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게 왜 골때리냐면 존 레논의 imagine은 존 레논이 비틀즈 탈퇴하고 히피 무브먼트에 탐닉한 말기에 나온 곡이라서 엄숙주의와 정부 비판적인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존 레논 생존시기에는 반전시위 때 불렸던 노래일 정도. 그런데 이런 노래마저 금지하면 답이 없다.] 심지어는 서울대학교 96학번이 신입생일 무렵 마이클 잭슨의 춤을 장기자랑 때 췄다가 다 좋은데 양키 노래라 좀 싫다는 말을 들은 일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PD,NL 할 것 없이 이런 괴랄한 계율은 많이 사라졌다. ~~NL끼리 뭉쳐도 롤하고 힙합하고 다 한다 카더라~~

* 몇몇 파벌의 경우 친북, 종북성향이 지나치다는 말도 있다. 이에 관해선 NL 항목 참조.

총학생회

학생회의 태생자체가 당시 군사독재정권의 어용기구였던 학도호국단에 반대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연히도 90년대 초반까지 학생회는 학생운동을 위한 기구였다. 하지만 학생운동이 쇠퇴하면서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비운동권, 더 나아가 운동권을 반대하는 반운동권 세력들이 수권한 총학생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현재도 많은 학교에서 총학선거가 이루어지면 운동권 vs 비운동권 or 반운동권의 구도가 이루어지는듯.

아무리 대학생들이라지만 정치판은 정치판인 것인지 (...) 다양한 말들이 많다. 일부 지방사립대의 경우 조폭이 학생회에 관여하는 경우도 존재하며,~~정치깡패~~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항상 1년에 몇 곳에서는 금권선거나 부정선거 얘기가 나오기도 하며 네거티브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심지어 몇년간 선거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1] [2] [3]

현재

총학생회 항목에서 보듯이 입지가 많이 줄었다. 여기에 대해선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보는 쪽이 맞을 듯하다. 운동권이 주로 목적으로 삼는건 정권교체와 비판이었는데 한총련 사태이후 운동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나빠졌고(물론 이전에도 운동권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은 많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권교체가 되면서도 한 동안 고리타분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정작 학내 문제에 대해 별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게 가장 큰 원인이다.(물론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처럼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한 단체도 있었지만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암울했던 70~80년대에는 학생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었으나 글쎄, 지금 정부 정책을 운운하며 어디서 모이자고 하면 모일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즉 학생들이 운동권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등록금과 관련된 학교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학생들이 학생회에게 원하는 건 학교와 맞서싸워줄 학생의 대표인 학생회가 되어달라는 쪽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즉 정부나 정당이 아니라 당장 학생을 괴롭히는 학교랑 싸워달라는 것인데 이러한 요구랑은 달리 일부 운동권 학생회는 학교 측과 교섭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데 시원찮은 행동을 보였다.

이러니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운동권이란 그저 회장, 부회장 경력쌓아서 정치권에 진출하는데만 안달났단 이미지가 박혀버렸다. 예를 들면 지자체에서 시장이 횡포를 부리니까 잘 좀 막아달라고 시의원을 뽑았더니 나랏일이 어쩌니 저쩌네 하면서 정작 시장은 못 막는 거랑 비슷하다고 봐야겠다.

참고문헌

이재오[* 우리가 잘 아는 [새누리당]의 이재오가 맞다.], 해방후한국학생운동사, 형성사, 1984 이명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바오출판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