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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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인, 대통령, 독립운동가.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상하이에서 잠깐이나마 독립운동을 했고, 임시의정원의 의원을 지낸 경력이 있다. 개화사상가이자 조선의 쿨게이 top10에 속하는 윤치호의 조카였다.<ref>허무주의와 민족주의, 냉소주의 경향을 보인 윤치호와는 달리 윤보선은 합리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영국식 민주주의를 강조하였다.</ref>

개요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존재감 종범 쓰리탑을 달리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대통령 재직 시의 업적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지만 윤보선은 1955년~1960년에는 이승만을 반대하던 야당 지도자였고, 1963년부터 1979년까지는 선명 야당론을 강조하며 박정희에 반대하던 야당의 지도자였다.

본래 한민당 창당에 나섰다가 이승만을 지지하여, 한민당 당원 자격으로 1948년 서울시장, 1949년 상공부장관, 1952년 대한적십사사 회장 등을 지냈지만 1952년 이승만의 삼선개헌, 그리고 한민당 혐오에 염증을 느끼고 반 이승만으로 돌아서게 됐다. 신민당 총재를 역임했으며 훗날 이 신민당 총재 직은 김영삼을 거쳐서 김대중으로 넘어가게 된다.

어떤이들은 지역감정김머중 머통령이 창시한 줄 알지만 사실은 윤보선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유는 전라도 푸대접론을 DJ보다 먼저 4대 대통령 선거 때 들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

참고로 박정희의 군사정변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제2등공신이다. 1등공신은 물론 당시 국무총리인 장면, 당시 윤보선하고 장면간의 관계는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라고 할 정도로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민주당 정권 당시 장면의 신파가 다 해먹고 윤보선의 구파는 의도적으로 장면에 의하여 쩌리로 밀려나버렸기 때문인데, 이때 앙심을 품은 윤보선이 박정희의 쿠데타를 묵인해주면서

뭐 애초에 쿠데타 소식듣자마자 수녀원으로 도망치면서 직무유기를 한 것도 한거지만 무엇보다도 장면정권 당시 윤보선과 척을 지면서까지 자기 계파만 챙기고 다른 계파들은 의도적으로 소외시킨 장면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에 가깝다.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장면이 최소한 윤보선에게 떡고물좀 챙겨주고 일정 지분만 챙겨주었어도 박정희의 쿠데타는 미군이 알아서 진압해 주었겠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자기 혼자서 다 해쳐먹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구파를 배제시켜 윤보선하고 아예 척을 져버린걸 보면 어찌보면 516이 성공하게 된건 필연일지도 모른다.

물론 윤보선은 박정희를 이용해서 장면을 몰아낸다음에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재주는 박정희가 부리게 하고 떡고물은 본인이 챙겨가기 위해서 박정희의 쿠데타를 암묵적으로 묵인한 것, 윤보선 입장에서는 박정희를 이용해서 눈엣가시였던 장면을 족치고 덤으로 정권까지 장악하고자 했으나 63년경에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15만표 차이로 패하면서 윤보선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기타

1961년 체신부 장관 선우종원이 연하우표로 소와 버선을 우표로 발행하자 소는 丑이라서 尹씨 성을 비꼬는 것이고, 버선은 자기 이름 보선을 비꼬는 것이라며 체신부장관을 호출하여 갈궜다. 그 뒤로 1963년 1967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상논쟁이 터질때마다 박정희는 이 점을 이용 X버선이라고 윤보선을 욕했다고 한다. <references/> Template: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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