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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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USSR,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미국과 어깨를 견주었던 강력한 과거의 나라이자 미국과 함께 유일했던 세계 초강대국.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비교해보니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들의 전력엔 미치지 못했다고.
허나 일본이 부상하기 전까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었다. 물론 오일 쇼크로 인한 자원빨도 한몫했다.
그리고 오일쇼크가 끝나고 저유가가 시작되자 내리막을 걷는다.(지금 러시아도 비슷한 과정으로 경제가 좆망하는중이다.)
속 빈 강정이자 후진 봉건제적 국가인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립한 나라이다.
하지만 1991년에 붕괴와 함께 분열되었고, 현재 러시아가 대부분의 소련 영토를 차지했다.
탄생 배경
피의 일요일 사건
교과서에 나와있듯이 러시아는 전제 왕정제였고 크림전쟁, 러일전쟁 패배로 인해서
재정파탄과 황실의 위신 실추를 맛 보아야 했다. 하지만 황제들은 백성들의 민생고를 알아주지 않았고
몇몇 황제들의 개혁정책과 산업화 정책에도 불구, 여전히 후진적 봉건제 사회에 머물러 있었으며
선진국 진입을 위해 필수적인 도시 중산층 성장은 지지부진 했으며 대부분의 농민은 농노상태였다.
도시 노동자들 또한 농노제하에 주인니뮤가 귀족나으리 에서 자본가로 바뀐것에 불과한 상태였다.
1905년 1월 22일 기관차 공장 노동자 부당 해고에 대해 파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아직 차리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자애로우신 황제폐하께 사정을 이야기하면 해결해 주실거라고 믿고
결국 빵을 달라며 거리로 나섰으나 왕국측에선 총을 투다다당 쏘았으니 이게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참고로 포템킨 선상반란 사건도 동년에 일어났다.
제1차대전 참전
사실상 러시아 제국은 이미 속빈 강정에 빈사 상태였으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1차대전에 참전한다.
거기다가 황제는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무능했으며 스스로 사령관을 자처하고 나서며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게다가 황후또한 적국 독일 출신에다가 요승 라스푸틴을 전적으로 신뢰해 그의 말만 듣고 작전을 건의하고
또 황제는 이걸 고지 곧대로 작전에 반영하는 병크를 일으키고 말아먹는다.
이로서 황실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으며, 국민들의 민생고 또한 극에 달하고 군인들의 사기저하와 불만또한 극에 달한다.
러시아 2월혁명(3월혁명)
하지만 덩치값을 못하며 동맹군에게 쳐발렸고 국가 재정또한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
결국 배급제 하에서 밀가루와 우유 배급조차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부녀자들이 자녀들에게 줄 우유를 배급하라고 수도 페트로 그라드에
나서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파업 노동자들의 연대 공투로 발전하여 전쟁 중지를 요구하며 부녀자들의 시위는 혁명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이에 황제는 군부에 진압을 명령했으나 이미 러시아 인민들은 로마노프 왕조의 지배를 더이상 받아들이지 안으려 했고
결국 병사들 마저도 정부에 등을 돌려 인민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페트로그라드 노동사 병사 평의회 즉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결성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소비에트 자체가 러시아어로 평의회란 뜻이다.
황제 퇴위와 케렌스키 임시정부 수립
결국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책임을 통감하고 퇴위를 선언, 제위를 동생인 미하일 대공에게 양위하겠다고 발표하나,
미하일 대공이 제위 계승을 거부함으로서 러시아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러시아 정부의 수반은 케렌스키로서, 이 정권은 사회-사민주의자 즉 멘셰비키 연립 정부였다.
하지만 케렌스키 정부는 전쟁 계속을 선언함으로서, 민중의 지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레닌의 복귀
한편, 러시아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간파한 독일제국은, 전쟁 중지를 외치는 레닌에 주목하여
레닌의 귀국을 알선하면서, 전후 처리문제를 미리 협의한다. 독일제국은 레닌을 위해 특별 방탄열차까지 제공해
망명지 스위스 에서 레닌의 귀국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레닌이 러시아에 도착한날, 민중들은 환호했다.
러시아 10월혁명(볼셰비키 쿠데타)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함으로서 결국 경제 파탄을 야기하고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한편 반대급부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지지를 얻는다. 사실 볼셰비키란 말은 러시아어로 다수파란 의미인데,
실제론 수적으론 멘셰비키에게 밀렸다고 한다. 그러나 임정의 실정으로 점차 볼셰비키는 전국적 지지를 확보하게 이른다.
1917년 훗날 스탈린에게 암살당했다는 적군의 지도자, 레프트로츠키는 볼셰비키 혁명당원 1000명을 이끌고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리고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썩은 문짝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때 케렌스키는 여장을 하고 미 대사 부인으로
가장해 겨우 탈출에 성공, 미국에 망명해 트로츠키와 달리 천수를 누리다 갔다. 그리고 레닌은 4월 테제를 발표, 이것이 볼셰비키의
강령이 되었고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에로! 라는 구호대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로서 세계 최초로 마르크스 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캅카스 3개 공화국이 회원국인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 소비에트 연방이 결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나라를 뒤엎어버리자고 들고 일어선게 소비에트 혁명인데
왕 때려치고 군중에게 나라를 돌려주자 했으나 결과적으론 지들이 들어찼다... 어이무...
- 마! 프로레타리아 독재 모르나?!
적백내전
레닌은 사전약속대로 비난과 불이익을 각오하고 연합국에서 탈퇴, 전격적으로 독일과 강화하여 방대한 제정 러시아의 영토를 상실한다.
하지만 레닌도 레닌대로의 구상으로, 독일은 어차피 곧 연합국에게 망할나라이니 훗날을 도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하루아침에 천명의 볼셰비키 따위에게 자신들의 아름다운 러시아가 빨생이 세상이 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구귀족과 러시아 제국 군인들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며 백군을 결성하고 말았으며 러시아가 막판에 통수를 친 얌체짓과, 세계최초의 공산국가 수립이라는 두려움에 자들자들한 승전 자본주의 세력은,
간섭군을 결성하여 백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내침김에 직접 참전도 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인데 영국은 전함덕후 답게 전함을 보내기도 했고,
좃본은 연해주로 쳐들어가 군사를 진주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국방장관 레프 트로츠키가 적군을 결성하여 뜻있는 제정 러시아 시절 장교들까지 받아들이기도 했고 결국 이 와중에 니콜라이 2세 가족은
백군이 이들을 구출하여 제정을 복귀시키려 한다는 정보때문에 처형시킨뒤 소각하고 파묻어 버렸다. 시신은 1990년대 초에 옐친시기에 겨우
발굴 되었고 그 결과 생존한 왕자와 공주라고 주장하던 사기꾼들을 데꿀멍 시켰으며, 나라말아먹은 암군이지만 최후가 비참하다고 황제 일가족은
정교회 성인으로 시성되기도 하였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간섭군과 백군까지 쳐부신 볼셰비키들은 몽골까지 접수하여 사상 2번째 공산국가겸 소련 첫번째 위성국을 만들고
1922년에 정식으로 소비에트 연방 체제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역사
레닌 시기
쏘련의 국부
쏘오오련을 건국했다 이보다 더한 업적이 있을까? 아, 물론 저들입장에서
업적으로 신경제정책 등과 1차 대전 전쟁 포기, 그리고 적백내전 승리 등이 있다
신경제정책, NEP
신경제정책, 즉 NEP는 러시아어로 НЭП,역시 네프라고 불렀는데, 소련 수립이후 가혹한 공산주의 전시 경제정책을 체택,
모든 공업의 국유화, 모든 사업장의 국유화, 농민들의 수확물 사적처분 금지와 강제징발, 사적 상거래 금지와 화폐제도 폐지(!)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정책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당연히 이런 순수 공산주의 이론에 입각한
경제정책이 성공할리가 없었고 부작용만 잔뜩 일어나자 1921년 레닌이 신 경제정책을 발표하고 파탄난 국가 경제를 수습하기 위해
자본주의 요소를 일정부분 받아들인 일련의 조치를 의미한다. 식량 징발 제도를 중지하고, 잉여 농산물의 자유 판매, 사기업의 인정,
국영 기업의 부흥, 외국 자본의 도입 등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 화폐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이로서 소련은 1925년에 1차대전
이전 수준까지 경제력을 회복시키기에 이르렀고, 이 결과 비록 가난한 소농들은 불리할지언정 토지를 소유한 부농들은 유리했고,
소련교역량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사기업 활동이 번성하였다. 이로서 많은 부자와 부농이 출연하였고
소련 정부도 이 시기에는 이러한 부자와 부농들을 눈 감아 주기에 이른다. 이런 부농들을 네프맨이라 불렀다.
1차대전의 포기
레닌과 볼셰비키들의 공약은 1차대전 중지였으므로 이 공약을 지킨다. 이로서 연합군에서 러시아가 단독으로 무단 이탈하게 되었고
그 결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1918년 체결되었다. 독일제국 측은 소련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이로서 소비에트 러시아는 전승국 대우를 사실상 포기한것과 다를바 없게 되었다.
조약 결과 구 러시아 제국령인 핀란드, 폴란드, 발트3국, 우크리이나, 조지아 가 독일령으로 들어간다.
사실 레닌과 볼셰비키들의 구상은, 조약이 체결된 해를 보면 짐작할수 있듯이, 어차피 독일 제국은 망할 나라이고, 막판에 무단 이탈했더라도,
소련이 러시아 제국의 계승국인 만큼 연합국으로서 전승국 대우를 받아, 구 독일령 영토들을 다시 편입할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안다면, 서유럽이나 독일에도 공산혁명이 전파되어, 이 조약이 무효가 될것을 기대했을수도 있다. 실제로 독일은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실상은 소련의 기대와 달리 사민주의자들이 주축이 되어 우파와 연합한 연립정부 형태였다.
그러나 최초의 공산국가인 소련을 달가워 할리 리가 없는 자본주의 승전 연합국은, 소련의 일방적인 조약 파기 선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당시 독일령으로 들어갔던 구 러시아 제국 영토에 대한 소련의 클레임은 모조리 묵살되고 동유럽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하였다.
이로서 폴란드 분할이후 멸망했던 폴란드가 제2공화국으로 부활했고, 발트3국, 핀란드가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적백내전(러시아 내전)의 승리
한편 1차대전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나 싶었지만, 제정 러시아를 지지하는 구 귀족들과 구 제정 장교들,
우크라이나 독립운동가들과 무정부주의자들 등이 소련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고 소련은 내전상황에 빠진다.
거기에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에 대한 두려움과 공산혁명의 전파를 우려한 서방 연합국들은 간섭군을 파견한다.
초반엔 물적으로도 밀렸다. 사실상 내전 초반 소비에트 정부가 지배하던 지역은 유럽 러시아 정도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방장관 레프 트로츠키가 뜻이 있는 구 제정 장교들 까지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공산당 입당또한 허가하여 전문성을 높히고
도시 노동자를 혁명의 주체요 농민을 반동으로 보아 신뢰하지 않던 관행을 깨고 전국적 징병제를 실시해 병력을 500만까지 불려놓았다.
제정 장교들은 황실 뒤엎은 빨갱이 놈들 밑에서 일하기 싫다고 은퇴했더니 백군이라는 새끼들이 꽁무니에 서방놈들을 줄줄히 처달고 들어오자
오히려 반란군 쒜끼들과 침략자들한테서 러시아를 지키자며 재입대를 했다.
반면 백군이나 간섭군은 온갖 이해관계를 가진 잡다한 집단들이 소련 싫다는 거 하나만 보고 모인 어중이 떠중이 들이고, 간섭 연합국도
다들 꿍꿍이 속이 달라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결국 1921년에 사실상 적군이 백군과 간섭군을 격파하며 사실상 승리하였고
1922년 외몽고까지 점령하여 세계 2번째 공산국가인 몽골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1923년 연해주까지 탈환하면서 완전히 내전을 끝낸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 부농이나 민족주의 세력등 산발적 봉기나 저항은 있었고 이후 스탈린 대숙청의 계기가 되었다.
10월 태제
레닌은 소련이 세계의 파쇼 식민제국에게 핍박받는 피압박 식민대중의 해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 덕에 한국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무되어
1920년대에 고려 공산당이 창당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임정에선 독립운동가 모씨가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독립자금을
자기 계파에게 딲아썼다가 딱 걸려서 일대 파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결국 킬구선생이 소련에게 지원받은 자금을 왜 공산당끼리만
나눠쓰냐며 격분하여 운반책이 처단당하는 사태가 터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결국 임시정부한테 돈 안주고 지들끼리만 돌려썻다고
오늘날 까지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두고두고 까이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근데 이건 우파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도 할말은 있는게, 결국 세상에 공산주의자들 끼리도 10원 한장이라도 대가없이 움직이지 않기때매
이렇게 돈 받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세력들은 소련 코민테른과 나아가 크렘린의 지도(라고 쓰고 사실상 지시, 조종)을 받는 위키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영향및 평가
이러한 업적들이 결국 후세에 특히 스탈린 시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불평등했던 러시아 제국 말의 현실을 극복시켜 평-등한 공산주의 락원을 이룩했다... 물론 현실은 그정도까진 아니고...
러시아 제국보다는 살만한 나라를 만들었다.
독재자 시기
이오시프 스탈린,
스탈린은 레프 트로츠키 처럼 다른 혁명가들 처럼 가명이나 필명중 하나였다. 우리말로 치면 강철남
본명은 이오시프 주가시 빌리이다.
병신같은 농업국인 러시아를 미국과 맞짱뜰수 있는 초강대국으로 올려놓음과 동시에 세계의 절반을 빨간색으로 몰들인 사나이이다.
조지아 출신의 인간백정으로 조지아인들중 가장 많은 러시아인들을 죽인 남자라고 한다. 물론 우크라이나나 폴란드 인도
많이 조졌다. 더불어 독일인도 많이 죽이고 하여간 사람을 많이 죽인걸로 유명하다.
5개년 계획의 수립
중공업 등 여러 방면에서 질적 향상을 위해 특히 군비강화에 노력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종심작전 이론과 그것을 뒷받침 하기 위해 군 현대화 특히 전차와 같은 기동전력 투자를 위해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중공업 화에 박차를 가했다.
사실 러시아와 그 후신인 소련은 스탈린 집권 초까지만 해도 후진 농업국가였기에, 공산주의 이론상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이룩되어야 공산주의로 제대로 이행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본디 강대국에 광활한 국토를 지닌 소련은 채 18년도 되지 않아 소련을 세계 2위의 공업
대국으로 올려 놓았다. 이로서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소련의 초석을 닦고 결과적으로 2차대전때
독소전쟁의 준비를 마치고 결국 승리로 이끄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물론 그 대가로 소련 농업을 갈아넣었고 이건 소련 망할때까지 농업이 ㅄ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무리한 집단화로 농업이 얼마나 좆병신이 됐는지는 당시 우크라이나만 봐도 답 나온다. 시발 농사가 안되서 사람 살가죽 벗겨다 먹을 정도면 더 말이 필요하냐
그덕에 농촌을 조지던 무렵부터 이미 대숙청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여간 이 덕에 1930년대 서방
전문가들은 자기들이 예상하던 것과 달리 소련 인구가 엥? 2천만이 비네?? 하며 어리둥절했다.
이것이 스탈린이 당시 소련 밑에 있던 국민들 중 2000만을 학살했다는 이야기이다.
하여간 이 결과로 소련 농업은 각자 자기가 먹으려고 심는 텃밭은 개인소유를 인정했는데. 이것이 농업생산량의 다수를 차지하는
막장 상태로 전락한다. 물론 이걸로도 모자라서 미국한테 곡물 수입해 먹이긴 했지만 말이다.
몰로토프-리펜도르프 조약
소련에 대한 연합국의 경계와 견제는 대단하였다. 오죽하면 이때문에 체임벌린 영국 수상의 외교적 오판에 기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독일보다 소련의 견제와 팽창을 막는것이 더 시급한 현안이며 소련이 독일보다 더큰 위협으로 느껴졌기에, 은근슬쩍
독일편을 들어 줌으로서 소련의 확장을 저지하고 독일로 하여금 소련을 견제시킨다는 일종의 이이제의 전략 이었다.
한편 일찍이 소련은 전간기에 영불에게 대독 견제를 위한 국제협력을 제안 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거부당했다.
뿐만 아니라 초기엔 소련의 국제연맹 가입또한 거절되었다. 나중에 가입하고 상임이사국까지 되지만, 결국 탈퇴했다.
적백 내전때 간섭군 파병에 이어 이처럼 소련에 대한 서방의 견제와 고립이 노골화 되자 이에 소련은 위기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서방에 대한 불심과 고립으로 인해서 서로를 미친듯이 까던 독일에 접근 1939년 개전직전에
독일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는 통수를 치게 된다. 이에 따라 폴란드 침공때 폴란드 동부를 받아냈고 발트3국 합병과
루마니아로 부터 몰다비아 등의 영토를 합병해 뜯어내는데 독일의 묵인을 받게 된다.
독소전쟁 승리
독소전쟁 항목 참조, 비록 초반에 그럴리가 없다! 공격하지 말라고 뻘짓만 일삼다 파죽지세로 나치 독일에게 유럽 러시아 영토가
털리자 에라이 모르겠다며 별장에 쳐박혀 술이나 퍼먹다 몰로토브등 자기 부하들이 자신을 쫓아내러 온건가 싶어서 지리기도 하는 추태를 보였지만
히틀러가 그나마 개념있는 병신에서 상또라이 병신으로 퇴화한 것과 달리 점차 개념인으로 진화하여 결국 독소전쟁을 승리한다.
스탈린은 정치장교의 권한을 점차 축소하여 찬양 고무활동만을 맡겼으며 반면 점차적으로 일선 지휘관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재량권을 전폭적으로 부여했다. 가면갈수록 자기가 모든것을 다 해먹겠다고 고집하다 대차게 말아머은 히틀러나, 초반에 장군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소련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보나파르티즘에 대한 공포에 의한 군부 대숙청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초반에 군머 돌아가는꼴 쥐뿔도 모르면서 대규모 군사작전에 지 꼴리는대로 개입했다가 몇번 시원하게 말아먹긴 했지만 지가 끼어봤자 좋을거 없다는걸 알고나선
당시 지휘력 만렙이던 장성들에게 모든걸 맡기고 자기는 전시행정에 대한 업무를 집중적으로 처리한다.
여담으로 아들 두명이 있었는데 모조리 참전하여 전사하는 나름의 모범을 보였다. 특히 첫째는 비행사인데 술주쟁 뱅이라 평판이 나빠서
실종되서 이놈 도망갔네 ㅉㅉ 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최근에 시신이 발굴되어 영예로운 전사자가 되었다.
반면 둘째는 중위와 원수가 같냐며 포로교환을 거절, 며느리까지 수용소에 집어넣어 버렸다. 하지만 카틴 학살을 듣고 북끄러운지를
알게된 둘째 아들은 수용소에서 자살했다는 썰이 있다.
말년의 노망끼가 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농락하며 독일의 거의 절반 폴란드의 절반을 받아내고 영토를 늘렸고
동유럽을 공산화 시키며 2천만 피값을 확실히 받아내었다.
공산주의 확대
2차대전에서 유럽전선에서 연합국이 승리하자 열린 얄타 회담의 결과는, 점령국에 점령국 국민들이 자기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수 있다고
선언한바, 즉 정치체제를 민주적 국민투표에 붙혀 그 나라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칠의 우려와 달리 티무르 이후 사상 최강의
절름발이,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대서양이 있으니 괞찮다며 스탈린에게 허허실실 유리하게 해주고 말았고, 그 결과 소련이 점령한 나라들은
모조리 공산화 되었다. 더불어 발트 3국의 독립과 폴란드 동부영토 반환또한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안습. 더불어 북한까지 소련이 먹게 되었다.
이로서 공산국가라 하면 딸랑 소련과 몽골 2나라에 불과했다가 결국 세계의 절반을 뻘건 색으로 물들이는 쾌거를 이룩한다. 물론 이건
히틀러가 쌍똘아이 짓으로 멸망을 자초하고 소련인민 2천만을 2차대전때 갈아넣은 덕이긴 하다.
반면 병신짓
그러면서도 대규모 숙청을 벌여 군을 망쳐 자일리톨 껌을 못 씹어먹는 굴욕을 연출한 바 있다.
이후 독일 콧수염 새끼와 불편한 동거를 하다 탱크로 머가리를 쳐맞은 바 있다. 결국 지옥으로 퇴거시켰지만...
대외정책으론 한국전쟁 북한지원 , 베트남 전쟁 베트콩 지원 등 알고보면 이 사람이 흑막인게 많다.
- 베트남전쟁이 60년대에 시작이고 스탈린이 53년에 죽었는데 지옥에서 지원했냐?
- 그리고 625도 김일성이 하도 승인해달라고해서 어쩔수없이 해준거지 스탈린은 탐탁치 않아했다.
- 실제로 지원도 좆도 안해줬고 전쟁에 참여한거도 중공군임 스탈린이 병신인건 맞지만 안한일까지 몰아가진 말자
- 한국전쟁 직전과 직후, 김성주가 총 두번을 스탈린에게 매달려 찡찡댔는데, 직전에는 승인을 해주고 직후에는 승인을 해주지않았다.
- 이는 김성주와 북조선이 탐탁치않은것이지, 한반도에 들어선 미군정이 신경안쓰일리가없음.
- 좆도 안해줬다고 주장하는 그 기준을 모르겠지만 한반도가 반틈 쑥대밭이 되고 산골짜기마다 공비들을 심어둘 정도면 신경써준거다.
- 그럼 우린 좆만큼도 지원못받은 그 허약체질 북한군에게만 부산까지 밀렸나? 좆망해서 그뒤로는 사린거지.
- 외교상 반도의 의미는 매우큰데 북한까지 미국이 낼름하면 위험하지. 중공군의 개입도 그 이유에서고.
- 오죽 급했으면 만취부대에 농기구들려서 인해전술 때렸겠냐? 안한건 안했다고해야하지만 슬쩍묻어가진말자.
경제적으로는 이때 제일 고도성장기였다. 보잘것없는 신생국가 소-련이 천조국과 맞장을 뜰수 있을정도의 대등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래서 아직도 로씨야 꼰대들이나 스킨헤드들<ref>스킨헤드는 전형적인 극우집단인데 공산주의자인 이놈을 빤다... 아이러니...</ref>, 공산 빨갱이들은 레닌보다도 더 추켜세운다 카더라
개인담
변태였다. 마누라에게 3P를 당당히 제안했고 그 결과 마누라를 울렸다.
의심이 많고 권모술수와 정치의 달인이였다. 음험한 정치꾼으로서 결국 그거때문에 레닌에게 미움받아 후계자 자리에서 내쳐졌으나
일국 사회주의 론을 주장하며 극좌 모험주의자인 레프트로츠키를 들어내고 결국 권좌를 잡아버렸다.
히틀러와 달리 행정업무를 하나하나 자기가 챙겼다고 한다. 그 덕에 밑에 있는 사람들 또한 죽어났다.
핀란드에서 죽쒔다고 친구겸 원수를 갈구다가 머가리에 접시를 맞을뻔한 적도 있다.
역시 친구이자 원수랑 뱃놀이 하다가 장남으로 너 서방 스파이 아니냐? 라고 했다가 뺨을 쳐 맞기도 했다.
역시나 엄청난 애주가로 부하들에게 술을 퍼먹여 부하들의 평균수명을 깍아내리는데 일조하였다.
다음 번 서기장이 되는 후르쇼프가 우크라이나 사람이란 이유로 그 쪼그려 앉아서 다리를 쫙쫙 펴야하는 고난도 코사크 댄스를 술자리에서
직접 추게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이건 후르쇼프가 자기 회고록에서 직접 인증한것이다.
젊은시절 엄청난 미남이었다고 한다. 정작 자신은 외모 가꾸는데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나름 효자였다. 엄마가 바란대로 신학교에 진학했다 중도에 때려치긴 하지만. 4살때 아빠에게 맞아죽을뻔한 엄마를 구한적도 있다. 경찰을 불러서...
자식들에겐 냉정했다고 한다. 결국 아들이 포로로 잡히자 자기가 명령한대로 며느리를 수용소로 보내버리고 파울루스 원수와 포로 교환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때 한말이 중위랑 원수랑 교환하자고? 미친거 아니냐 니들 ㅋㅋ 대충 이랬다고 한다. 그런데 뒤로는 아들을 걱정하긴 했다고 한다.
그 반동으로 스딸린의 딸내미가 아빠가 죽고나서 미국에 망명해서 아빠를 까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호치민은 경계했고 모택동은 마가린 공산주의라고 깠으며 김일성은 마음에 들어하는 해괴한 사람보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흐루시초프 시기
위 항목의 독재자의 만행을 죄다밝혀냄
고르바초프 다음으로 리버럴한 지도자였다.
소련역사상 고르비 다음으로 제일 리버럴한 시대 (어느정도 숨통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병신같은 생물학에 낚여서 옥수수덕후가 되었고, 덕질하는거 꼴보기 싫다고 다른 소련놈들이 쫓아냈다.
로켓과 미사일 옥수수밖에 모르던 바보 ㅠㅠ
로켓과 미사일만 알아서 미사일 전차같은 뻘짓만 해서 기존의 중전차를 죽여버렸다.
명언은 국련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을 향해서 '당신들을 모두 파뭍어버리겠다.'고 말한걸로 유명하다.
브레즈네프 시기
스탈린 급은 아니지만 다시 숨통이 강화되었다. 그래도 가장 먹고살기 좋았던 시기이며 소련 경제성장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오일쇼크로 인한 고유가 빨이긴 하지만, 나름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에 꿀리지 않아 진정한 공산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목에 나름 힘주던 시기.
후르쇼프가 병신짓을 일삼자 빡친 정치회의 노친네들이 의회 쿠데타로 엎어버리곤 후르쇼프를 손자나 보러 보네버리자 남은 서기장 자리를
낼름 먹게된이가 브레즈네프 였다.
당연하지만 개인우상화는 없었긴 한데, 대신 훈장을 스스로에게 미친듯이 수여하였다.
사실 후르쇼프는 정치장교로서 나름 2차대전 그것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유공자이자 2차대전 영웅이었는데, 브레즈네프는 2차머전 기간 그런게 없어서 군 경력면에선 존내 허접했다.
그거때매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찼던지 자기 스스로에게 훈장을 주고 부하들도 훈장을 경쟁적으로 주었다. 결국 고르비 시대때 젤 큰거 하나가 취소되었다.
그래도 초반에는 나름 잘했고, 말년에도 노망이 나서 그렇지, 이 시기 살아본 사람들은 이때가 제일 좋았다고 한다. 근데 알고보면 속으로는 썩어서 곪고 있었음.
사실 소련의 국력과 경제가 정점을 찍었다가 도로 내려오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고유가 꿀 빨던게 이 양반 후반기에 도로 저유가로 망함.
거기다가 이 영감 말년에 터진게 바로 소련판 베트남이자 그나마 먹고살만하던 소련에게 체르노빌과 함께 쌍타를 먹였다는 소련-아프간 전쟁이었다.
브레즈네프시대의 외교 정책은, 공산진영에 자본주의의 자짜만 꺼내면 그냥 땅크를 보내 머가릴 다 날려버리겠다로 유명한다. 이것이 바로 브레즈네프 독트린이다.
이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근거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 사건때 저놈이 땅끄로 밀어버림 (체코의 전낙지)
브레즈네프 왈 : 체코는... 그... 무기를 들고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안드로포프 시기
고르바초프보다는 보수적이였지만 상당히 개혁적인 정책을 많이 폈다. (물론 존나똑똑했다. 고르바초프나 무능력자랑 비교는 ㄴㄴ)
병으로 뒈지지만 않았어도 고르바초프가 집권해서 급진책을 남발해 쏘오오련이 붕괴되는 일도 없었을것이다. (물론 진짜 원흉은 고르바초프가 아니긴하지만...
소련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히 개혁개방을 추친했을 확률이 높음
그러나 서기장 먹고 1년만에 병사한다.
체르넨코 시기
브레즈네프 최측근으로 출세한사내.
반 브레즈네프 파 출신인 안드로포프가 집권하자 안습한 처지가 되나 했는데, 1년만에 안드로프가 죽자
서기장을 먹게 되었다. 나름 개혁정책도 하고 중국과 무역도 다시 트려는 등 노력했으나 또 1년만에 죽는다.
이 덕분에 정치국 영감쟁이들은 다음 서기장은 제발 오래가게 쫌 젊은놈좀 세우자는데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임된 젊은놈이 돌풍을 일으키는데 그 초신성이 바로...
고르바초프 시기
소련 역대 서기장중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하게 러시아 혁명 이후에 태어난 인물
개혁 개방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여 이 덕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정책은 개혁개방 즉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와 시네트라 독트린을 통한 동구권의 자유화와 말타협정을 통해 미국과 냉전을 공식적으로 끝낸것 등이 있었다.
그런데 말타에서 같이 합의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아무상도 못받았다 안습.
물론 소련을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와 유사한 공산주의 국가로 개혁하려고 한거지 기존의 소련의 모든것을 무너트려서 지금 러시아같은 개거지 후진국으로 운지시킬 생각은 없었다.
훗날 회고하기로는, 자신이 원한 개혁 개방된 소련의 모습은 오늘날의 중국과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망할 군중의 지도자가 나타나서 다 갈아엎어졌고 그 동안 소련이 일군 업적들은 러시아 연방 시기에 들어서
현재 경제 침체기에 빠지는 등 삐그덕 거리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해체
결국 해체되었다. 위에 설명한 인물이 등장한 시기에
저러한 정책들이 주변 국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결과적으로 몇몇개국 빼고는 전부 떨어져나가서
제 3 세계를 이루었다.<ref>사족을 달자면, 보리스 옐친이 연방 해체를 주장하던 시점에서 국민투표로는 반대쪽이 더 표가 많았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러시아에 가져오겠다면서 첫 스타트부터 반민주적으로 하신 옐친니뮤... 병신새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