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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وهابية (Wahhābiyy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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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슬람교의 종파중 하나. 정확히 말하면 수니파의 한 분파이며, 번역에 따라 '와하비야파'라고도 한다.

이슬람교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인 종파이자 주류 종파 중 하나. 이슬람이 아닌 다른 문화나 사상들을 극도로 배격하며 지나치게 원리주의적인 태도로 전근대적인 샤리아 적용만을 추구하는 극단적 종파이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서방 유럽 역사 속에서의 사보나롤라장 칼뱅의 신정통치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니, 민주적인 체제 자체도 부정한다는 점에선 이들을 뛰어넘었다고 봐도 될 듯.

18세기 신학자였던 무함마드 빈 압드 알-와하브(محمد بن عبد الوهابا، 1792~1703)가 주장했다. 바스라에서 공부하며 당시 부패한 이슬람교에 염증을 느낀 그는 '쿠란의 본위로, 무함마드가 있었던 그 시대로 돌아가자'며 이슬람 정화운동을 시작한다.

사실 와하브가 이슬람의 종교적 관념에 매우 충실한 것과 별도로 당시에 인기있는 석학은 아니었던 지라 그냥 묻혀버릴 위기에 있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조인 이븐 사우드가 와하브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운명은 달라졌다. 사우드는 사상적 명분과 아랍 부족들을 복속시킨 후 내세울 강력한 체제가 필요했고, 와하브는 자신의 주장을 지원해줄 세력이 필요했으니 이들끼리 강력한 연합이 구성된다.

성향

와하브는 알라는 오직 한분이시며 알라의 말씀인 쿠란을 따를 것을 주장한다.(توحيد, 타우히드) 알라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교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슬람을 내세우는 부패한 권력들까지도 우상숭배자(شرك‎, 시르크)로 간주했다. 즉 당시 아라비아의 권력을 타파할 대상으로 봤던 셈. 당연히 기존 권력과의 충돌이 있었고, 와하브 운동으로 건설된 와하브 왕국이 결국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깨졌으나 끈질긴 투쟁 끝에 1927년 독립을 따내고, 이것이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이슬람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도 역시 시르크로 간주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이란~~그리고 IS~~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이 서방의 민주주의와 이슬람주의를 적절히 섞어서 법을 구성하기 때문에[* 당장 터키와 인도네시아만 해도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화국에 대륙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집트와 알제리 등 몇몇 아랍/북아프리카 국가들도 국교만 이슬람교이고 샤리아가 아닌 대륙법을 적용한 국가들이 있다. 같은 이슬람교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은 영미법이 적용된다.] 와하비즘에 의하면 이들도 타파해야할 대상(...)이 된다. 결국 주장의 과격성때문에 와하비즘이 널리 퍼져나가지는 못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란시아파 못지 않은 피도 눈물도 없는 종교법을 집행하면서 한술 더 떠 비무슬림에 대한 맹렬한 증오심까지 가지고 있기에[* 특히 백인과 유대인] 와하브가 국교이다시피 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방송에 매일매일 유대인을 죽이자고 외친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뽑아내는 번역판 쿠란에는 "적"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된 곳에 유대인이라고 직접적으로 명시를 해둔다.[*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편지쓰면 준다는 그 쿠란인데, 이런 자의적인 주석때문에 쿠란을 왜곡했다고 한국 무슬림들로부터 욕을 엄청 먹고 있다. 근데 워낙 이쪽 환경이 열악해서 재번역작업은 힘든 모양.]

근데 꾸란은 번역자체가 원래 금지고 거기에 주석을 다는 것 자체가 꾸란 자체에 위배되는 행동이라 사실 시아파랑 수니파에게서 이단이라고 욕먹고 있긴 하다. 그런데 시아파는 남말할 처지가 안 되고 수니파는 구심점이 없어 린치가 불가능하다.~~ 성지수호자를 어떻게 린치해~~

사상적 기원: 한발리 학파

와하브파가 율법에 충실한 이유는 꽤 단순하다. 그 사상적 근원이 수니파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한발리 학파기 때문. 수니파에서는 샤리아, 즉 신법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문제에 있어 몇 가지 법학 해석을 내놓았고, 최종적으로 정착한 4가지 법학파가 있다. 하나피 학파[* 중앙아시아,터키 등지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중세시대에는 조금이지만 술을 먹어도 좋다는 해석까지 내놓았을 정도로 관용적인 학파다], 말리키 학파[* 아프리카에 주로 분포해 있다.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 이슬람은 죄다 말리키 학파다.], 샤피이 학파[*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동남아시아에서 우세하다.], 그리고 한발리 학파. 가장 관용적인 학파는 하나피 학파이고 메카의 전통에 가장 충실한 학파는 말리키 학파, 하나피 학파와 말리키 학파 사이에서 가장 중용을 잘 잡은 학파는 샤피이 학파. 그리고 그리고 가장 율법에 충실한 건 한발리 학파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제외하고는 한발리 학파를 따르는 지역은 없다.

한발리 학파의 시조 아흐마드 빈 한발(أحمد بن حنبل)은 사실 법학자가 아니라 무함마드 언행록(하디스) 전승 학자였다. 한발리는 무함마드의 모범을 따라 살고자 하디스를 철저하게 연구하려고 했고, 덕분에 수많은 하디스를 모아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사고방식이 좀 꼬여서…. 지나칠 정도로 원리주의적인 극단 근본주의자가 된것이 문제였다.

여기서 보듯이 한발리 학파 법학자들은 다른 법학자들과 비교해서도 이슬람의 가치관에 매우 극단적으로 충실했다. 한발리 학파의 율법 해석은 사실 이슬람 경전을 기반으로 하면 틀린 게 아니다. 문제는 그게 이슬람의 근대화 및 세속 국가 건설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그 때문에 이슬람의 역사는 외부적인 팽창과 더불어 이런 근본주의자들과의 투쟁의 역사를 겸하고 있으며, 후기에 이르면 종교 지도자인 칼리프가 아닌 세속 지도자인 술탄이 주요 실권자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오스만 제국은 서방과의 교류 필요성도 있어서 대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세속적인 국가를 지향했고, 종교 근본주의자들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발리 학파도 관용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한발리 학파가 좀 완화되어서가 아니라 당시 부패한 권력층과 결탁하다 보니 그런 것. 당연히 와하브는 이를 좋게 볼리가 없었다. [* 와하비즘의 본산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 부패의 전형이 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현황

다만 오늘날 정작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세속화, 서구화의 정점[* 다만 오해하면 안될 것이, 오로지 기득권층+왕가 만이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숨도 못 쉴 정도로 억압적인 중세적 샤리아 통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가끔 알음알음 봐주는 경우도 있다지만 여전히 인권 그런거 없다 수준임을 잊지 말자.]을 걷고 있어, 정작 와하브파의 지도층인 왕족들은 샤리아 그게 뭐임? 하면서 간통도 저지르고 도 진탕 먹는다. 물론 일반 백성이 그 짓하면 채찍을 맞는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거기다 뭐만 터지면 꼭 인권관련해서 세계로 보도되는 판국이다.][* 일례로 참수형을 집행하던 사우디의 한 망나니는 금지된 술까지 마셔가며 사람 죽이는 일을 한다고 괴로워했는데 무트와 (종교경찰)에게 음주로 걸리자 직업을 밝히며 "나 대신 댁들이 참수할 수 있느냐?" 라고 하자 무트와조차도 뭐라고 못하고 풀어준 실화가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하는 교포의 증언에 의하면 눈치껏 집에서 틀어박혀 술을 먹으면 그만이고 돈 좀 있으면 술마시는 걸 뭐라고 하지 않는 이웃나라 바레인에 가서 신나게 마시고 거기서 술 좀 깬 채로 오는 이들도 많다. 그것도 아니면 좀 비싸긴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고급 호텔에서 외국인들과 마시는 것도 막진 않는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도 대추야자술이라든지 옛부터 전해지는 술은 마시는 술도 많이 마신다. 거주하는 교포에 의하면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가끔 집에서 빚은 술을 마시라고 대접하는 경우가 있어서 여기라고 술을 안 마시는 게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즉 사우드 왕가도 적당히 드러내지 않게 마시면 된다는 대충주의(...)를 보여준다. 물론 보수적인 와하브 학자들이 반발하지만 그들도 왕가가 이래놓고 실컷 마셔라부어라하는 걸 대놓고 뭐라고 하진 못하니 끙끙거릴 뿐. 다만 보란 듯이 길거리에서 취한 꼴을 보이다간 그땐 혼쭐난다. 더불어 대놓고 술을 가져오는 게 공항에서 걸리면 그것도 외국인도 용서하지 않는데 2011년 어느 한국인이 팩소주를 상자째로 가지고 왔다가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에서 걸렸는데 이걸 술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당연히 하나만 뜯고 냄새를 맡아본 공항 경찰이 아무리 봐도 술냄새라고 화내자 그 자리에서 마시면서 술 아니라고 객기를 부리다가 잡혀들어가서 회초리로 맞고 추방당한 실화가 있다.

정확히는 국내활동에 초점을 맞춘 테러활동 및 테러조직은 보안군을 동원해 철저히 개발살을 내지만, 해외 테러조직으로의 인적, 물적 자원 유입은 묵인하거나 오히려 장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 9.11 테러 인원중 80%가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란 걸 보면 알 수 있고 오사마 빈 라덴 또한 와하브파다. 실제로 테러리스트의 50% 정도는 이 와하브파라고 보면 된다. 덕분에 사우드 왕가에 대한 테러가 거의 없다[* 딱 하나 1975년 파이잘 왕이 조카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다. 파이잘 왕은 보수파였으나 여학교도 허락하고 여성들 사회진출에 개방적인 등 그나마 개방적인 정책을 펼쳐 지금까지도 와하브가 배후에 있는 게 아닌가 말이 많다]. 다만 이건 앞서도 서술했듯 이런 유화책과 함께 철저한 소탕방침에 의한 것이 크다.

왕가입장에서도 손을 쓰기 애매한 것이, 와하비즘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이념과 같은 위치이기 때문에 함부로 손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종교계의 반발, 최악의 경우는 이란식 종교혁명의 가능성까지도 있는 판이니, 와하비즘 자체는 장려하되 그 공격성을 최대로 바깥으로 돌리는 모양새이다. 더 골때리는건 종교계의 반발은 둘째치더라도 본격적인 세속화를 추구했다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사우디 왕가 자체가 뒤집혀버릴 판이라는 것. 왕가 입장에서는 종교를 최대한 자기편으로 끌여들여 '이슬람의 수호자' 타이틀을 ~~돈으로 사서라도~~ 얻어내 그나마 통치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에 가깝다. 때문에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와하비즘은 상당히 변질되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종교계, 그리고 전국에 깔려있는 종교학교들이 성전을 찬양[* 해외에서 지하드에 참가할 것을 아주 대놓고 장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어느정도 어쩔 수 없는게, 정규교육의 대부분이 종교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교육체계의 특성상 청년층의 실업률이 굉장히 높다. 거의 선심성에 가까운 복지정책…이라기 보단 현금살포로 불만을 억누르고는 있지만 이 실업계층의 압력을 어떤식으로든 해소하지 않으면 큰 사회불안요소, 즉 왕가와 왕가의 돈을 받아먹는 종교계에 위협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니.]하면서도 왕가에 대한 도전은 무엄한 것으로 치부하는 거의 어용종교에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9.11 테러 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우린 그거랑 관계없다.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은 해두었지만[*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미국의 주요 맹방이기도 하고.] 국내적으론 테러리스트 찬양, 신의 천벌이 내려졌다고 좋아하는 분위기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 이 때문에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에서 음모론을 제시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 산 돈으로 테러리스트를 훈련시켜 미국인들이 죽어나간 꼴이니….

물론 이 친구들보다 더 답이 없는 존재들도 있지만….

그리고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을 틈타서 그 친구들 버금가거나 더 답이 없는 [[1]] 가 뜨고 있다.--그리고, 그 꼴통들의 정점은....--

다만 살라피 자체가 와하브파와는 기원이 조금 다르지만[* 아라비아에서 기원된 와하브와는 달리 살라피 운동의 기원은 이집트] 근본주의라는 점에서 서로 친화성이 강한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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