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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יהודי (Yehudi, 예후디) - 히브리어 ייִד (Yid, 이드) - 이디시어 [*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로 히브리어의 기반 위에 주로 독일어,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았다.] ג׳ודיו (Djudio, 주디오) - 라디노어 [* 세파르딤 유대인의 언어로 이쪽은 스페인어의 영향이 특히 짙다.] 猶太人(유태인) - 한자 The Jews (더 주스) - 영어 Die Juden (디 유덴) - 독일어 Gli Ebrei (리 에브레이)[* 독특하게도 '유다'가 아닌 '히브리'에서 나온 말이다.] - 이탈리아어 Les Juifs (레 쥐프) - 프랑스어 Los Judios (로스 후디오스) - 스페인어 Евре́и (예브레이) - 러시아어 ユダヤ人 (유다야 진) - 일본어 유대인, 혹은 유태인 - 한국어[* 표준어는 유대인이지만 나이든 분 중심으로 위의 한자에서 유래한 유인이 더 흔히 쓰인다.] Judoj - 에스페란토

--야갤러들은 유머인이라고 부른다 카더라--

https://www.flyingchariotministries.com/260px-Star_of_David_svg.png 유대교의 상징, 다비드의 별(다윗의 별이라고도 하고 다윗의 방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https://cache.daylife.com/imageserve/07JebfV0X68GS/610x.jpg 유대교 전통의 모자 '키파'를 쓴 유대인들.

목차

개요

BC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민족. 유태인이라고도 한다. 조롱 섞인 별명으로 랍비라고 부르곤 한다. 사실 랍비는 유대교에서 말하는 선생 중의 선생이란 뜻의 말이다.

이처럼 민족이나 문화로 유대인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유대인 집단에서도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유대교를 믿는지의 여부 즉, 유대공동체에 살며 Shul 혹은 시나고그등지에서 모여 정기적으로 안식일과 기타 유대휴일에 예배를 드리고 유대 율법(보통 코셔가 가장 중요하다)을 따르면 유대교를 믿는다고 본다. 남자의 경우에는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의 경우 랍비에게서 유대인 증명서를 받거나 혈연(특히 모계쪽이 유대인인 경우)이 있는 경우 두 가지 뿐이다.

애초에 유럽계 유대인이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라면 이들도 고대 유대인들처럼 아랍인의 모습과 가까워야 하지만 피가 섞일 대로 섞여 중동인의 피는 희석되어버렸고 오늘날의 유럽계 유대인은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럽계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명분이 바로 자기들 조상의 땅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건국의 명분도 사라져 버린다. ~~아랍인들이 괜히 이스라엘을 중동에 남은 마지막 유럽인의 식민지라고 일컫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피부색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같은 건 무시하고 '우리는 한 조상을 모시는 가족'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여준다고 한다. 속인주의속지주의에 비할만한 속교(敎)주의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외모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예와 같은 백인의 모습으로써 대변되기에 그냥 백인계열의 한 민족으로만 알려졌을 뿐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아랍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wiki:"황인" 황인종[* 카이펑의 유대교도 항목 참고.][* 중국계인 Von Zon 이병이 이스라엘 방위군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도 있다. https://www.idfblog.com/2012/04/01/3-inspi 참고.]이나, 흑인 중에서도 유대인이 소수 존재한다. 아래 항목 참고.

유대인 중에서도 우리가 제사도 지내고 점도 보고 교회에도 가고 하듯이 근본주의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지 않고 적당히 다른 종교나 문화도 누리며 평이하게 살거나 혹은 개종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이들도 편의상 유대인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일부 --수구꼴통--랍비들은 인정 못할 것 같다. 유대인 하면 키파에 히브리어를 쓰고 이상한 복장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복장에 다른 민족들처럼 살고 히브리어가 아닌 자국어로 대화힌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이 된다. 즉 모계사회이다. 그러나 모계사회라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딱히 높은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은 현대사회인 만큼 여성의 권리도 남자 못지 않다.[* 정통파 유대교의 가정은 조선의 양반가와 비슷하다.] 유명한 유대인 농담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유대인 여성이 세계적인 업적을 세워 상을 받는 자리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옆사람에게 말했다. "참 자랑스러워요. 저 애의 오라비가 의사이거든요." ~~'사'자 직업의 위엄......~~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타민족이라면, 유대사회의 심사를 받아 유대인인가 아닌가 판단하게 된다. 보통 랍비를 통해 심사를 받는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인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할 때의 단골 레퍼토리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소문이나 (남성의 경우) 비유대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다.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에도 갈라져 서로 구분되는 다수의 분파가 존재한다. 이중 다수의 구성비율 혹은 정통성을 유대인을 대표하는 분파는 아슈케나짐(אשכנזים, 뜻은 "독일 사람들"), 세파르딤(ספרדים, 뜻은 "스페인 사람들"), 미즈라힘(מזרחים, 뜻은 "동방 사람들")의 셋인데, 이중 세파르딤과 미즈라힘은 같은 계열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아슈케나짐은 주로 중유럽 및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로, 유대인 중 백인과 가장 유사하며 흔히 우리가 유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파르딤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등지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미즈라힘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일대에 사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1492년 스페인 왕국에 의한 알함브라 함락(reconquista)후 소위 "알함브라 칙령"이 내려지게 되는데, 이때 대다수 세파르딤이 북 아프리카 및 레반트 지방으로 쫓겨나 미즈라힘과 혼합되었다. 세파르딤 중 핵심 세력 일부는 당시 가장 자유로웠던 네덜란드로, 나중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신흥 해양 세력의 자본을 대면서 번영하였다. 영국의 총리 대신을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그 후손.

이중 아슈케나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흑해와 카스피 해 연안의 국가 하자르(khazars) 칸국이 국교를 유대교로 정한 뒤 나라가 멸망하자 그 국민들이 동유럽에 대거 유입되어 아슈케나짐이 되었다는 설로 하자르 기원설이라고 한다. 아서 케스틀러(Arthur Koestler)라는 헝가리계 유대인 출신의 영국 작가가 주장한 설인데, 하자르족이 유대교를 받아들인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하자르 멸망 후의 일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라든가 유대인 교회당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반박이 있어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아슈케나짐 반대파의 경우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일례로 세파르딤과 아슈케나짐의 반목이 심해졌을 때 세파르딤 쪽에서 "가짜 유대인은 흑해로 돌아가라!"고 까대기도 했다.

2002년 미국 및 유럽의 일부 유전학자들이 Y 염색체 및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사하여 아슈케나짐의 내력을 추적한 결과, 이들도 소위 "아브라함 DNA"를 가지고 있음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대 유대인과 조상이 같다는 것이지, 아슈케나짐이 혈통적으로 고대 유대인과는 상관 없는 유럽 백인에 가장 가깝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2005년 유럽 유전체 학술지에 따르면 최근 인류학과 유전학 연구의 성과로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세파르딤이나 미즈라히 유대인 같은 기타 유대인의 인종학적 차이가 미미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사실 하자르족은 백인계가 아닌 [튀르크]계 민족이며 이들의 진짜 후손은 아슈케나짐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서 [리투아니아]에 걸쳐 극소수로 존재하는 카라이트(Karaites) 유대인이다. 또한 이들이 믿는 유대교 교파는 아슈케나짐이나 세파르딤이 믿는 유대교와는 교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하여튼 [음모론] 너무 믿지 말자.

유대인의 역사

고대 이스라엘의 구성 민족인 '헤브라이(히브리)'인은 이집트 국내에 거주중이던 외부 유입민들의 집합에서 시작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조는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능력을 발휘해 고위직에 오른 요셉이 이후 친지들을 불러들인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이후 모세에 의해 이탈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구성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이들이 집단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수가 지나치게 팽창하자 이집트 당국에서도 억제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집단 이탈을 제시한 것이 이집트 왕족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헤브라이 인에서 찾은 인물인 모세. 유태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단군 수준의 위인이라면 모세의 위치는 가히 세종대왕이순신을 합친 것 쯤은 된다. 이들에게 최초로 집단적 주권의식을 주입시키고 자립의 길을 처음으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 이들은 모세의 지휘 하에 이집트에서 이탈하여 자신들이 정착할 만한 지역을 탐색하는 것과 동시에 이동 경로에 있는 토착 세력들과 경쟁을 펼치며 수십 년 정도 떠돌게 된다. --그러니까 수만명 규모의 전투난민집단--

다만 유대인의 이집트 기원설 등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아래 참고.

여호수아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일대를 침략해 정복했고(예리코의 전투 참고), 기원전 10세기경엔 익히 아는 다윗 왕과 솔로몬왕의 시대로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만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오해하는데 팔레스타인은 고대부터 다민족 지역이었다.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라 확실성이 부족하지만 유태인 자체가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주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주하기 이전에 이미 가나안족, 헷족, 히위족, 브리스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여부스족 등 원주민 일곱 부족이 살았으며,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복속시키고 유태인들이 지배민족으로써 팔레스타인에 자리잡은 내용이 씌여져 있다. 원래 부터 유태인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 유태인의 도래 이전에 이미 선주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을 보면 블레셋인과 히브리인들이 싸우는 영토 다툼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로 비유되어 나온다. 구약에는 여러 이민족들을 유태인들이 절멸시키고 땅의 주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일종의 신화이자 과장된 표현으로 보이며, 실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보면 사마리아인, 블레셋인, 암몬인, 모압인 등 여러 민족들이 계속해서 유대인들과 섞여 살고 있었다.

당시의 군장국가체제에서 민족개념이라는 것은 지역에 따른 부족개념이었다. 당시의 가나안(Canaan)지역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레바논, 시나이반도, 요르단 서부를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민족들의 이름은 단순한 가나안 민족의 여러 부족개념으로 봐야한다. 한국 고대국가 시대에 부여,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가야 등의 수많은 부족국가들이 혼재했던 개념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언어들은 북서셈어계에 속하는 언어로써 모두다 친연관계에 있었다. 가나안 지역과 페니키아 지역은 서로 많은 지역을 문화적 교집합으로 갖고 있는데,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 사마리아어, 모압어는 서로 매우 가깝고,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가나안어파의 하위 어군으로 상호 방언관계를 이룬다.

자신이 유태인이기도 했던 블랙 아테나의 저자, 마틴 버낼 교수는 유태민족과 주변민족과의 관계사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히브리인과 페니키아인이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진지한 언어학자라면 두 언어를 가나안어의 방언으로 함께 취급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라고 '블랙 아테나'에서 이야기한다. 즉, 언어학적으로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알파벳의 표기가 다를 뿐, 한 쌍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관계를 연상해보면 된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인 교통 중심지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수메르 문화, 이집트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그리스), 히타이트, 앗시리아, 로마, 아랍제국, 여러 투르크제국 및 유럽 십자군 등의 지배를 받았다.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혈연적 관계도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애초부터 여러 민족들이 어울려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역내외의 다양한 문화들이 오고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던 문화적 교통로이기도 했던 다민족-다문화 지역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고대 이스라엘 왕국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하여 쇠락과 부흥을 거듭하던 중 아시리아(이스라엘)와 신바빌로니아(유다)에 패망당하기도 했다. 이후 로마에 의해 합병되어 서기의 기점(실제 연도는 역산상의 오류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시기에는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다. 예수가 죽은 죄목 역시 명목상 '로마에 대한 반체제 책동'이었으며 실질적으로는 로마에 대해 독립을 요구하는 자주세력과 로마에 협력하는 기득 고위계층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는 기득권층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그리고 예수는 그 추종세력을 정치적으로 이끌기를 바라던 독립파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뜬구름 잡는(?) 회개와 구원 이야기만을 주구장창 주장했으므로 고발 당시 독립파의 옹호도 얻지 못했다.] 당시 유대인 사회 내에서 독립에 관하여 사회적 갈등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마를 상대로 두 번째로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개털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로마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독립군 전원이 자결하였다. 이후 로마는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였다. 이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로마 지배하에서 디아스포라를 당해서 전세계로 흩어졌다는 상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화평론가 김갑수 교수의 견해에 따르자면 실제로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져서 유대인이 전세계에 흩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강제적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난 문헌기록은 전혀 없다. 오직 그에 근접한 기록으로는 AD 135년에 반란전쟁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전역도 아니고) 단지 예루살렘에서만 쫒겨났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그 기록도 아주 소략하다. 그 기록이 맞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풀어본다면 여러 차례 유대인 반란에 진절머리를 앓던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반란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예루살렘은 지금과는 달리 매우 작은 성곽도시였다. 성곽만 보면 불과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반란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반란의 중심지였던 성이 진압군에게 파괴됐다. 전쟁터였던 성이 불바다가 되고, 폐허가 되는 일은 다반사이지 않은가? 유대인들은 폐허가 된 도시에 살 수 없고, 학살도 피할 겸 시골로 피난갔을 것이다. 반란의 중심지였기에 로마 정부가 당분간 접근금지 봉금령 따위를 내리는 것도 상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봉금령이 과연 영원히 지속될까?

그 어디에도 봉금령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다는 것도 밝혀져 있지 않다. 시간이 흘러 몇 년이 지난 후, 복구된 다음엔 인근의 유대인이 또 들어와 살았을 것이며, 그리고 설령 그 봉금령이 있었다고해도 고작 작은 읍성 수준의 도시 하나만 폐쇄되었다고해서, 유대인들이 갑자기 전세계로 퍼질 수는 없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전인 BC 1세기부터 큰 규모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 곳곳에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다는 기록은 무척 많다.

또한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원래 '그리스인이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유대인들도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까 그것도 함께 포함해서 '한 민족이 여러 장소에 흩어져서 사는 것'을 가리키게 된 단어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디아스포라는 낭설이자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강제적인 디아스포라가 없었는데, 유대인들이 이렇게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인들에겐 애초에 디아스포라가 없이 그냥 자발적인 이민만이 있었다. BC 1세기경에 벌써 이집트 등에 유대인 공동체들이 존재했다. 특히 당시 세계의 문화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 공동체가 무척 커서 인구의 40%가 유대인이었다. 기독교가 퍼지기 시작했던 AD 2~3세기에 로마시내 곳곳엔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가 존재했다. 또한 유태인들 외에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도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또한 앞서 짚었듯이 신약성경의 각 기록에 의하면 레반트(레바논, 시리아), 갈라티아, 에페소스(터키), 테살로니카(그리스) 등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집단에게 전도하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참고로 초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새로운 한 분파로써 시작했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전도부터 시작했으며, 특히 국제어였던 그리스어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유태인 집단이 지중해 권역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전파가 용이했다는 점이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든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왜 유태인들이 이른 시기에 그렇게 다양한 장소에 살았을까?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앗시리아, 히타이트,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그뒤를 이은 로마제국까지 다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다민족국가들이었다. 또한 또한 유태인들은 당시 중근동의 공용어였던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했기에 다른 지역의 정착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붕괴후 잠시 들어섰던 유대독립국가는 BC 66~61년에 폼페이우스의 동방원정으로 무너지고,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패자인 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다. 그들이 로마를 싫어해서 유태인 독립국가를 열망했건 어쨌건 간에 그들은 로마제국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었다. 또한 로마제국의 특징 때문이기도 했다. 로마는 다민족국가로써 민족을 차별하지 않았다. 심지어 비로마인이 황제가 된 경우가 더러 있을 정도였다.

현대의 미국이나 브라질같은 거대한 다민족국가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드넓은 미국 곳곳에 한국인들이, 흑인들이, 백인들이 퍼져서 살아간다. 특히 백인들은 아예 혼혈이 되어서 원래의 민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 불과 200여년 동안 벌어졌다. 로스앤젤레스에는 한국인들의 거대한 디아스포라가 존재할 정도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섞이고 섞여서 그렇게 유태인들이 로마라는 자기 나라의 곳곳에 시나브로 이주하게된 것이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했고, 동로마제국은 1453년에야 멸망했다. 400~1000여년이면 충분히 유태인들이 그렇게 많은 곳에 퍼져 살 수 있다. 유태인들만이 곳곳에 이주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대의 그리스인이나 페니키아인, 카르타고인들도 그렇게 지중해 전역에 퍼져살았다. 고대의 지중해는 하나의 커다란 경제적 권역을 이루고 있어서 권역내에서 교류가 잦았던 점도 큰 요인이다.

또한 유대인과 페니키아인의 동질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히브리어와 페니키아어는 방언 수준의 차이밖에 없다. 히브리 문자는 BC 2세기에 사라졌고, 페니키아 문자는 BC 1세기경에 사라졌다. 두 문자가 사라진후 두 언어는 각각 같은 계통인 아람어에 흡수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일찌기 이집트 제4왕조인 BC 26세기~BC 24세기때부터 이집트와 상거래를 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동지중해권역의 무역중개인이었고, 스페인, 튀니지, 아나톨리아 등 지중해 연안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유대인과 페니키아인 사이에는 언어적 차이가 거의 없었고, 서로가 비슷한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다. 페니키아인은 북서부 해안가 가나안인으로 보고, 히브리인은 남동부 산악지대 가나안인으로 보면 쉬운 비유가 될 것이다.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은 무역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권역에 많이 진출했고, 히브리인들도 페니키아인으로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이 후 많은 유대인이 중동이나 유럽으로 퍼졌는데, 대부분 이민한 사회에 녹아들어가지 않고 자신들 고유의 전통과 종교를 지키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배척을 당했다. 제대로 된 일조차 구하지 못했기에 대부분 금융업에 종사했고, 이는 고리대금업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더욱 배척받고 미움받는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조합에 가입할 수 없어 상업도 공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리대금업밖에 없었다.

https://www.thebreman.org/exhibitions/online/1000*****/JudenMitHut.jpg 중세 유럽의 유대인. 유대인들은 저렇게 뾰족한 모자를 유대인이라는 징표로 쓰고 다녀야 했다. attachment:4.jpg 평민과 돈 갚으라고 하는 유대인, 그리고 짜증내는 기사(...)

더욱이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증오하고 멸시했다. 하지만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유대인들이었으며, 예수가 구원의 첫 대상으로 삼은 것 역시 유대민족이었다. 십자군 전쟁 때도 지나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있으면 그냥 쳐죽이고 재산 빼앗는 일은 예사였다. 셰익스피어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또한 이런 증오가 투영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재정적인 문제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상당수가 개신교 계열이다. 종교 개혁 이전에 구교에서 성서를 읽는 행위 자체를 민간에게 허락하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정치적인 증오가 종교적인 옷을 입은 것뿐이다. 실제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분리시킨 신약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것과 그들을 향한 신의 사랑과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나 성서적으로나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차라리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

그런데 고리대금은 기독교가 더 심했었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기독교인보다 [너그러웠다고 할 정도]이니.[* 다만 십자군 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끼리 사채는 금지였다. 그래서 십자군이 이동하다가 돈이 부족하면 유대인한테 빌리던지 뺏던지 했었다.] 근데 뭐 당시 기준으로 말하자면 '기독교'란 한국에서 '검은머리'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표현이다. 극소수 유대인이나 기타 종교인이 있는 거고 기독교는 그냥 '일반 국민 기본값'인 셈. ~~결국 '고리대금업자는 종교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독한 놈' 이란 이야기.~~

https://media-1.web.britannica.com/eb-media/69/8469-004-663DBC17.jpg 에스파냐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활동한 유대인 철학자, 랍비이자 살라흐 앗 딘의 주치의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이슬람권에서는 기독교권에 비해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덜한 편이었다. 사실 집시라든지 쿠르드족의 예를 보듯 단지 나라없는 떠돌이 민족에다가 거주하는 지역사회에 동화되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에 박해당한 것이지 예수를 죽였다던가 하는 건 일종의 핑계일 뿐이다.

18, 19세기 들어 소위 '이성의 시대'가 열리자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감소하였으며 동시에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들어서 유대인들도 지역사회에 활발하게 융화되어 참여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금도 여러 음모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융 재벌이 된것도 19세기 초반이며,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성공회로 개종한 유대인 정치인인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수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였다. 딱히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당시 전분야에 걸쳤던 유럽계 유대인들의 눈부신 활약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살아남아 결국 홀로코스트가 일어났고, 5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다고 추산된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19세기에 대두한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가 기독교로부터 반유대주의의 바통을 물려받았다는 데에 있다. 순혈을 국가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자국내의 유대인들의 성공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것. 겉으로는 다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소련이나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대접은 '전세계를 주무르는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웃기게도 자본주의의 수뇌부인 거대 자본가들도 유대인들을 사회주의자라고 여겨서 좋은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중에서도 유대인이 많았지만 사회주의 운동가들중에도 유대인이 매우 많았다. 애초에 사회주의 교조였던 카를 마르크스부터가 유대인이었고, 나치당 같은 파시스트들은 사회주의를 유대인이 만든 몹쓸놈의 사상이라고 해서 매우 탄압하였고 이러한 사회주의에 대한 증오는 반유대주의와 시너지를 이루었고 독소전쟁으로 이어진다.].

원인이 어쩌든, 홀로코스트를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한 건 나치는 유대인이 수전노에 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로 선전했는데 나치 집권 후 그런 소리 들을 만큼 부자인 유대인들은 유럽을 떠났지만, 돈도 부족하고 힘없던 유대인들은 남아서 다 수용소로 끌려갔다. ~~돈이 웬수다~~

20세기초 영국은 시오니즘의 대두를 지켜보고 유대인들에게 영국령 우간다 땅을 내줄 테니 거기서 나라 만들어라고 제안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영국령 우간다 계획 참고.

출애굽기의 내용은 사실인가?

수백, 수천년간 널리 퍼진 기독교 믿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이 이집트에 살고 있다가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성경에 쓰여진 내용 그대로(10대 재앙 같은 기적은 빼놓더라도)믿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난 사건인지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고고학과 과학적 연구 성과들을 보면 그 당시 오랜 시간 동안 이집트에서 기상이변에 따른 여러 재해들이 발생했고, 이것이 해충의 대량발생이나 전염병 발발, 적조 현상 등의 '신의 징벌'로 기억되었던 것이 아닌가 여기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의해 모이고 모인 '이주의 기억'들이 구전되며 쌓이고 쌓이다가 모세라는 아이콘에 정리되어 하나의 이집트 탈출 신화가 만들어 졌다고 본다.

그 외에도 모세 휘하의 이집트 탈출 행렬을 추격하던 파라오의 아들이 갈대밭에서 탈출 행렬의 호위 병력들에게 기습을 당해 죽은 사건이 홍해로 와전되면서 모세가 바다를 가른 사건과 이집트의 장자들이 죽은 사건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출애굽이 일어난 시기를 따지자면 크게 전기설과 후기설로 나뉜다. 전기설은 대략 기원전 15세기 경, 즉 아멘호테프 2세 등을 대표로 그쯤의 파라오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후기설은 람세스 2세를 대표로 대략 13세기 무렵의 파라오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양상이다.

전기설과 후기설을 대표하는 아멘호테프 2세람세스 2세의 장자는 일찍 죽었다.[* 람세스 2세는 8~90대까지 살았고, 그 당시 평균 수명과 평균 결혼 연령을 생각해보면 아들이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다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람세스 2세가 죽었을 때 젊었을 적에 낳은 자식들은 다 죽었고, 심지어 일부 손자들과 증손자들도 죽었다. 자세한 내용은 람세스 2세 항목 참고.][* 한편, 아멘호테프 2세의 다음대 파라오인 투트모세 4세는 그의 장자도 아니다. 보통은 장자가 파라오가 되는 상황인 것을 보면 뭔가 어마어마한 떡밥거리. 실제로 투트모세 4세에게는 웨벤세누라고 하는 형이 있어서 왕위를 물러받을 처지가 아니었는데, 어느날 꿈을 통해 스핑크스를 발견했던 그 사건 이후에 웨벤세누가 죽게 되었고, 그로 인해 왕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그가 스핑크스를 발견하게 만들었던 그 꿈 또한 아주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기까지 한다. 여담인데, 투트모세 4세가 스핑크스를 발견한 건 지어진지 천 년 뒤였다.]

사가들이 주장하는 가장 유력한 내용은 이렇다. 이전에 요셉이 출세하고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했을 때의 이집트가 이민족 왕조인 힉소스 왕조였으리라는 것. 그게 맞다면 이집트인들이 힉소스를 몰아낸 이후 유대인들을 일종의 힉소스의 부역자로 간주했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사실 힉소스인 이라는 집단에는 지금의 유대인의 조상들도 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학설도 있다고 한다. (참고)] 유대인들이 노예가 된 것도 일종의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을지도. 여기에서 전기설은 시작이 되어지는 셈인데, 이 해석에 따르면 출애굽의 시기는 대략 투트모세 3세 내지 아멘호테프 2세가 된다.

후기설의 모티브가 되는 것으로서 아케나톤 때의 일신교 덕에 번영을 누리다가 이후 아몬 라 신앙에 의해 박해를 받았고, 19왕조의 람세스 2세 때 탈출했다는 건데, 이 경우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있었다는 430년 세월의 기록(성경)에 어긋난다. 여하간 두 해석 모두 떡밥으로는 양질이라서 인기가 있다.

단, 이것도 전기설의 아멘호테프 2세라고 나름대로 가정하고 들어가면 어찌될 지 모르는데, 아멘호테프 2세의 마지막 원정 경로가 팔레스타인 쪽이었고, 그 시기 또한 전기설에서 주장하는 시기랑 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대한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이스라엘

유럽계 유대인들이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 특유의 생명력으로 나름대로 상업과 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등, 좀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유럽 사회에 붙어 살던 중,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 wiki:"홀로코스트" 약 800만명의 유럽계 유대인을 학살하게 되자[* 여기서 태클을 걸자면 너무 유대인만 감싸지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폴란드인 등 다른 계층의 인류도 다수 희생 당했는데 유독 유대인만 감싸졌다. 어쩌고 보면 역사적으로 유대인을 내쫓은 게 맞다 싶은 언행도 저지르는 걸 볼 수 있다.] 결국 유럽계 유대인들.. 정확히는 아슈케나짐은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원하게 되고 결국 1948년, 고대 유대인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국을 건국하게 된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 이스라엘 역사 교과서의 400쪽 중에서 세파르딤과 미즈라힘의 역사에 할당된 페이지는 단 9쪽 뿐이라고 한다. 아랍세계의 일원으로 평화롭게 살았던 중동 유대인들의 역사는 지우고 유럽에서 박해받은 아슈케나짐의 역사만 가르치는 것. 아랍인에 대한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국민 통합의 바탕으로 삼는 이스라엘 지배층에는, 아랍권에서 유럽과 달리 반유대주의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껄끄러운 사실이 없었다.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기 이전에 유대인들을 언제나 반기고 관대하게 대해주었던 아랍인들에 대한 그들의 ‘배은망덕’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세파르디들로부터 갓난아이들을 빼앗아가 ‘선진적인’ 유럽 출신의 시온주의자의에게 입양시키는 ‘2세 동화 작전’도 있었으니..

아랍권에 집을 짓기 시작하고 그 과정으로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 정착에 성공하자 아랍인들의 원수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주변 아랍국가들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에서 이스라엘에 비협조적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받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국가들(특히 독일)만은 이스라엘을 지켜주고 있으나 독일이나 유럽 나라들도 팔레스타인 분쟁에 넌덜머리를 내면서 미국과 달리 좀 아니꼽게 보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이스라엘 항목을 참고하기 바람.

2014년 7월 가자지구 폭격 당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크면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다시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거기에 네오 나치들과 무슬림, 친ISIL 파벌들이 편승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다.

현대의 유대인

유대인은 수천년간에 걸쳐 혼혈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인종이나 혈통은 의미가 없으며 풍습과 유대교로 유대인의 여부를 가린다. 전 세계적으로 합산해봤자 1,400만 명을 넘는 이 작은 민족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역시 미국에 사는 백인계 유대인들 때문일 것이다. 미국 인구의 약 1.5%(미국 거주 유대인은 약 500만 명)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그들 특유의 수완으로 경제, 언론, 문화, 예술. 스포츠[* NBA를 돈다발로 만든 데이비드 스턴 현 총재도 유태인이며 그를 이을 부총재 또한 유태인이듯이 ~~정작 NBA 보면 알겠지만 선수층이 흑인이 과반수임에도~~ 스포츠 쪽 행정이나 투자에서도 유대인들 힘이 거세다. NBA 스폰서 중인 유태계 자본인 시먼스 은행 같은 기업때문에 이란이나 아랍권에선 NBA 중계가 난항을 겪고 있기도 하다.][* 워너브라더스파라마운트 픽처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 다수가 유대인이 설립한 회사다.][*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같은 언론사도 전부 유대인의 세력범위에 있다는...]각계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며 이 때문에 비유대계 백인들, 특히 WASP 계층의 멸시와 증오를 받기도 하고 각종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관리직이며, 박해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성향이 진보적이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민주당버락 후세인 오바마를 찍은 유대인은 80% 이상이었다. 이렇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기득권은 이와 정반대이며 이스라엘 내 양심적인 유대인들은 좌파로 몰려 탄압받기도 한다.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추구하는 샬롬 악타브(히브리어로 안녕 평화여라는 뜻)같은 단체들은 극우 유대인 민병대들에게 허구헌날 두들겨 맞는 현실이다.

물론 뉴욕같은 데 가면 진짜로 검은 옷 입고 수염은 허리에 닿고 안식일에는 불도 안 켜는 골수 유대인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유대인들은 당연히 보수적인 성향이다. 2008년 대선 당시 정통파 유대인 중 오바마를 찍은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어디까지나 일부고 대부분은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살고 있으며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수다. 말이 유대인이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기독교 풍습을 따라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세우기도 한다.다만 미국같은 경우엔 메리 크리스마스가 특정종교 상징이라고 하여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인삿말이 퍼지고 있는데 이 말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기여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 극소수 인구임에도 유대인들의 명절인 욤 키푸르는 여러 주에선 국경일인 것도 유대인들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는 십원짜리 하나만 던져도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수전노들이나 미친 듯이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묘사된다. 전자야 인종차별에 가까운 편견인데 후자는 뭐 어느 정도 사실. 미국 유명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대인 비율은 인구대비 압도적이다. 현재 미국 유명대학 재학 유대인 비율은 하버드 대학교 30%, 예일 대학교 28%, 보스턴 대학교 24%로 엄청나다. 단 명문대 입학은 학업 성적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교 재정에 기여가 가능한 학생을 선호하는 것과도 관련있다. 그럼에도 유대인 학생들은 많은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거두며 졸업한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기반도 부족한데다가 딱히 아시아계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하지도 않는 반면, 유대계는 그 자체도 부유층이 많은데다가 유대계가 많은 학교에는 별도로 기부를 하는지라.. 이래서 요즘에는 재미교포사회에도 돈 버는 데만 신경쓰지말고, 시민권을 따서 선거에도 참가하고 지역사회에 기부도 하고 잔소리도 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소득은 히스패닉이나 흑인보다 높아도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니 정치인들에게 찬밥 취급이고, 중국인들처럼 같은 중국인을 띄워주지 않고 대신에 어떻게든 한인이니 부려먹고 착취할 요행만 바라니 어느정도 자리잡고 나면 한인을 피하려고 한다는 말도 있다.

그외에도 아무래도 먹고 살만한 중산층과 상류층들이 많아서 그런지 예술과 문화쪽에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종사하고 있다. 예술가하면 가난한 예술가가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지만 실제로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중에는 집이 넉넉해서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예술에 전념해서 예술가가 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흑인 유대인들의 이민 역사와 현황

흑인 유대인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

원래 에티오피아 왕조의 탄생 자체가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 동침한 뒤 임신하여 낳은 아들을 시조로 보고 있다. 이 아들의 이름이 메넬리크 1세다. 이 아들이 이후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아갔고 ~~wiki:"유리명왕" 유리왕?~~ 아버지인 솔로몬 왕은 아들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7개 직능 부족에서 각 1000명씩을 징발하여 아들에게 데려가라고 내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에티오피아에 살던 유대인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인들은 농담조로 "다른 데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도 다 유대인의 자손이다." 라고 말한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0장 1절에 보면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라는 구절이 있다. 참고하길 바란다.

일단 이러한 내용은 사실적인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설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제국헌법은 이러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여 메넬리크 1세부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1892.7.23 ~ 1975.8.28)까지 왕통이 연면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내에 거주할 때 다른 흑인들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이스라엘] 족이라 자처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희생을 바쳐 제사를 지내는 등 유대인 고유의 풍습을 지켜온 것으로 전해진다.(1991. 5. 26 경향신문)

때에 맞춰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내에 팔레스타인인 인구증가에 불안을 느끼고 인구 확충을 위해 해외 각지의 다양한 유태인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에티오피아 유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었다. 문제는 이를 눈치 챈 당시 에티오피아 공산 정권이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걸핏하면 이들을 볼모로 이스라엘에 같잖은 협박을 해댔다는 것. 결국 빡친 이스라엘이 직접 대형 수송기를 보내서 세 차례에 걸쳐 해당 흑인 유대인들을 전부 본국으로 수송하여 이민시켰다. 에티오피아에서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마을은 그 독특한 문화 때문에 온 세계에 관광지로 유명했으나, 정작 거주자인 흑인 유대인들이 전부 떠나버리고 난 뒤에는 거의 그냥 폐허로 전락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84년에 있었던 모세 작전에서 약 8000여명을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직접 엄청난 인구를 들어 옮겼다. 그리고 직접 정부 관계자들이 마중 나가 엄청 환영하는 했지만... 실제로는 말도 다르고 피부빛이 다른 그들은 심한 차별을 받았다.

특히 1996년에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헌혈을 하면 정부가 그 헌혈한 피를 전량 폐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항의하는 에티오피아게 흑인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냐며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지만 사실 이스라엘 보건당국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출신자들 중에 에이즈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실제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에이즈 감염율과 보건 실태를 감안하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해서 일단 흑인 유대인들이 시위를 중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평소 이스라엘 사회에서 차별 받고 살던 흑인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느낀 좌절감과 박탈감을 표출하며 각종 사회 운동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흑인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약 10만명이 좀 넘는 인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래도 이들이 대거 거주하는 지역의 2개 의석에선 반드시 이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출신이 의원으로 꼬박 꼬박 뽑힌다. 그리고 또한 전통적으로 하층민을 형성하며 먹고 살기 위해 군에 말뚝을 박거나 군복무 경력을 통해 경찰이 되곤 하던 흑인 유대인들이 요근래 자체적으로 학력을 높이려 노력하여 IT 관련 업종에 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도 한다.

2013년에는 흑인 유대인 여성이 미스 이스라엘에 뽑혀 극심한 반대에 시달리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미스 이스라엘 역사 최고의 몸매와 미모를 가진 여성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그놈의 피부색은 여전히 벽으로 다가오는 듯.

애초에 고대 유대인들이 볼 땐 백인계 유대인이나 흑인계 유대인이나 자기들이랑 전혀 다르게 생긴 타인종들이 서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걸로 보일 것이다.

유대인 캐릭터

이와 같이 꽤 독특한 민족이기 때문에 각종 픽션 창작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족, 특히 서유럽이나 북미권에서는 집시와 함께 꼭 한번씩은 나온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유대인들의 영향력 덕분인지 인구수에 비해서는 자주 나오는 듯하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유대인 외모의 클리셰는 진저 타입에 곱슬머리인 것 같다. ~~진짜 진저타입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많은데 왜 설정이 이리 잡혔는지는...~~ 실제로도 이런 유대인들이 많다. 마크 저커버그라든지...

헌데 일본에서는 오덕물이든 아니든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본인 입장에서야 다 똑같이 백인으로 보이니까. 《블랙 라군》의 베니정도가 그나마 일본 오덕물에서 등장하는 유대인중 한명. 한국에서는 그나마 기독교가 흥해서 라이트 노벨에이나 웹툰에서 간간히 등장하고는 하고는 한다.

※ 이스라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은 작품의 주인공, 등장인물 대부분
* 개와 공주 - 노세현[* 서양인+한국 혼혈이지만 종교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인 유대교이니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긴 한듯.]
* 박물관이 살아있다 - 래리 데일리, 니키 데일리[* 3편에서 유대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 - 허버트 소블[* 실제로 유대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블을 맡은 데이비드 슈위머는 《프렌즈》에서도 유대인인 로스 겔러를 연기했다.] 조지프 리브갓
*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 윌로우 로젠버그[* 종종 유대인임이 언급되긴 하지만, 나중엔 사실상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게 된다.]
* 베니스의 상인 - 샤일록
* 블랙 라군 - 베니(블랙 라군)
* 빅뱅 이론 - 하워드 조엘 왈로위츠
* 사우스 파크 - 카일 브로플로브스키
*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 캐서린 S. 로스차일드
* 올리버 트위스트 - 페이긴
* 은하영웅전설 - 율리안 민츠
* 인디펜던스 데이 - 데이비드 레빈슨
* 킴 파서블 - 론 스토퍼블
* 프렌즈 - [wiki:"모니카 엘리자베스 겔러" 모니카]와 [wiki:"로스 유스티스 겔러" 로스]를 위시한 겔러 일가, 레이첼 그린[* 겔러 일가는 작중 명백히 유대인임이 언급되고 하누카 등도 언급하지만 레이첼은 설정상으로만 유대인 혈통이라고 한다.]
* 피니와 퍼브 - [wiki:"피니와 퍼브/등장인물" 이사벨라 가르시아-샤피로][* 특이하게도 얘는 멕시코계 유대인이다.]
* 엑스맨 - 매그니토
* 울펜슈타인 시리즈 - B.J. 블라즈코윅즈 [* 폴란드인 아버지와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폴란드계 이민1세대 미국인.]

유명한 유대인들

* 12사도
* 내털리 포트먼
* 놈 촘스키
* 노스트라다무스
* 노턴 1세
* 노턴 슈워츠: 유대인 출신 첫 미 공군참모총장
* 니슬리 미클로시 [* 이 항목 인물과 캐릭터중 최강, 최악의 인간말종이자 유대인 최악의 흑역사이자 이시이 시로, 요제프 멩겔레, 존 커틀러에 이은 4대 죽음의 천사. 멩겔레의 조수로 그 악명 높은 멩겔레의 쌍둥이 실험 기획자되시겠다. 차라리 샤일록은 그래도 시대 배경 때문에 놀아난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이라고 가지... 이건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머리까지 좋은 건지 법의학이나 독일어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심지어 웬만한 사투리를 다 알정도였다.) 마스터한 천재였다.]
* 닐스 보어
* 다윗
* 대런 애러노프스키
* 로만 폴란스키[* 이 사람은 나치 치하에서 홀로코스트까지 겪었으며, 어머니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레프 트로츠키
* 리처드 파인먼[* 어린시절엔 유대인 공동체에 있었던 적도 있지만, 이후엔 저커버그처럼 가계만 유대인이고 무신론자이다.]
* 마이모니데스
* 마이클 블룸버그
* 마크 저커버그[* 본인은 무신론자이지만, 일단 집안의 가계가 유대인 집안이다.]
* 모세
* 밀라 쿠니스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벤저민 디즈레일리
* 브라이언 싱어
* 블라디미르 레닌
* 사도 파울로스
* 사무엘 풀러
* 샤이아 러버프
* 샌디 쿠팩스
* 성모 마리아
*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 솔로몬
* 스칼렛 요한슨
* 스티븐 스필버그
* 스탠리 큐브릭[* 이쪽은 집안이 유대계긴 하지만 아버지대에 이미 개신교로 개종했으며, 큐브릭 본인은 종교에 관심조차 없었다. 심지어 일부 유대인들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언론및 문화산업을 더럽힌다며 혐오했다. 이외로 본인의 독일-오스트리아계 혈통에 대한 애착은 깊었다.]
* 아이작 아시모프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에이드리언 브로디
* 엘리자베스 테일러
* 예수
* 요셉
* 우디 앨런
* 유다 가롯
* ~~유다인~~[* 유대인은 "유다인"으로 불릴때도 있다.]
* 아담 샌들러[* 그의 작품엔 항상 유대인을 티내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 아트 슈피겔만[* 나치의 유대인 탄압 및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부모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의 작가.]
*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묘 도굴사건의 주범. 유대계 독일상인. 해당 항목 참조.
* 이리나 슬루츠카야
* 제러미 마이클 보더: 유대인 출신 첫 미 해군참모총장.
* 제이크 질런홀
* 조지 소로스
* 존 대니얼스
* 존 폰 노이만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찰리 채플린
* 코리 스톨
* 펠릭스 멘델스존[* 아버지대에 이미 개신교로 개종해서 유대인이란 자각이 없었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자신의 먼 조상중 한명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을 게르만계 독일인으로 봤으며 아들인 펠릭스 멘델스존도 그리 생각했다.]
* 폴 헤이먼
* 프란츠 카프카
* 프리츠 하버[* 본인은 유대인이란 자각이 없었으나, 나치의 기준에서는 훌륭한 유대인이었다.]
* 카를 마르크스
* 호아킨 피닉스
* ~~빌 게이츠~~ [* 록펠러와 더불어 유대계로 오해 받는 대표적인 인물, 게이츠 혈통은 영국계 혈통이다. 참고로 록펠러 가문은 독일계 혈통이다.]
* 타라 스트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