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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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3.1 운동의 전국적 폭발적 호응에 더불어 국민들의 독립의 염원을 확인한 독립운동가들은 각각의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하기위한 통합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임시정부를 창설.

대한국민의회와 신한청년단의 합작. 창설당시 무장 투쟁론자들은 만주/연해주에 창설할것을 주장했고 외교독립론자는 상하이에 창설하기를 주장.

결국 외교독립론자의 의견을 수용하여 상하이에 창설되고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국무총리는 이동휘가 된다.

개요

임시정부 건국 강령에서 주가 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손문의 삼민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편으로 1940년대 초 일본이 전선을 확대해나가자 독립 운동의 재조직을 위해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필요성을 느껴 국유화 등의 주장을 넣었다.

물론 이후에도 좌우 알력은 계속되었지만...

반면 공산주의 세력인 조선 독립 동맹 같은 경우에는 아예 토지 분배를 주장했고, 좌파 우파를 떠나 국내 독립 운동 세력을 모으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래서 이념을 벗어나 단합을 추구할 필요가 있었던 조선 건국동맹 같은 경우에는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한 정체 건설 정도의 강령을 세웠다.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들은 조선 땅에 귀국하지만, 미군정은 미군정만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선언하여 임시정부 또한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해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노력은 많이 했지만, 각기 다른 사상을 가진 독립운동가들이 뭉쳐서 잘 굴러갈리가 없었다.

결국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진 안습한 단체.

디시위키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이 글에 부들부들하는 역센징 일뽕들이 반달하고 있는 문서입니다.

역사

3.1운동의 뽕에 취해서 한성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한성임시정부는 집정관 총재라는 간지나는 자리에 이승만을 추대했다.

이후 국내외 여기저기 독립세력이 모여서 일제의 손이 덜 타는 상해에서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고 하여

국호를 대한으로 정해서 임시정부를 발족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되자 마자 분열과 해체의 위기에 처한다.

그거슨 다름아닌 초대 임정 대통령에 추대된 이승만 탄핵문제였다.

이승만의 신탁통치 청원때문에 이른바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라도 팔아먹었지 이승만이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이에 임정은 민족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여 첫 회의를 하였는데 이당시 독립운동 개열은 세파벌로 나뉘어 버렸다.

그것은 각각 개조파와 현상유지파 창조파로 나뉘어 버렸고 결국 개조파와 창조파가 떨어져 나가고 현상유지파인 김구가 ㅂㄷㅂㄷ 거리며 임정을 끌어안게 되었다.

1930년대

일제가 본격적으로 머륙에 진출이라 하고 침략을 하는 시기, 이 시기에 김구는 일본에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착한 공격임. ^오^

당시 임정에서 무장독립 한다고 떨어져나간 무장독립파는 본거지인 만주에 만주국이 수립되면서 망했다.

그리고 일제는 중국을 당장 다 씹어먹을 아시아 킹왕짱이라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은 정신적으로도 위축되었다.

이에 우린 아직 안죽었어! 라는것을 보여주고자 일본왕을 폭살하려고 이봉창 의사를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상해의 한 기레기가 아쉽게 일본왕 폭살 불발 이라고 쓰자 일제는 앗싸 좋쿠나를 외치며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다.

전쟁에서 이기고 일왕 생일도 기념할겸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는 기념식을 갖기고 한다.

이에 김구는 윤봉길 의사에게 도시락 폭탄으로 일제의 요인들을 폭살시킬것을 명령했고 성공한다.

이것을 본 중화민국의 짱개석은 감격하여 임정을 밀어주기로 한다.

1940년대

이미 20년대부터 싹수가 보인 독립운동 세력은 좌우가 광복군과 팔로군으로 나뉘어져서 따로 행동한다.

중국의 국공합작에 삘받은 민족유일당 운동은 불발되었으나 이 모델은 임정 조직에 영향을 미쳐

김구가 주석(의장)에 올라 일인 영도체제가 되었지만 국민당과 함께 중국 내륙까지 피난가는 안습한 세월을 보냈다.

임시정부는 미군이 몰락작전을 실행하면 국내에 광복군이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핵 두방맞고 일본이 뻗어버림.

그래서 김구는 어이털렸다고 적고 있다. 밥숫가락 얹더라도 우리가 머 한게 있어야 생색을 내는데 순전히

미국덕에 독립했으니 우리가 무슨 목소릴 낼수 있곘냐는 분석이었고 이 예상은 완전히 맞아 떨이짐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수립하고 2년후인 1950년 에 6-25 전쟁이 터짐

1950년대

미군과 소련군의 정치를 받는다. 중요한건 이떄 휴전 맺은게 아직도 휴전중이라는것이다. 한반도는 아직 전쟁 중이라는것을 잊지말자!

해방이후

미군정도 소련군정도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음. 그래서 다들 개인자격으로 귀국했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나라 이름이 대한이 되는데 공헌하여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의의

헌법에서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전신

단지 미군정이 인정하지 못해서 그 자체는 되지 못했다 안습.

뉴라이트들이 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하자고 하지만, 실재로 건국절이 정해지더라도 임정수립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