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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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

한국사에는 총 3개의 고려가 있는데 고씨가 세운 고대의 고씨 고려(고구려), 궁왕이 이를 부흥시킨 고려(후고구려), 그리고 궁예 눈깔사탕 뽑아먹은 왕건의 왕씨 고려가 있다.

참고로 고대어에서 '성'을 뜻하는 '구려'(후의 '골','고을'의 조상어 이다.)와, 좆자의 높을 '고'자가 합치된 뜻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수도인 졸본성이 졸라 높은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후에 부여왕가의 폐기물인 주몽(추모)이 고구려의 지도자가 되면서(주몽 이전부터 앞록강 중류에 이미 작은 마을 규모의 고구려가 있긴 했었다, 걍 높은지대에 세워진 큰 성들을 죄다 고구려라 불렀다. 이걸 굴러온 돌인 주몽이 쳐먹고 졸본으로 이전 한 것) 지 성을 높을 '고'자로 창씨한다. 이때부터 고구려는 '고씨의 성'이란 의미가 된다. (서양식 용례 ex 상트 페테르 + 부르크=> 성인 베드로의 성: 고 + 구려=> 고가놈의 성)

그리고 이후에 좆자 상용화가 되면서 구려를 좆구리다며 '수려할 려'라는 아름다운 글자로 바꿔넣는다.

개요

고려(高麗)는 918년 태조 왕건이 건국한 이후, 1392년 조선 왕조에게 멸망하기까지 474년간(약 500년)을 한반도를 지배하였던 국가이다.

통일신라 말기 송악(지금의 개성) 지방의 호족인 왕건이 918년에 개국하여, 919년에 송악을 개경(開京)이라 이름을 고치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그 뒤, 936년 한반도를 재통일하였다.

광종은 왕권의 안정과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를 시행하고 공신과 호족 세력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어서, 경종 때는 전시과 제도를 실시하였고, 성종은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수도 개경의 외항인 벽란도에서 중국, 일본, 아라비아, 페르시아 등지의 상인들과 무역했다.

유목제국인 요나라, 금나라등과의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고려-요-북송 / 고려-금-남송 3강 구도의 팽팽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으며 송나라와는 우방관계를 맺었다.

(요나라는 힘겹게 막았지만 금나라한테는 군신관계 바로 맺었다)

12세기에 들어 고려의 지배층 내부에서는 문벌 귀족과 측근 세력 간에 정치권력을 둘러싼 대립이 치열해지기 시작해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최충헌, 최우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이 수립되었다.

또한 유민들은 이 시기를 전후하여 전국 도처에서 정부에 반항하였다.

그러나 13세기에 30여년에 걸친 원나라(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지배를 당하면서 국력이 쇠퇴했고,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로 끝나면서 결국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고려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즉, 918년에 왕건이 궁예가 쓰던 고려의 국호를 그대로 계승하여 일으킨 국가이다. 초기 5왕이 지나간 후에는 문벌귀족들이 나타났다.

묘청 주도 하에서 서경천도운동이 일어났지만 김부식이 군대를 일으켜 진압하였으며, 이로 인해 세력이 커진 개경 문인들에 대항하여 무신집권기가 도래하였다.

최우 장군 시절부터 몽골과의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원종이 몽골에 항복하여 왕실에서는 충렬왕 → 충선왕 → 충렬왕 → 충선왕 → 충숙왕 → 충혜왕 → 충숙왕 → 충혜왕의 막장 반복 계승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공민왕이 신돈과 함께 친원적인 권문세족을 제압하지만, 실록에서 꾸준히 미화되는 이성계가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과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신돈의 핏줄로 몰아붙여서 죽이고 1392년 근세 조선을 건국하게 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실상

조선보다 나은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을 보면 금수저를 위한 제도인 음서가 만연하였고(조선도 있었지만 정도가 너무 다르다 조선은 과거시험을 통과하지 않고 최고위에 오른 권력자가 세도정치의 일부 그리고 한명회 정도 이지만 고려는 오히려 과거급제 출신이 소수였다) 그리고 토지의 겸병과 사병의 존재로 인해 사회혼란과 빈부격차가 대부분의 조선시대보다 심했다.

역사

후삼국의 통일

왕건이 후백제, 신라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문벌 귀족 사회의 형성

지방 호족과 신라 6두품 출신들이 중앙 요직을 차지하면서 점차 형성되었다. 5품 이상 관리들에게 주는 음서와 공음전 등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잘먹고 잘살다가 정중부 등의 무신 세력의 정변으로 인하여 몰락한다.

무신 정권

무신들이 묘청의 난 이후 생겨난 무신 무시 풍조에 빡치고 군인전의 지급이 안되서 빡친 상태에 수염 꼬시른 놈한테 빡쳐서 문신들을 싹다 쳐죽여서 정권을 잡았다.

원 식민기

몽골의 침입에 맞선다고 몇번 깝치다 개털리고 부마국이 되어버렸다. 일반행정직 및 지방직 공무원들이 많이 필요한 원나라에서 고려인 취준생들을 대거 수입해갔다.

특히 원 황실 재정운영에 필요한 많은 고려인들을 불알을 발라서 데려가기도 했다. 이들은 불알을 희생해서 황실의 실제권력을 독점한다. 멍청한 몽골롬들 맡길걸 맡겨야지 ㅉㅉ

수십배의 정착민족인 한족들을 다스리기 위해 같은 정착민족인 고려인들을 아주 효율적으로 써먹는다.

나중에는 중국 깡촌마을 관리직 까지 고려인이 해먹는 상황이 발생한다. 헬불반도에서 완벽고용이 일어났던 유일무이했던 시대....ㅜㅠ 돌아와줘요 칭기즈칸

공민왕의 개혁

공민왕이 중국이 원명 교체기임을 이용하여 권문세족들이 해쳐먹어 나라 병신된걸 신돈과 함께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고려를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권문세족들의 반발과 함께 신돈의 제거로 인해 끝났다.

말년엔 아내인 노국공주 사망하자 통곡하다 홍윤한테 암.살.당.했.습.니.다

주요 업적은 2성 6부제 복구와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 땅을 회복한 것 등이 있다.

결과가 나름 잘 나와서 그렇지 이새끼도 좀 무모한게 남쪽 지방에 왜구한테 씹털리는데 병사들 박박 긁어모어 요동을 공격한 일이다.

어떻게 장수들이 존나 잘 싸워서 요양성을 함락시켰는데 그럼 뭐함. 군량이 없는데다가 왜구한테 본진 털리게 생겨서 그냥 귀환함.

당시 왜구의 준동은 임진왜란급이었다. 체감이 안되면 선조새끼가 임진왜란 때 만력제가 병신새끼라고 요동 공격한거다.

ㄴ공민왕 씹병신이다. 원의 부마국이 되었을 당시에 맺은 조약을 세조구제라고 하는데, 여기엔 불개토풍이라는 항목이 있다.

풍속을 바꾸지 않는다는 얘긴데 이를 근거로 원나라에서는 폐위된 고려왕을 복위시켜주기도 함. 이후로 왕위와 정당성을 보장해준다는 해석이 된다. 근데 스스로 정권 유지시켜주는 정당성의 한 축을 지가 부숴버림.

심지어 기철일파는 영안왕으로써 고려왕인 공민왕과 거의 동급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또한, 외척이 좆같긴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당대에 외척이 되서 세력이 굳지 못한놈들을 이용해 수백년을 이어온 권문세족을 쳐야하는게 맞지,

모두까기인형질 하면 누가 니 도와주니? 어차피 외척은 기황후 뒈진 후 대처만 잘하면 물에탄 소금처럼 사라질 신세였다.

한마디로 왕권강화에만 집착했지, 반원자주정책이라고 지껄이는새끼들은 쇠좆매로 불알을 터질때까지 맞아야된다.

공민왕은 국정을 대국적으로 보지 못하고 날뛰다가 야수의 심정이 실린 칼빵에 훅감. 선조같은 새끼.

멸망

북벌론 거리며 이성계 보내서 위에 치려했다가 이성계가 회군해서 조선을 세우고 고려는 멸망한다.

군사력

존나 쥐어터지기만한 후대의 조선보단 확실히 좋았다.

그 이유는 일단 역량도 안되면서 너무 중앙집권화한 조선의 체제보다 호족들이 알아서 지땅을 보호하는 고려의 체제가 군사 강화쪽에 더 좋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고려때는 양규,척준경,무신정권시절의 무신들, 박서,이성계 같은 무협지 주인공인가 하는 놈들이 튀어나오지만 조선은 현실적인 인간들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아 물론 이순신 빼고.

무과가 생겼다고 조선이 무인을 대우해준다고 고려보다 군사력이 발전했다고 착각했지만 실제로 나오는 군사력은 그 반대였던 것.

하다못해 방어전도 아니고 원정군으로 17만대군을 편성해서 이제 막 금나라로 통합하기 직전의 포텐을 터뜨리려는 여진족과 대대적으로 싸워 밀어낸 사실만 봐도 10만방어군 굴리기도 버거웠던 조선보단 훨씬 강했다.

조선이 고려보다 땅덩이가 더 컸다고 해도 현실에 맞지 않는 행정체계와 사회구조이기 때문에 제 역량을 깎아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국뽕사학자들은 중앙집권이 지방분권보다 나은거라고 세뇌하면서 조선이 우리 역사 최대의 암흑기라는 걸 감추고 있다. (일반 민중의 삶 그리고 민생을 기준으로 하면 토지겸병이 매우 심하고 전란이 끊이지 않던 고려 특히 고려 말이야말로 진정한 헬이다. 그에 비해 조선은 공전 국가소유의 토지와 자영농이 큰 비중을 차지했고 사대정책으로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전란과 무관할 수 있었다)

구라의 나라

다들 모르거나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사실인데 구라를 존나 잘친다.

왕이 당숙종의 후손이라고 구라까다가 논파당하니까 당선종이라고 또 구라를 치고

솔까말 신라에서 나온 주제에 서희는 평양이 수도니까 우린 고구려의 후신이라고 구라를 쳤다.

요성종이 쳐들어오니까 왕이 도망간 곳은 수천수만리쯤 된다고 구라를 깠다.

몽골애들한테는 찌꺼기 왕족보내고는 왕자라고 구라를 여러번 쳤다.

이는 고려국명 쓰는 애들의 공통점인데

앞선 고구려도 수당전쟁때 상습 구라범으로 중원대륙에 악명이 높았다.

우리성님 거리며 수나라 응댕이 빨다 요서에다 뒷통수 존나쌔게 때리는 짓으로 개막한 고수전쟁.

을지문덕은 방문판매 사기를 시작으로 하룻동안 구라를 무려 7번 치기도 했다.

또한 항복한다고 구라치고 성벽에 공구리를 치는 사악한 짓을 반복해서 이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DNA는 오늘날에도 2분당 사기범죄 한건이 일어나는 헬조선을 탄생시켰다.

([사회] 한국인 2분마다 1건씩 사기 당한다 “컵라면 하나 익기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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