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계열
도메인 .nl
* 네덜란드의 국가도메인. * 국립중앙도서관의 도메인. ([[1]])
약칭(NL)
[wiki:"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
Normal Love
동인계에서, 노말 커플링, 또는 노말 러브의 약칭으로 쓰는 말이다. 노말 항목의 3번 참조.
National Liberation, 대한민국 운동권 계열 중 하나
본래는 NLPDR, 즉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cy Revolution)의 약자로 절대 North Love가 아니다! 80년대 중반 CNP 논쟁(사구체 논쟁)을 통해 살아남은 계열이다. 자주파(자주대오, 자주계열), 자민통(이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주, 민주, 통일의 약어), 민족해방이라고도 한다. 흔히 키배에 종종 쓰이는 "좌빨"의 의미라면 모를까 이들을 좌파로 부르기는 (현재로서는) 어렵다.
흔한 "진보=좌파=친북"라는 오해가 퍼지게 된 주원인이자 운동권의 이미지를 제대로 깎아먹은 주원인이기도 하다. 진정한 진보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악의 축. NL에 속하지 않은 운동권이나 진보 진영이 보기에 NL은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NL은 한국사회를 변혁시키기에는 충분히 세력이 크지 않고, 한국 진보를 망치기에는 충분히 세력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 NL도 원래 '종북'으로 꼽히는 NL주류와 북한의 주체사상에 반대하는 비주사 NL로 나뉘어있었다. 세가 크게 위축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분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졌지만. 대표적으로 8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의 NL 학생들은 비주사 NL이 주류를 이루었다. NL비주사는 원래 CA(제헌의회) 그룹에 속해있었다. 그러다 CA가 갈라져서 NL비주사와 PD로 나눠진 것.
NL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가장 크게 세력을 키우고 위세를 떨치다가 이후부터 점점 세력이 위축되고 있다. 운동권 내에서 NL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 이유는 정권이 열심히 NL을 때려잡아서가 아니라 사회가 민주화되고 개방되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를 공정하게 판단할 여지가 생겼고 이에 따라 북한 체제에 대한 환상과 오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시대착오적인 NL이 꾸준히 일정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보수 세력의 삽질도 한 몫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NL을 잡겠다며 공안정국을 조성한다거나 북한에 대한 정보 접근을 차단하는 정책(웹사이트 접속 차단 등), 북한 체제에 대한 상호 토론을 막는 정책(북한쪽 주장을 RT했다고 체포) 등은 오히려 NL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NL을 위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 사회의 개방성과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NL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1국 사회주의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2차 세계대전 당시 '만국의 노동자의 일치 단결'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허황되었다는 전제를 깐다. 가령 독일의 노동자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소련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전제 위에 개별 국가의 사회주의 혁명은 해당 국가의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달성해야한다는 공산주의 혁명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일국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말해 스탈린주의로 정리가 되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경계가 명확하지 못한 동아시아의 중국과 한국에 전파되면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혁명 이론으로 바뀌어나가게 되며, 현재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로 변화되게 된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인 PD의 경우는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 노선으로서, 기존의 '만국의 노동자의 일치단결'을 통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사해 시민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PD 노선의 경우는 남미로 옮겨가면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이론(종속이론 등)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이 계통의 이론을 실천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볼리비아 정글에서 살해된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NL의 주장을 비교하면 양자가 엄연히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자의 혁명 이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는 북한에 대한 태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태도이다. NL은 민족주의 노선으로서 북한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반면, PD는 그런 속박에서 자유롭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정치적 자유화를 위한 투쟁에서 NL은 개별 국가의 혁명은 그들의 문제이므로 외면하는 반면, PD는 이들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다.
주사파는 갑툭튀라고 부를 정도로 1980년대에 갑자기 발생한 정파라고 한다. 그러나 이전의 재야 운동권에도 종북주의자나 주체사상파는 소수긴 하지만 어쨌든 존재했고, 대부분 자생적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북한과 연계가 있던 집단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내내 조작된 간첩사건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간첩사건도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 내내 북한보다 낮은 경제사정과 집권층의 부패라는 약점을 파고들어 한국 사회에 침투를 시도한 간첩들이 꽤 있었다.
이런 NL계열이 본격적으로 운동권의 주력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을 이끌어 나갔던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는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서 광주항쟁은 반미가 중요한 명제로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까지 많은 민주화 운동에서도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폭주를 저지하는 고마운 우방이었다. 또한 유신 말기의 카터 정권에서 인권과 민주화를 중시하며 박정희 정부와의 사이가 껄끄러웠던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미국이 있으니 간신히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 미국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면서 상황이 바뀐다. 카터 정권의 레임덕과 그로 인한 정치적 실책이 일어났다. 이 때 국무부가 전두환을 열심히 까고 있었지만,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 대장이 '한국인은 레밍'운운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 위컴 대장의 레밍발언의 내용은 '전두환 같은 독재자를 생각없이 찬양하고 떠받드는 한국인들이 있는데, 그런 인간들은 마치 레밍쥐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아메리카 트라우마'라는 문헌에서도 나오지만 위컴 대장은 개인적으로 전두환을 증오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운동권 내부의 분위기는 급격히 반미, 그리고 그 반대급부의 민족주의로 기울게 된다.
평균 학력이 낮던 그 시절 배운 자의 의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향이 강했던 학생운동이 정치적, 사회주의적 성향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부터가 이 시기, 더 정확히는 신군부의 전횡을 막지못한 서울역 회군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평이 유력하다. 서울역 회군 이후 기존의 학생회 지도부들을 대신하여 사회주의의 영향이 강했던 복학생 그룹이 투신자살 등을 무기로 학생운동의 전면에 부상한 것이 이 시기부터였다.
사실 미 대사관을 비롯한 미 당국은 투옥된 김대중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때문에 김대중의 명줄을 잡고 있던 전두환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당시에 그런 속사정까지 알 수 있을 리 없었던 대학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미국놈들도 사실 다 똑같은 놈들이었어!!"하고 외치게 된다(…). 물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병력 이동을 허가한 것은 미국의 덮을 수 없는 실책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반미 감정은 1980년대 급속히 확산돼, 1982년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나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령사건에 이르기까지 운동권에서 터트렸던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어지간하면 '반미'라는 모토가 깔려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 반봉건사회(은유적 표현이 아니다)로 보고 있다. 뉴라이트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드립을 창안한 안병직은 뉴라이트 초기 인사가 된다.사실 민족주의 자체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파시즘과 깊은 연관이 있긴 하지만...
또 대한민국 정부는 미제의 꼭두각시 정부라고 판단하여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언뜻 보면 일본의 한국사 정체성/타율성론과 비슷하게 보이나 사실은 다른 이론으로, 이들이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과 그 이후 좌파들의 논의를 검토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물론 지금은 역사학계/사회과학계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이론이지만, 1980년대 당시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학생사회와 검열로 인한 정보부재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현상은 아니다. 이론이 말이 안 될 뿐이지. 다만 1980년대말 PD계열과의 논쟁에서 완전히 박살난 이후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론론으로 한단계 업글하였다. 소위 식반자론. 어찌하던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외세의 식민주의적 침략과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민족 자립국가로 보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남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북한이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자유롭고 자주적인 국가라고 여기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 따라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외세인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같은 민족끼리 자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1960년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알던 일본 적군파의 영향을 일정부분 받았기 때문이다. 꼭 적군파만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세계적으로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의 모범 사례였다. 물론 북한의 선전활동만 믿은 것이고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1989년~1990년 당시 한창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라 북한에 다녀온 학생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자신들을 환영하기 위해 오밤중에 주민들을 깨워서 숙소 근처에 동원시켜놓은것을 보고 "얼굴에 피곤하다고 쓰여있는 사람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적어도 남한이 북한보다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임수경 쇼크의 남한버전?.
이들의 주장은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자/민/통으로 표현된다. 1980년대 광주항쟁으로 불타오른 반미정서와 폭압적인 군사독재 그리고 외국차관에 의존해서 성장한 재벌(매판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상황에서 정립된 NLPDR이론은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통일을 3대 목표로 설정했다. 한반도 남반부를 강점하고 있는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반미자주화), 이들의 하수인 파쇼독재 정권을 타도한 후에(반파쇼민주화), 자주적 민주정부를 건설해서 북과 연방제 통일을 달성하자(조국통일). 따라서 모든 활동이 남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미국과의 투쟁, 반미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례로 NL 그룹은 한미FTA 반대 투쟁에는 올인했지만, 그 이전 한-EU FTA반대 투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체와 노동운동세력들이 투자자국가제소제 등 FTA의 내용을 반대하고 나선 것과는 달리, NL계는 FTA의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미국하고 싸운다니까 거리로 몰려 나온 것이다. 그 덕분에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벌어졌을 때 일반참가자들과 대립해서 깃발논쟁이 벌어진 바가 있다.
미국과 그들의 영향력 아래 혹은 영합한다고 보는 반통일수구세력과의 투쟁에만 올인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보/좌파 세력이 중요하게 여기는 노동자의 권익, 민주시민의 권리, 인권, 환경, 소수자 보호 등에는 대단히 무관심하다. 일부계파에선 무관심을 넘어서 인권이나 환경 문제에선 오히려 보수우익보다 더 봉건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당시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이었던 이x대가 성 소수자 비하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7년도에 범민련 기관지에서 트랜스젠더나 동성애,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폐해라고 까대는 무개념 논설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한 동안 성소수자 단체, 인권단체 이주노동자 단체와 대립한바 있다.
노태우 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NL의 리즈시절 80년대 말에는 북한의 선전 멘트에 매우 충실히 반응해 한국전쟁은 남한의 북침으로 발발했다고 믿고, 남한의 원자력 발전소는 미국이 북한을 두려워하여 준비한 핵무기라고 믿는 등 여러모로 순진한 모습을 지녔었다.
조직은 연합의 형태를 구성한다. 1990년대 NL(민족해방) 운동권들이 민족주의민주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이란 합법적 조직을 설립했을 때 지역별로 산하 단체들이 만들어졌는데 서울연합, 경기동부연합, 경기남부연합, 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 울산연합, 부산연합 등이 탄생했다. 그때 맺은 인연들이 이후에 정치적으로 구심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특히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이 가장 큰 조직적인 힘을 획득해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비록 지역이름이 붙어 있지만 특히 경기동부연합은 다른 지역 활동가와 조직에도 상당한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지역에도 경기동부연합이 50%가 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 삼대연합은 사안별로 대립하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이들은 정파의 존재에 대해서 함구한다. 특히 일반 당원들과 외부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따라서 이들 삼대연합의 활동방식은 각종 진보적 조직과 지역위원회 활동가들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고 사안에 따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인물을 조종해 전화로 지침을 내린다. 그리고 각종 공직선거와 당직선거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남한에서는 직접적으로 표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다만 NL계열 단체의 강령 등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체사상 자체가 아바이 수령 아래 대동단결이라는 굉장히 수직적인 정치 구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의 NL단체들은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에 복종하며 의문을 제기하면 대동단결을 해치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위계질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절차를 넘어선 항명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NL계열은 PD계열에게 '통큰단결'이라고 항상 손을 내밀며 연합하려 하지만 수직적 상명하복의 조직구조상 소수파인 PD계열은 NL계열의 머릿수 때우기로 흡수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반발한다. 사실 손을 몇 번 잡았다가 PD계열이 데인 경우가 꽤 많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의 분당과정을 자체가 PD 계열이 데이는 과정의 연속이라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NL계열은 PD계열을 통큰단결을 저해하는 종파주의자라고 깐다. 마찬가지로 PD계열은 NL계열을 북조선식 독재 정권이라고 깐다.
대학교에서도 학생회를 애국적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조국통일의 첨병'으로 여기기 때문에 학생회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학원 자주화'가 학내 최우선 목표가 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학생회를 장악하려 한다. 덕분에 학생회를 둘러싼 비리와 폭력사건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한총련의 꽉꽉 채워진 할당량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학내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이런 식으로 학생회 장악을 노골화 하다보니, 이미 여러 대학에서 부정투표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진보적 학생회 전부가 NL계 학생은 아닌데, NL계가 이들의 이미지를 다 깎아먹기 때문에, 최근에는 뉴라이트의 지원을 받는 학생회라든지 비운동권이 다소 강해질 정도.
현재 남한사회를 봉건주의라고 보기 때문에 농민과 연대하려고 하며 전농 등 농민단체와 친하다. (문제는 북한(김씨왕조)가 전제주의 국가라는 점에 있지만) 학생회가 NL계열이라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 농활을 가는데, 협동봉사라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더 강하기 때문에 한총련 지도부에서 각각의 학교에 지역할당을 해 누락되는 지역이 없도록 전국적으로 조직한다. 뭐, 그렇다고 PD 애들이 농활 안 가는건 아니지만 의미가 좀 다르다. 실례로 어느 대학의 PD계열의 학생회에서 '학우들의 부모님을 돕자!'라는 취지로 한총련에서 내려온 할당구역을 무시하고 농사짓는 학생의 집 위주로 농활을 꾸렸다가 비판당한 일이 있었다.
승리적 관점이라는 이상한 시각으로 모든 행동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승리적 관점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정신승리. 이게 버릇이 아니라 이념으로 존재한다. 우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영도자(수령이든 단체장이든)가 행하는 일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단과 과정에 대한 고찰이 그만큼 부실하게 될 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론적인 입장을 자주 취한다. 수직적 조직구도와 함께 PD계열이 가장 반발하는 부분이 이 항목이다. 친북은 그 차후의 문제고.
이념이 좀 허황되지만 매우 단순하고 감성적이라서 열성적이며 운동세력의 다수를 차지한다.(물론 이론과는 관계없이 PD계가 조직력 구축에 소흘히하고 내부 토론을 하는데 바빳던데 반면(안좋게 얘기한다면 키배질), NL계는 "품성론"이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기본적인 조직력을 탄탄히 갖추었기 때문에 운동판에서 다수를 차지해왔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이론이 빈약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수법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론의 발전이 거의 없으니 어쩔수 없다,
크게 사람사랑(온건파)과 자주대오(강경주사파)로 나뉘지만 주체사상을 한꺼풀 숨기느냐 내세우느냐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하지만 두 계파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물론 비주사 NL이라는 기치의 소수파가 존재하긴 하나 이들도 기본적인 민중해방의 모토 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도 엄연한 NL이다. 참고로 자주대오(주사파) 에 소속된 이들은 기본적으로 (노동당(구 진보신당)은 물론이고) 통합진보당도 인정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유일한 혁명정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흠좀무 굳이 따지면 이들은 스스로 장악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같은 당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혁명정당을 돕는 2중대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NL '그 바닥'에선 메인 브레인인 민경우가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책으로 현 NL 운동의 한계 및 문제점을 얘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식민지인가?’, ‘농촌 인구가 급감한 현실에서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이 여전히 의미 있는가?’, ‘현대와 삼성은 매판자본인가?’, ‘지사적 풍모와 금욕적 생활 태도가 요즘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가?’,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가?'와 관련된 질문들을 독자에게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해도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부터 시작해서 NL계열인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추태를 보고 있자면 이런 자정이라는 것도 실상 눈 가리고 아웅인 경우가 많다 .
NL계열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가입하고 장악하면서 크게 물의를 일으켰는데, 민주노동당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 A지구당의 선거에 대량으로 위장전입하여 선거권을 획득한 후 몰표를 주어 NL계열을 지구당 위원으로 당선시키고 해산하기를 반복하여 당 중추를 장악한다거나 유령회원의 입당서를 작성한 다음 투표만 시키고 탈당시킨다거나 하는 등이다.
2012년 진보계열 정당들의 선거연대인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로 조직논리를 앞세운 부적절한 경선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국가보안법이 노리고 있는 메인 타겟이다. PD계열 단체들은 어지간해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엮기 어려운지 주로 파업 가담이나 시설물 파괴 등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식으로 잡아가는 수법이 많이 쓰인다.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섭잖아??
예전 안기부 시절에는 NL보다는 PD들이 주로 타겟이었다고. PD계열로 활동하던 사람이 조사받던 중에 조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NL은 병신이라 가만 놔둬도 한계가 있지만 PD는 미리 싹을 밟아놔야 한다라고 했다나. 80년대 까지만 해도 소련이 시퍼렇게 살아있었고, 당시 ND-CA-PD로 이어지는 계통의 운동권은 소련식 현실 사회주의를 이상사회로 설정했었다. 안기부 입장에서는 북한하고 연계하는것도 모자라서~~물론 안기부 입장이라는 것을 명심해두자~~ 소련하고 연계하려는 위험한 놈들로 봤기 때문. 지금에 와서야 이전에 추구했던 소련이 무너지고 그 한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변화하면서, 비교적 합리성이 있는 사상으로 평가되는 PD보다는 정신나간 공상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되는 NL이 경계를 받고있지만 당시에는 반대였다. 더욱이 조직을 중시하고 조직적인 면이 강한 NL에 비해 PD계열은 조직 자체보다는 개인을 더 중시했고, 조직을 경시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는 무엇보다 정당이라 조직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건 민주주의 일수록 더욱 부각되는 문제인데 이런 이류로 PD계열은 더욱 열세에 놓일 수 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다. 물론 머릿수 많은 NL이이라고 딱히 뭔가를 이뤄볼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긴 하지만(...).
하지만 노태우 말기 이후로는 PD보다 NL이 주 타겟이 되었는데, 소련이란 수교가 되고, 거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붕괴되면서 PD들이 힘을 얻기 힘들어진 반면에, 1993년 설립된 한총련의 주축이 된 NL들이 여러 사고를 일으켰고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이런 경향은 사라지지 않아 1997년 프락치 오인 살인사건이후 한총련 자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NL탄압에 들어갔다. 당시 전경들 말로는 PD가 그냥 좌파라면 NL은 레알 빨갱이 들이라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가 일어나면서, 80년대에 쓰이던 NL과 PD라는 말이 모두 나오게 되었다. 특히 PD계열의 대표적인 논객인 진중권에게 NL의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다 까발려졌는데, 'NL이 학생회를 장악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악하고, 대물림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국회의원이 되면 희석을 시켜야하는데, 이러한 비민주적인 방법을 국회까지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오를 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 동안 썻던 NL 까는 글이 이제와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진중권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전 1980년대 후반 이진경, 조국 교수와 함께 '주체사상비판'이란 책을 쓰기도 했고 2000년대 초반 조독마에서 일로 이름날리던 시절에 NL계가 민노당에 대거 입당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NL계 인사들하고 장기간 키배를 뜨기도 했다. 또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진보의 올바른 노선은 PD이고 NL은 진보의 울타리에서 쫓아내야 한다."라고 평했다. 결국 보수의 주 타깃, 진보의 계륵이 되어버렸다.
NL그룹은 매번 '적들과 싸우기 위해 통 크게 단결하자'면서 연대,연합을 부르짖었다. 거기에 호응해서 PD나 시민운동 세력과 함께 단일조직을 만들면 상대적 다수인것과 함께 타 계파들이 제대로 세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면서 조직을 장악하고, 조직을 장악하고 나서는 대놓고 부정을 저질러왔고 이런 부정들이 드러나면 부정행위에 대해 애써 덮어주거나 방관을 하면서 혹은 이런 부정행위들마저 옹호하면서 조직을 완전하게 타락시켜왔다. 이렇게 망가진 단체가 학생운동에서 한총련, 80~90년대 재야운동세력의 연합체였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그리고 민주노동당이다.
한총련도 초창기에는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란 슬로건하에 비록 NL이 우위이긴 하나 PD계열도 중앙조직 간부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조였으나 1995년 모든 중앙조직을 강경주사파 NL이 싹슬이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로 슬로건을 바꾸더니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6년 연세대 사태로 하향세에 접어들기 시작하고 97년 들어 전경사망 사건과 프락치 오인 살인사건으로 완전히 나락으로 빠졌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노동운동에 기반한 구PD 계열이 창당한 민주노동당도 2001년부터 온갖 협잡과 부정, 폭력, 날치기로 각 지구당을 장악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2004년 6월 전당대회에서 지도부를 싹쓸이하고 중앙당 간부를 모조리 갈아엎고 당을 완전히 변질시켰다. 이 시기에 초창기부터 당에 헌신하면서 부유세와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정책팀과 이론가들이 모조리 당을 떠나고 그야말로 빈껍데기가 돼버렸다. 대표적인게 우석훈 박사, 진중권 등이다. 이후 연방제 통일 어쩌고 반미투쟁에만 올인하다가, 결론은 다들 아시는데로...
한마디로 권모술수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데에 그 한계가 있다. 또한 앞으로도 NL이 어떤 조직의 주도권을 잡게될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당연한게, 타 세력 입장에서는 NL에서 통 크게 단결하자고 하도 부르짖어서 단결해줬는데, 정작 NL 자기자신들은 통 작게 뒷수작 부리면서 알맹이만 낼름 집어삼키는 얌체짓을 반복해왔다. [wiki:"양치기 소년" 신뢰를 얻을 수가 없다.]
참고항목
*PD *운동권 *종북주의자 *학생운동 *CNP 논쟁
멕시코의 주
누에보 레온 (Nuevo León, NL) 참고.